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에서 끝나는 여행

 

해.외.여.행. 당신은 어디까지 가봤는가? 해외 관광객들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에 걸맞게 대학생들도 방학이면 세계 곳곳을 누비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바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미국의 뉴욕시티와 할리우드, 이탈리아의 피렌체, 프랑스의 파리 등 이젠 여행도 공장에서 찍어 나온 제품처럼 소품종 대량생산이 돼버렸다. 그런데 여기 ‘카우치 서핑’이라는 조금 이색적인 방법으로 6개월간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와 기행서적까지 낸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우리대학교 김대진(신방·07)씨다. 김씨는 “제 여행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납니다”라고 말한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김씨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Q. 카우치 서핑이라는 개념이 낯설다. 카우치 서핑은 어떤 유형의 여행인가.
A. 카우치 서핑이란, 현지인들의 집에서 무료로 생활하면서 그들과 문화를 교류하는 새로운 여행 방식이에요. 카우치 서핑을 하고자 하는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과 그들과 문화를 교류하고자 하는 현지인을 매칭해 주는 사이트 ‘카우치 서핑’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습니다.
 
Q. 카우치 서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또 6개월 간 다녀온 카우치 서핑의 여정은 어땠는가.
A. 사실 처음부터 카우치 서핑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여행 전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던 중 2011년 당시 미국과 유럽의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카우치 서핑을 처음 접했고 이 방식으로 여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행 전에는 호스트의 입장에서 중국인 여성에게 카우치 서핑을 제공하기도 했어요. 또 여행 경비부터 여행지, 그리고 날짜별 코스까지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600만원을 들고 노르웨이 오슬로로 향했어요. 가장 먼 곳에서부터 시작해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돌아오고 싶었어요.
  저는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스웨덴과 덴마크 등 유럽을 거쳐 점점 위도를 낮춰가며 여행했어요.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 이집트, 불가리아, 네팔 등도 여행했습니다. 중간에 호스트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전 세계 26개국 50여 도시를 돌며 수많은 카우치 서핑을 경험했어요. 마지막 여행지는 상해였습니다. 상해에서도 역시 카우치 서핑을 했어요. 호스트는 바로 여행 직전 한국 우리 집으로 카우치 서핑을 왔던 중국여성의 집이었어요.
 
 
Q. 카우치 서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호스트는 누구인가?
A. 여행지에서 만난 호스트 모두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여행 초반에 만난 두 명의 호스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명은 카우치 서핑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만난 여자 호스트예요. 이 여자 호스트 얘기를 하기 전에 말하자면, 사실 출발 전 카우치 서핑에 대한 걱정이 많아서 남자 호스트를 피했어요. 운이 나쁘면 힘센 남자 호스트에게 제압당해 상해를 입거나 경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반에는 여자 호스트를 중심으로 예약했죠. 하지만 모든 것이 예상과 크게 달랐습니다. 여자 호스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당황한 일이 적지 않았어요. 한 번은 여자 호스트와 함께 도시에서 문서를 스캔해야 했어요. 한 시간 동안 헤맸는데도 스캔할 곳이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갑작스럽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어요. 이후에도 당황스러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역시 같은 성별이 편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경험 때문에 이후 6개월 간 선택했던 대부분의 호스트는 남자였습니다.
  또 다른 호스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게 해준 아저씨 호스트예요. 그는 카우치 서핑을 제공했던 여느 호스트들보다도 개방적인 마인드를 자랑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집에 있던 저를 데리고 향한 곳이 있었는데 바로 ‘크리스티아니아’예요. 덴마크 코펜하겐 한복판에 위치한 이곳은 히피족들이 덴마크 정부와 독립돼 운영하는 자치 공동체 구역으로 관광객들의 출입은 허용되지만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된 곳이었어요. 무정부체제에서 비롯된 마약거래 때문이에요. 모든 지역이 국가에 소속돼 정부의 통치를 받는다는 상식이 무너진 순간이었어요.
 

Q. 여행 중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A. 다른 여행객들과 마찬가지예요. 타지에서 아프면 서러움이 배가 되죠. 여행을 시작한지 일주일 후 몸이 크게 아팠어요. 한국에선 평소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다가 하루에 10시간 정도를 걸었으니 병이 나는 것이 당연했죠. 그 순간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사서 고생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여행의 새로움 앞에서 힘든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이후에도 여행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어요.
또 한 번의 고비는 여행 막바지에 찾아왔습니다. 여행의 막바지에는 네팔 카트만두에서 편하게 힐링 타임을 보낼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은 알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죠. 여행에서 만난 지인의 제안으로 안나푸르나를 등정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결국 마지막을 ‘힐링’이 아닌 ‘킬링’으로 장식하게 됐어요. 
 

Q. 여행을 다녀오기 전과 후의 크고 작은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A. 신체적으로 확실히 건강해졌어요. 돈을 아끼기 위해 6개월 동안 많이 걸어 다니다보니 몸이 자연스럽게 가벼워졌어요. 여행을 다녀온 직후인 2012년 초에는 겉모습도 지금과 크게 달랐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돼 귀국 후에도 한동안 머리를 길렀습니다. 내적으로는 성격이 크게 변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여행을 다녀오면 외향적으로 변한다지만 저의 경우 오히려 내성적으로 변했어요. 호스트가 집을 비운 시간에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사색하는 시간이 늘었고,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여행 전에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행 후 제가 원하는 것이 공부였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대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기로 다짐했어요.
 
김씨의 가까운 지인들은 김씨에게 항상 ‘김대진스럽다’고 말한다. 혼자 고민하고 빠르게 결정해 버린다는 뜻이다. 카우치 서핑이라는 새로운 여행방식 앞에 김씨는 망설이지 않았다. 배낭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김씨는 말한다. 염려 때문에 카우치 서핑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기엔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과 걱정이 너무 많으면 그 어떤 것도 실행할 수 없다는 말처럼 가끔은 생각을 접어두고 훌쩍 떠나보는 건 어떨까. 김대진스럽게.
 
남채경 기자
skacorud2478@yonsei.ac.kr
사진제공 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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