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여전히 백양로의 한쪽 면에는 펜스가 들어서 있고, 햇빛에 달궈진 아스팔트 길 위로 학생들과 차량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런데 그날 밤은 달랐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백양로의 펜스에 그래피티를 하고 있었다. 정갑영 총장에 대한 조롱, 불통과 독선에 대한 비판, 낭만적인 생태주의적 관점에서의 비판, 백양로 프로젝트를 ‘900억 주차장 공사’로 바라보는 시선 등이 펜스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들은 민주광장을 점령하고 마지막 남은 나무를 지키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백양로님 많이 당황하셨어요?’에서 이들은 연세인의 많은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와 주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통쾌하지도, 씁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꺼름직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조롱과, 어설픈 생태주의와, ‘900억 주차장’의 프레임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가 접할 수 있는 매우 부족한 정보만큼이나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하다. 그것은 다른 대부분의 연세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프로젝트로 학생편의공간이 지하 몇 층에 얼마나 확충되는지, 백양로 지하로 이동할 학생회관 편의공간의 빈 자리에 자치공간이 얼마나 들어설 수 있는지, 지하에 몇 평의 주차장이 들어서고 그 공간을 연세의료원과 신촌 상인들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얼마의 비용으로 얼마나 자주 이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거의 정보가 없고, 따라서 예측하기도 어렵다. 다른 한편 백양로 프로젝트에 인문학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는지, 정갑영 총장이 얼마나 경제학의 논리에 물들어 있는지, 그가 백양로를 지나간 모든 연세인의 추억과 낭만에 얼마나 공감하고 관심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지는지, 이것들이 다시 프로젝트 이후의 백양로로 옮겨지는지, 옮겨지면 얼마나 많이 옮겨지는지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적어도 백양로의 펜스에 그래피티를 하고 민주광장을 점령한 사람들의 주장에 관해서는, 나는 백양로 프로젝트에 반대할 수 없다.
적어도 나에게 백양로는 잘 조경된 다른 도로들에 비해 예쁜 곳이 아니다. 단조로운 도로와 나무들, 낮이면 햇빛에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택시들. 그러나 밤에 백양로를 걸어본 사람이면 알 거다. 사람들과 차량에서 벗어난 백양로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다. 백양로에 늘어선 나무들이 어둠에 잠겨있고 민주광장에는 안개가 얕게 깔린다. 천천히 어둠을 내뿜는 나무들 곁으로 걷다 보면, 나무들의 숨에 잠겨 유영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 속에서 긴장을 내려놓으면 상념들이 천천히 떠올랐다가 깊이 가라앉곤 한다. 그러면 나는 가라앉은 것들 중에서 몇 개를 건져 올려 시를 쓰곤 했다. 한 편의 완결되지 않은 소설과 수 편의 시들, 열 몇 편의 습작을 그 깊은 숨 속에서 건져 올렸다. 이 느낌과 과정을 나는 좋아했다. 밤의 백양로를 좋아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밤의 백양로를 걸으면서 그 느낌에 잠길 수 없다. 펜스가 치워지고 새로운 백양로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잘 조경된 도로의 밤은 밝고 유쾌하다. 오랫동안 많은 상념들과 기억이 거쳐간 오래된 도로의 밤과는 다르다. 똑같은 달이 뜨고 똑같은 사람과 걸어도 그렇다. 밤의 백양로는 백양로일 때 밤의 백양로다. 이제 백양로는 없다. 새로운 백양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새로운 상념과 기억이 그 자리에 새로 쌓일 것이다. 이제 밤의 백양로에서의 내 모든 상념과 기억들은, 내 부모님의 것과 같이 그리고 친구들과 선배님들의 것과 같이 모두 낡은 글 속으로 들어갈 테다. 내 마지막 시(時)도.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