석모도로 떠나는 알짜배기 당일치기 여행

  학기 중에 당일치기로 여행을 간다면 어떤 곳을 생각하는가. 아마 열의 아홉은 가까운 경기도 근처의 산이나 계곡을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이 여행이라 말하기도 다소 민망할 정도로 너무도 가까운 곳, 다양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생각한다. 알짜배기 당일치기는 불가능할 거라고. 그런데 여기 당신이 ‘멀리 가야만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 줄 곳이 있다. 강화도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섬. 강화도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가득한 섬. 당신의 오감을 충족시켜 줄 섬. 석모도다. 
 
갈매기 반, 사람 반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시외버스 3000번을 타고 1시간을 달려 초록빛 풍경이 펼쳐지는 강화도에 도착했다. 강화 터미널 안에는 구수한 시골의 향기가 가득했다. 석모도로 가는 버스가 자주 없다는 말에 허겁지겁 외포리 선착장을 종점으로 하는 30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출발한지 2시간 만에 석모도로 갈 수 있는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동행한 친구가 석모도행 승선표를 끊어오는 사이 선착장 벤치에 앉아 바다를 감상했다. 그런데 배가 고팠던 탓일까. 앞에 앉은 어린아이가 먹던 새우깡이 바다를 보던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때 친구가 돌아왔다. 무려 새우깡 두 봉지와 함께.
“완전 배고팠는데 빨리 먹자!”
“엥? 무슨 소리야? 이건 갈매기 줄 건데?”
  민망함과 서운함도 잠시 승선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꼬르륵 소리를 내는 배를 움켜잡고 친구와 함께 배에 올랐다. 그 순간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어디서 나타난 지 알 수 없는 갈매기 떼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승객들이 너나할 것 없이 갈매기를 향해 새우깡을 집은 손을 뻗자 갈매기들은 마치 조련이라도 된 것처럼 새우깡을 받아먹었다. 기자는 그제야 알았다. 왜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새우깡을 사왔는지. 나중에 배에서 내려 선착장 직원의 말을 들어보니 배가 하루에 몇 번씩 오가다보니 언제부턴가 수백 마리의 갈매기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날아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는 것이 석모도 여행의 필수코스가 됐다고.
 
세상 모든 얼굴, 여기 다 있소이다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대한민국의 걱정 많은 수험생 어머니들이 석모도로 모여든다. 바로 백일기도로 유명한 해수관음 성지 보문사가 있기 때문이다. 백일기도뿐만 아니라 보문사는 일반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색있고 다양한 불상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기자가 불교에 큰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유명한 곳이라니 한번 가봐야지’라는 생각에 보문사로 향했다. 그런데 보문사 정류장에 내리는 순간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눈앞에는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경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아무 절이나 명당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갈 순 없었다. 석모도의 유일한 이동수단인 순환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다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해도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가파른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걷기 뒤로 걷기를 반복하며 경사를 20분쯤 오르자 절 입구에 위치한 범종이 보였다. 
   범종 옆 약수터에서 타는 목을 축이고 나니 그제야 보문사의 수려한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보문사는 천연동굴 내 자연석으로 조각된 와불*과 절벽에 새겨진 마애석불좌상을 보유한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절이었다. 하지만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오백나한’이다. 여기서 나한이란 아라한과**를 깨달은 부처의 제자를 말하며 해탈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존재를 말한다. 오백 개의 나한상은 각각 다른 얼굴과 자세를 하고 있었다. 원숭이 얼굴을 한 나한상부터 부끄러워하는 자세를 한 나한상까지. 나한상들의 얼굴 하나하나 관찰하다 보니 불교의 교리를 전혀 모르는 기자도 장엄한 기운에 압도되는 듯했다.
 
한 그릇에 바다를 담다
 
  꼬르륵~~ 아침부터 버스타고 배타고 버스타고 걷고 등산하고.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을 것만 같았다. 기자는 친구와 함께 보문사를 내려오며 결심했다. 입에 무언가를 넣기 전엔 그 어디도 가지 않겠다고. 다시 정류장으로 되돌아 왔을 때 온 천지에서 고소한 튀김냄새가 진동을 했다. 여기저기서 아주머니들이 “학생들! 튀김에 막걸리 한잔 하고 가요!”, “싸게 줄게 여기서 먹고 가요”라고 말하며 새우튀김과 쑥튀김을 끊임없이 튀겨내며 허기진 우리를 유혹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밥다운 밥을 먹지 못해 제대로 된 한 끼가 먹고 싶었기 때문에 술과 안주를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새우튀김과 쑥튀김은 석모도의 명물이라고 한다.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간 기자와 친구는 메뉴판을 보자마자 확 덮어버렸다. 시골밥상 3만 원, 해물탕 4만 원. 주머니 가벼운 학생에겐 너무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식당 사장님은 계속해서 시골밥상을 권했고, 우리의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그저 어떡하지 하며 의미없이 메뉴판만 뚫어지게 볼 뿐이었다. 그러던 중 ‘해물칼국수 5천 원’이라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5천 원이라니. 기자와 친구는 무언의 동의 속에 주저없이 해물칼국수 2인분을 주문했다. ‘5천 원짜리 칼국수는 많이 빈약할 거야’라는 생각에 동행한 친구에게 미안해졌지만 시장이 반찬이라며 죄책감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칼국수가 나왔을 때 기자와 친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비주얼 쇼크가 바로 이런 것일까. 식탁을 가득 채우는 그릇 사이즈에 한번, 그릇 속 가득한 꽃게와 새우 그리고 각종 조개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정적도 잠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희 2인분 주문했는데요...”
“그거 2인분 맞아요. 왜요? 부족해요?”
너무도 쿨한 대답과 함께 사장님은 새우튀김과 쑥튀김 서비스까지 내주셨다.
 
  배를 채운 뒤, 입 안 가득 바다내음을 한가득 품고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던 즐거움, 석모도에서의 하루가 모두 끝이 났다. 강화도로 돌아가는 배에서 석모도는 점점 멀어져 갔지만 그곳에서 얻은 즐거움은 한동안 크게 남을 것만 같다.
 
*와불 : 누워있는 불상
**아라한과 : 사과수행을 완수하여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 생사의 세계에 윤회하지 않는 아라한의 자리로서,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문(聲聞)의 첫 번째 지위이다. 
 
 
 
글·사진 남채경 기자
skacorud247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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