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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zip중] 건어물녀와 초식남, 그들이 사는 세상
  • 박진형 기자
  • 승인 2013.09.16 00:02
  • 호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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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녀, 초식남. 일본드라마에서 처음 등장한 이 신조어들은 더 이상 드라마에서만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건어물녀는 직장에서의 세련된 모습과 달리 집 문을 들어선 순간 ‘츄리닝+맥주와 오징어+드라마 시청+늦잠’을 장착하는 여성을 뜻한다. 물론 이들에게 연애세포는 건어물처럼 바짝 말라있다. 초식남은 기존의 '남성다움'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서도, 주로 자신의 취미활동에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을 말한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선 이보영이 후줄근한 모습으로 냉장고 앞에 앉아 소시지에 케첩을 발라먹는 장면이 방영됐다. 깔끔한 변호사 캐릭터였던 그녀의 또 다른 모습에 ‘이보영 건어물녀’는 한때 인터넷을 달구며 사람들의 훈훈한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이보영은 건어물녀가 돼도 이뻤다.) 또 올해 초에 방영된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조권은 여성스러운 말투와 표정까지도 섬세히 연기해 초식남으로 사랑받았다. 필자는 남자라 잘 모르겠지만 여자 사람 친구의 말로는 조권 역시 참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건어물녀와 초식남이 안방극장까지 점령하면서 이들에 대한 인기가 상승했다. 매체는 건어물녀를 또 하나의 트렌드로 삼았고 초식남을 ‘젠틀맨’으로 둔갑시켜 훈훈한 이미지로 방송시켜왔다.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는 아예 초식남을 소재로 삼아 인기를 끌기도 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이 신조어들은 어느새 한국사회에 자리 잡았다.
이기주의. 매체에서 초식남, 건어물녀가 일종의 매력으로 어필돼 확산되고는 있음에도 계속해서 그들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자기애’가 강한 초식남은 남들에게 돈을 쓰기보단 자신을 위한 투자에 집중하고, 건어물녀는 유능한 커리어우먼임에도 남자에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아직은 ‘우리’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한국사회에서 이들을 보는 시선이 곱기만 할 리가 있겠는가? 보수적인 시각에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돼버리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전통적인 남성상, 여성상과도 일치하지 않기에 중년층에게는 자칫 아니꼽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진짜 자신을 알지도 못한 채 건어물녀가 되기를 함부로 시도했다간 낭패 보기 딱 좋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한다.
트렌드. 그럼에도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는 것!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대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이기에 이들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사람들이라고 보는 시각도 일리가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여성들과 공감할 수 있는 초식남이 좀 더 유리해졌고, 여성은 집 안과는 다른 집 밖의 모습을 가져야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들이 만들어낸 라이프스타일의 장점은 무엇일까? 초식남은 스스로 기존 가부장적인 관념 속의 책임감에서 떠나 개인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더 이상 허세 부리느라 텅텅 빈 지갑을 보며 슬픔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 건어물녀는 답답한 직장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즐길 수 있다. 건어물녀에게 조선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귀찮은 ‘내숭’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최적화된 새로운 삶의 방식일 수 있다.
그들이 이기주의자들인지 새로운 트렌드 세터인지의 논쟁을 떠나 이들이 보여주는 사회의 한 단면은 조금 서글프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자기 자신(일과 휴식)을 위해 연애를 포기해버리는 점이다. 어쩌면 이들은 일과 사랑을 동시에 잡을 수 없는 현대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생존경쟁에 치인 나머지 연애에 눈 돌릴 시간조차 부족한 현실 속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초식남과 건어물녀. 이 두 개의 단어를 보며 사회마저 솔로를 돕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솔로부대와 필자는 또다시 슬픔에 빠지고 만다.
박진형 기자
pjhy@yonsei.ac.kr
일러스트 김진목

박진형 기자  pjh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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