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혹은 6시 반부터 나팔소리가 들리면 하루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병사들을 맞이하는 것은 아침 점호. 열심히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침상이든 침대든 서둘러 정리를 마친 뒤 우르르 바깥으로 뛰어 나간다. 줄을 맞춰 서있으면 하룻밤을 꼬박 샌 당직부사관이 피로한 눈으로 병사들을 주시하고 있다. 때론 하이에나처럼 때때론 야수처럼 당직사관이 등장하면서부터 아침점호가 시작된다.

  주로 병사들의 계급에 따라 아침점호에 대한 부담감이 그 이유를 달리한다. 어느 정도 선임의 대열에 낀 병사들부터 그 위의 한참 선임병들까지는 아침점호란 잠과의 싸움이고 귀찮음과의 싸움이며 날씨와의 싸움이다. 두 눈과 온몸의 근육이 풀리고 어딜 바라보던 지간에 멍하다. 중간계열에 속하는 병사들은 귀찮음과 싸울만한 여유가 아직은 없다. 최대한 후임들에게 까이지(?) 않도록 모범을 보이려고 하며 후임들 눈치주기에 여념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활력이 넘치는 것은 신병들이다. 아니, 활력이라고 표현하기엔 긴장이 철철 넘쳐난다. 입대 전에는 애국가가 4절까지 있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군인복무규율, 혹은 부대만의 구호 따위의 암기력이 필요한 것들은 신병들을 더욱 정신없게 만든다. 그 뿐이던가, 국민체조도 까마득한 처지에 군인들만의 도수체조라니. 이건 거의 미칠 노릇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분대는 점호 대열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하던 분대였고 두 중대가 같이 점호를 섰었기에 당직사관 바로 앞에 위치했었다. 대체로 당직사관의 ‘번호부르기’가 시작되면 우리 분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웬걸, 이 날따라 우리 중대의 맨 왼쪽부터 번호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 “둘!”, “셋!”, 정말 빠른 속도로 우리 분대를 향해 번호가 다가오고 있었다. 중대 인원이 약 75명정도 됐었으므로 우리 분대원들은 하나, 둘, 셋보다는 어려운 숫자를 소리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분대의 막내가 들어왔을 때다. 글쓴이와는 몇 달 차이 나지 않는 후임이었다. 그 친구만 잘해주면 되는 상황이었다. 아니, 그런줄 알았다. 우리 옆 분대에서 번호를 부르고 있었다. “쉰 일곱!”, “쉰 여덟!” 번호 부르기라는 것이 특이한 게 입대 이후로 아무리 많이 해봤어도 자기 차례가 되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어느덧 간 떨리는 내 차례. “예순 여덟!” 내 뒤에 있던 동기까지도 “예순 아홉!”으로 세이프였다. 그 때 막내는 내 동기로부터 두 번호 뒤에 있었기 때문에 제발 무사히 넘기자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칠순!” 정적. 칠순? 우리 모두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치..칠순? 맞나? 칠순.. 잔치?’ 아차 싶었다. 내 동기 뒤에 있던 맞후임이 사고를 치고야 만 것이다. 막내 걱정은 이미 내 머릿속을 떠나버린 뒤였다. 방심하고 있었는데 바로 막내의 번호가 이어졌다. “칠순 하나!”... 칠순 하나... 칠. 순. 하. 나. 그 바로 뒤에는 최고참 선임이었고, “일흔 둘.”로 중대 번호가 마무리 되었다.
  칠순과 칠순 하나. ‘일흔 둘’ 최고참에게 그 날 신나게 혼나고 난 뒤부터 내 맞후임은 당분간 ‘칠순’으로 불렸다. ‘칠순 하나’는 오히려 ‘칠순’의 충격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그 날 뒤부터 후임 계열에 있던 나를 비롯한 내 주위 병사들은 아침 점호 때 번호를 부를 때마다 사지를 떨게 되었다.
 
신승열(신방·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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