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공강시간이면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구름을 덮고 단잠을 청하기도 하던 고즈넉한 동산이 있었다. 96년 한총련 사태로 종합관과 문과대의 강의실과 교수연구실까지 커다란 피해를 입으면서 모금과 정부 지원으로 지금의 위당관이 그 위에 세워졌다. 정든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소담스런 동산이 파헤쳐졌지만 지금 그곳에 대한민국 인문학의 요람이 우뚝 서있다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내년이면 사회과학대가 연희관으로 이사온지 30년이 되지만 연희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넝쿨을 머금은 채 묵묵히 서있어 자랑스럽다. 사회과학대가 연희관으로 이사오던 해 이곳을 쓰던 이과대는 과학관을 신축해 나갔다. 바로 옆 동산이 사라지고 위당관에 문과대가 들어올 때도, 정든 이웃 생활과학대가 삼성관을 신축해 이사가던 날에도, 뒷동산에 대우관이 세워져 상경대가 이사오던 날에도, 또다른 이웃 국제학대학원이 성암관에 기거하다 새천년관을 신축해 떠나가던 날에도 연희관은 오롯이 서있었다. 그뿐인가. 많은 연세인들이 테니스라켓이란 걸 처음 쥐어봤던 정문앞 테니스장 부지에는 공학원 건물이 제2, 제3공학관과 벗해 위용을 자랑한다. 과학관 옆에도 과학원과 첨단과학기술 연구관이 세워졌으며 음대 옆 수풀에도 신관이 세워졌다. 우리학생들이 애용하는 신중앙도서관은 아담하던 장기원기념관을 부수고 세워진 것이고 광복관도 옛건물을 허물고 새로 올려진 것이다. 사실 동문회관도 우거진 숲을 깍아내고 건립된 것이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이 과거 누군가가 젊음을 만끽하던 추억의 장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연세인은 교수건, 학생이건, 동문이건 그리 많지 않다. 운동장도 그냥 허허벌판이 아니다. 축구, 야구 심지어 미식축구까지 선수 흉내를 내며 젊은 날을 불태웠던 추억이 깃든 곳이 바로 거기다. 백양로를 대신해 그곳에 주차장을 세우자면 매주평일 오전오후를 나누어 훈련하는 많은 스포츠 동아리들은 어찌하며 그곳에 추억을 묻은 동문들의 허전함은 또 어찌 달랠 것인가?
고궁옆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계속 한동네에 살았기에 옛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논쟁이 낯설지 않다. 고궁담장을 원형대로 보존하자는데 그 담장이란게 60년대 후반 새로이 옮겨 세워졌음을 기억하는 나는 조용히 있을 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10년 가까이 통학하며 거닐던 정든 율곡로의 가로수들이 사라지고 낙엽밟는 소리로 사랑을 속삭이던 거리가 사라지게 됐지만 일제가 갈라놓은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 없다. 충무로 일부구간에 플라터너스나무를 빼버리고 대신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남산위의 저 소나무를 심겠다는 데 누가 뭐라 하랴?
백양로에는 백양나무를 심어보자. 정문 옆 주차장근처에 몇 그루 남아 명맥을 유지할 뿐인 그들에게 백양로를 돌려주자. 지금의 은행나무는 1960년대 후반 최루탄 때문이지 백양나무들이 대부분 스러져가면서 심어진 것이라 한다. 비슷한 시기 서울시내 도심 곳곳에 플라터너스와 함께 심어진 은행나무들은 과연 암울한 시기 그 독한 최루탄에도 끄덕없이 잘 자라주었다. 이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주고 사계절 아름다운 거리가 되기를 바란다. 묵묵히 서있기만 했던 연희관처럼 백양로 사업을 바라보는 많은 연세인들의 조용한 지지도 분명한 의사표시의 하나이자 권리의 행사임을 명심하고 존중해 주기 바란다.  우리는 감성이 아닌 지성이 지배하는 상아탑에 살고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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