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숨바꼭질이 화제라 무척 다행이다. 같은 이름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서가 아니다. 내 수업 시간에 단골로 등장하는 예가 숨바꼭질인데, 전혀 다른 이유지만 그 단어 자체만으로 앞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것이다. 숨바꼭질할 때, 술래는 보통 열을 센다. 그런데 열을 세는 방법이 두 가지이다. 하나, 둘, 셋, 넷으로 시작해 열까지 세는 방법이 있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세는 방법이 있다. 얼핏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가지가 숨는 사람들한테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은 20음절인데 반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10음절이기 때문에, 숨는 시간이 꼬박 두 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더 꼭꼭 숨고 싶다면 숨바꼭질을 하는 사람들끼리 술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세기 없기’라고 규칙을 정하면 된다.

이런 규칙을 통해서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전략을 바꾸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농구에서 3점 라인은 멀리서 슛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들한테 유리한 규칙이고, 패인트존 3초 룰은 키 큰 사람들한테 불리한 규칙이다. 스포츠 게임에서의 규칙은 단지 선수들의 행동과 전략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누가 더 우대받을지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 농구에서 3점제가 생기고 나서 키는 작아도 슛을 잘하는 선수들이 우대받기 시작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이런 게임의 규칙(rules of the game)은 스포츠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제가 도입되었다고 가정하자. 이렇게 되면 첫 번째 투표에서 누가 1, 2위가 되는지를 보고 결선에 가서 국민의 뜻을 물으면 되기 때문에, 당장 후보단일화니 담판이니 하는 말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뽑을 때도 수능으로만 뽑을지, 논술을 볼지, 혹은 면접까지 볼지에 따라 학생들과 각 학교의 전략과 행동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게임의 규칙이 바로 제도이다. 어떤 조직에서건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구성원들의 의식개혁을 통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절한 처벌과 제약 그리고 인센티브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이다. 도덕적 훈계 차원을 넘어 게임의 규칙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제도의 영향력에 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약 20여 년 전부터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이런 ‘제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이를 하나로 묶어 ‘신제도주의’라고 부른다.

신제도주의에서는 단순히 사람들의 행동과 전략에 대한 제도의 영향력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애당초 제도는 어떻게 생겨나며, 왜 나라마다 제도는 다른지, 이렇게 다른 제도가 사람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각 나라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제도의 모습이 경제발전이나 사회복지 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제도는 왜 그리고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제도에 대한 연구가 사뭇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도가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면서 ‘역사’, ‘맥락’, ‘권력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역사적 제도주의, 개인의 합리성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집단적인 비합리성으로 이어지는 현상에 주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의 역할에 주목하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그리고 의미와 상징 그리고 인지와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학적 제도주의가 이른바 제도이론의 세 분파이다. 그런데 사실 이 세 분파 간의 논쟁에는 그간 축적되어온 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지식이 녹아 있기 때문에, 제도를 공부하다 보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등불을 만난 듯한 기쁨을 느낄 때가 있다. 숨바꼭질 영화를 보면서, 엉뚱하게 제도에 빠져드는 것은 어떨지?

하연섭 교수(사과대·재무행정/비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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