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연세대학교에 합격해 부푼 마음을 안고 참석한 첫 정모, 선배들에게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캠퍼스의 낭만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바로 재수강 제도의 변화였다. 재수강이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세 번은 할 수 있고, 재수강해도 원래 받았던 학점이 반영된다는 이야기는 아직 “평량평균”이라는 말의 뜻조차 모르던 내게 조금 어려웠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이야기구나 정도가 내가 할 수 있었던 생각의 전부였다. 아직 대학교의 강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던 때였다.
재수강 제도가 내게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은 수강신청을 하면서부터였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사는 것보다도 치열한 수강신청 결과 나는 원래 신청하고 싶었던 과목을 하나밖에 신청하지 못했고, 나머지는 아직까지 인원이 남아있는 과목들 중에서 정해야 했다. 이미 인기 있는 과목들의 정원은 다 찼으니, 내가 듣게 된 것은 비인기 과목들이었다. 배경 지식도 별로 없고, 생소한 수업들을 들으며 이번 학기 내에 최상의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해당 과목들을 수강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살펴보니 당연하게도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운 과목이라고 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신청한 교양 수업에 들어가 보니, 고학번 학우들, 그 중에서도 특히 해당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학우들이 꽤 많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새내기 시절 이 수업을 한 번 들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고학번이 되어 다시금 수강신청을 했다는 학우들도 있었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같은 수업을 듣고 경쟁하던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황스럽게도 나는 이들과 경쟁해 최상의 성적을 거두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대학에서 몇 년간 공부해온 학생들과 이제 막 고등학생 티를 벗고자 하는 학생들은 그 지식 면에서나, 대학 강의 방식에 있어서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발표나 레포트 작성에서는 그 차이가 뚜렷이 드러난다. 그런데 학교에서 바뀐 재수강 제도를 당장 13학번부터 적용하게 되었으니, 13학번은 대뜸 배수진을 치고 선배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는 학교에서 신입생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처사다.
또, 학교에서 이번 재수강 제도 개편안을 들고 나오며 든 이유 하나는 첫째로 소위 “학점 세탁”을 방지하여 학점이 변별력을 가지고 “스펙”의 필요성을 낮출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우리대학교만큼 극단적인 재수강 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대학은 거의 없다. 성균관대학교처럼 재수강 시 획득할 수 있는 학점에 어느 정도의 제한을 두거나, 서울대학교처럼 개편을 위한 위원회를 발족한 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대학교의 학생인 나의 입장에서는, 결국 장학금을 받고자 할 때나 이후 학점에 제한을 두는 다양한 활동, 더 나아가 취업 활동 등을 할 때 우리가 우선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대학교의 학점이 변별력을 가진다는 이유로 다른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요구하는 스펙을 우리대학교 학생들에게만 요구하지 않을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정말로 대학가 전체의 풍조를 바꾸고 싶었다면, 경쟁 및 상호 협력적인 관계에 있는 학교들과 공동으로 재수강 제도에 대한 논의를 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학교 측에서는 이번 재수강 제도 개편안으로 대학이 진정한 학문의 전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수강의 가능성이 없다는 부담감을 가진 학생들이 모험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그러나 익숙하거나 자신이 있지는 않은 과목에 도전하는 것이 쉬울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소위 말하는 “꿀강의(학점을 따기가 비교적 쉬운 강의)”에 더욱 집착하게 될 확률이 높고, 실제 그런 모습을 주변에서 보아 왔다. 재수강 제도가 그 목적을 십분 성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재수강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개설해야 하는 강의의 수를 줄여 효율을 높이고, “학점 세탁”을 방지하며 진정한 학문의 전당을 만들고자 하는 학교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바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재수강 제도 개편안을 학년도 아닌 학번에 따라 적용하고자 하는 학교의 조급한 태도는 진정 원하는 결과를 얻기에는 무리한 부분이 많다.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다. 이번 재수강 제도 개편안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