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K대 의대 사건 등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에서의 끊임없는 성폭력 사건들은 우리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최근 우리학교의 경우, 타 학교처럼 대외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진 않았으나 2013학년도 1월부터 9월까지 학내 성평등상담실을 통해 접수된 사건은 무려 16건, 상담횟수는 831회에 달할 정도로 학내 구성원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다. 게다가 성폭력 사건의 신고율이 10%미만인 우리 사회현실을 고려할 때 사건이 발생했으나 신고하지 않은 사건의 수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폭력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 간에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니다. 성폭력은 가부장적 사회구조 및 불평등한 성별 위계라는 왜곡된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성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하지만 보통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졌을 때 학교본부에서 택하는 사건처리 방식은 출교명령, 그리고 제적이라는 징계로, 우리 대학사회는 여전히 꼬리자르기식의 일회성 가해자 처벌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이렇듯 끊임없이 발생하는 학내 ‘성폭력 사건’과 ‘성폭력적 문화가 잔존하는 대학문화’에 대한 깊은 반성은 물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학생주도의 반성폭력 운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과거 반성폭력 운동은 반성폭력 학칙 제정을 이끌어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소송사건인 1993년 서울대 신정휴 교수사건을 시작으로 대학에서의 성폭력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학내 성폭력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기제인 반성폭력 학칙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학생사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괄목할만한 결과로 각 대학별로 성폭력 관련 정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총여학생회, 여성위원회 등이 반성폭력 학칙 제정을 제안하는 형태로 운동이 진행되었다.
우리학교 역시 선배들의 관심과 참여로 2000년 10월, 연세대학교 내 반성폭력 학칙(‘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다. 현재까지 네 차례에 걸친 개정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제정 당시의 사회가 투영되었으며, 오늘날의 모습까지도 담고 있는 우리의 학칙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과거에도 지금도 학내에서 발생한 성폭력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성폭력에 대한 예방과 해결의 의무가 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학내 구성원의 대다수는 반성폭력 학칙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내용에 있어 무지한 상태이다. 또한, 기존의 ‘학칙’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학생 중심으로 제정된 반성폭력 학칙을 오해하기도 한다. 반성폭력 학칙이라는 학내 구조적 측면에 대한 이해와 숙지, 더 나아가 이에 대한 주체적인 자세야 말로 반성폭력 운동의 시작이기에 우리는 우리가 만든 규정을 스스로 지켜내야만 한다.
이전의 반성폭력 운동이 반성폭력 학칙제정운동이었다면, 앞으로는 연세공동체를 위한 반성폭력 학칙의 존재를 알려냄을 통해 단순히 성폭력이라는 범죄의 처벌만이 아닌 교육권 확보와 공동체성을 위해 더 구성원 중심의 학칙으로 변모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학칙이라는 제도적 차원의 구조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을 높일 수 있는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성폭력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에 성폭력을 발생시키거나, 성폭력에 대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문화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반성폭력 운동이 학생운동에 의해 이루어져 왔지만, 모순되게도 성폭력은 우리들의 문화로부터 재생산되고 확대되어 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해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음에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면 연세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깊은 반성과 더불어 반성폭력 학칙의 공론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잘못된 시각들을 바로잡으며 더 나아가 인식구조를 바꾸기 위한 실질적인 잘못된 문화를 변화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때야 말로 새로운 학생문화가 시작될 것이다. 반성폭력운동이 연세대학교 학생사회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동력으로 실질적인 구조와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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