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달리는 일일 마라토너

 지구력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다는 마라톤을 사람들은 흔히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내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 하면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마라토너들을 보면 ‘저게 웬 고생이야’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고 금빛 메달을 거머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마라톤은 인생에 한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아닐까 싶다. 중학교 체육 시간, 비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오래달리기를 했던 기자. 쉽게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마라톤의 세계에 발을 들여 봤다. 햇살은 뜨겁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달리기 좋은 5월, 월드컵 경기장 근처 한강공원에서 제12회 서울신문 하프마라톤대회(아래 대회)가 개최됐다.

파이브, 포, 스리, 투, 원, 출발~’
 
 장거리 통학, 조모임, 과제 등에 치여 사느라 운동에 늘 거리를 두고 살았던 기자는 ‘하프(21.0975km)는 뛰어야하지 않느냐’는 조언(?)을 뒤로한 채 10km에 도전했다. 많은 여대생들이 선호하는 ’나이키 우먼 레이스’나 ’핑크리본 사랑마라톤대회’같은 행사에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 대회를 택했다. 실제 대회당일 아침 8시 20분, 월드컵 경기장 역에는 외국인, 어린아이, 할아버지,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토록 그치길 바랐던 비는 대회 당일에도 계속해서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허둥대다가 출발 시간을 5분 놓친, 조금 늦은 출발이었지만 앞서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들던 조급함은 잊혀진 지 오래였다. 가로수 우거진 코스를 달리는 주황색 물결은 아름다웠다. 시원한 바람과 푸른 자연 덕분에 마치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작은 ‘일탈’을 저지르는 기분이 들었다. 해방감을 만끽하며 달리고 달렸다. 
 하지만 모든 행복한 순간에는 위기가 찾아오는 법. 숨이 벅차오르기 시작했고 꽤나 달렸다고 생각해 거리를 확인해보니 겨우 1km를 지난 상태였다. 10km를 만만하게 봤다는 생각이 들며 후회가 밀려왔다. 짧은 숨을 내뱉으며 뛰고 있는데 내 앞을 앞서나가는 한 남자아이가 보였다. 7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아이는 힘든 기색 없이 다부지게 달렸다.


10km 레이스, 너와 나의 시간
 
 반환점을 향해 달리던 중, 나보다 앞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지친 나에게 응원의 함성을 보냈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같은 길을 ‘달린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 마라톤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들 말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타인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라톤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1등을 거머쥐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는 더 나은 성적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마지막으로 달리는 이는 완주라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통해 성취감을 느낀다.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사람들도, 주변 풍경을 만끽하며 달리는 사람들도 자신만의 무언가를 위해 마라톤을 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함께 달리는 주변의 사람들은 앞질러야할 경쟁자가 되기도, 나를 다독여주는 동료가 되기도 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레이스를 뛰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게 되는 마라톤. 마라톤을 뛰는 일은 마치 한 인생을 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색의 유니폼을 입고 저마다의 목표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 진지했다. 마라톤의 매력은 ’정직’이다. 처음에는 실현이 어려운 목표처럼 보여도 꾸준히 연습한다면 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리는 동안 힘듦과 완주 후 기쁨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롯이 느낄 수 있다.  


 
1만여 명의 특별한 주인공
 
 재작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봉주 선수가 이 대회에 참석해 화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배구 김세진 선수, 한국 여자마라톤 신기록 보유자 권은주 선수도 참여했다. 리얼리티쇼 SBS E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엄마’의 촬영이 진행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유명인들이 함께한 대회였지만 도착점을 통과하는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5km를 완주한 최연소 4살 어린이도, 하프 코스를 2등으로 통과한 환갑의 할머니도, 그리고 수많은 참가자들과 함께 시간 내에 완주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 기자도 특별한 주인공인 하루였다. 
 누군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스펙을 쌓아야한다는 자기 최면을 건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스스로 접수를 했고, 각자의 집으로 배달된 번호표에 기쁨을 얻었다. 굴곡진 인생의 매 순간을 경험하느라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이들에게, 마라톤은 ‘짧고 굵게’ 온전히 나를 위한 특별한 시간을 제공한다. 
 
약 1시간 20분, 제한 시간을 10분 앞두고 아슬아슬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코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은 숫자로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일주일 밤새고 뛰어도 완주는 할 수 있을 것”이라던 앞서 완주했던 친구의 이야기에 자신감을 얻고 복잡한 생각 없이 일단 도전한 기자처럼, 때로는 단순하게 자신만의 버킷리스트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장미 기자
mmmi08@yonsei.ac.kr
사진 조윤호 기자
giyom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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