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귀는 어느새 대중가요와 팝송에 익숙해져버렸다. 가슴이 쿵쿵 뛰는 비트와 강렬한 멜로디를 들을 때와는 달리, 클래식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지루해지고 졸음이 몰려온다. 음악 교과서에서 만나서 그런가, 즐기기보다는 ‘들어야한다’는 의무감에 듣기도 하고, 때론 교양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애써 즐기는 척 할 때도 있다. 이렇듯 클래식은 우리에게 참 ‘먼’ 음악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대중가요의 홍수 속에서도 몇 백 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계속 멀리한다면 클래식의 그 맛을 끝까지 알 수가 없을 것 같아 큰 맘 먹고 연주회에 ‘직접’ 다녀왔다. 


아는 만큼 들리는 클래식
 
 다녀온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 트리오의 지휘자 정명훈 씨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우리 동네 음악회’였다. 클래식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정 지휘자의 이름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게다가 연주곡은 TV나 라디오에서 자주 들어 귀에 익숙한 베토벤 교향곡 제 3번 ‘영웅’.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갈 때처럼 노래 가사를 달달 외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곡을 어느 정도 ‘알고’ 간다는 느낌은 중요하다. 아는 만큼 음악회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음악회에는 연주곡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시간도 마련돼 있었다. 
 젊은 시절,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해 있던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영웅 교향곡’을 헌정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앉자 크게 실망한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결말을 예상이나 한 듯 2악장에 ‘장송곡’을 넣었으며, 이 부분은 많은 작곡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야말로 나폴레옹에 대한 베토벤의 애증이 가득 찬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공연시간은 1시간이라고 했다. ‘응? 1곡 연주하는데 1시간?’ 교향곡, 악장이라는 개념도 생소했던 나에게 1시간이나 걸리는 음악은 낯설었다. 곡당 4분 남짓 하는 가요를 떠올리고는 조금 의아했지만, 각 악장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클래식은 노랫말은 없지만 선율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리 음악을 알고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알 때 음악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드라마가 담겨 있는 악장들 
 
 제1악장은 영웅의 행적과 활약상을 그렸다. 첼로의 늠름한 소리와 목관악기가 내는 차분한 소리가 조화를 이루다가 마지막에는 점점 빨라지며 웅장한 느낌을 낸다. 초반의 잔잔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던 1악장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음악이 끝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교향곡을 연주할 때는 각 악장이 끝날 때가 아니라 노래 전체가 끝날 때 박수를 쳐야하기 때문이다.
 2악장이 시작됐다. 장송 행진곡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느리고 장엄한 느낌이 든다. 1악장 때의 긴장이 풀려서일까, 느린 템포에 하품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음악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는데, 계속되는 느린 노래에 나는 잠에 빠질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회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조는 것 역시 음악 감상의 한 방법이며, 오히려 억지로 깨어 있으려 하는 것이 진정한 감상을 망친다고 하니 앞으로 음악회에 갔다가 졸음이 오더라도 참지 말고 당당히 졸도록 하자!(?)
 스케르초와 론도 형식의 3, 4악장은 정말 신나게 감상했다. 지루했던 2악장과 비교가 되면서 전율은 더 커졌다. 호른의 앙상블에서 나오는 팡파르, 방방 울리는 큰북의 소리는 ‘클래식이 이렇게 신나는 장르였나’라는 생각을 만들었다. 특히 종결부로 접어들면, 긴 시간을 이어온 열정적인 영웅의 드라마의 찬란함을 표현하는 듯 화려하고 웅장한 변주가 이어진다. 끝날 듯 말 듯 하며 점점 빨라지고 커지다 “빰~빰~빰!”하고 음악이 끝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피하지 말고 즐겨라!
 
 은연중에 갖고 있던 ‘나는 클래식이랑 안 맞아’라는 생각은 사실 나 혼자만의 고정관념이었다. 생각해보면 클래식을 알아보거나 들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단지 익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왔던 것이다. 뭐든지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소리는 비단 어려운 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나에게는 회피 대상 중 하나였던 클래식에 직접 뛰어들고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쉽게 그 매력을 알아버렸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듣고 있는 휴대전화 연결음도, 아침을 깨우는 알람음도 대부분 클래식이 아닌가? 클래식은 결코 멀지 않다. 
 
 

 

오도영 기자
doyoungs9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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