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이 없어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세계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대상을 ‘보고’ 촬영하는 모습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전시회의 제목인 ‘Sight Unseen', 즉 ‘보이지 않는 시야’는 다소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전시회가 제안하는 ‘제한된 시력*을 가진 작가들이 다양한 감각과 마음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찍은 것’이라는 사진의 새로운 정의는 이 역설을 수긍하게 만든다. 과연 시각만이 사진 촬영의 중추인가? 시각장애인 작가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보자.
 

어둠속에서 진행되는 편견을 없애는 전시회

  시각예술과 시각장애인의 만남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제만큼이나 전시장의 분위기 또한 남다르다. 매표창구 앞 바닥은 연못의 물결이 퍼지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물에서 파동이 전달되듯이 전시회를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도 서서히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듯 했다. 전시장 내부의 벽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할 검정색이었다. 검은 벽에 걸려 있는 형형색색의 사진들은 어둠 속에 사는 시각장애인들의 빛에 대한 갈망을 의미하는 듯 보였다.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사진

  전시작가 중 한 명인 브루스 홀은 “나는 완벽한 세상을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사진에서 결점과 두려움이 가득한 나의 세상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작품 속에 담아 놓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헤라르도 니헨다의 사진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니헨다의 사진에는 촬영 당시 그가 했던 생각이 점자로 쓰여 있다. 이는 비장애인들은 점자를 읽지 못하고, 시각장애인들은 사진을 보지 못하는 ‘이중적 시각 장애’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두 번째 전시관에서는 직접 안대를 끼고 작품을 만져볼 수 있는 로시타 맥킨지의 ‘촉각 그림’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장황한 풀밭부터 이국적인 대학 교정까지 평소엔 눈으로만 보던 풍경들을 촉각에만 의지해 느껴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시각 없이 다른 감각과 마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느껴보자. 백문이 불여일견! 이 체험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력을 초월하여 더 넓은 세계를 그려내다

  시각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같이 생생한 이미지를 좋아한다. 또한 암흑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빛에 의해 생기는 순수한 이미지에 대한 갈망과 표현 욕구가 비장애인보다 강하다. 전시된 사진들은 비장애인이 찍은 사진보다도 색감이 화려하고 구도가 정교하다.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이라는 점을 모르는 상태로 봤다면,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이다. 이 전시를 보면 시각장애인 사진작가들이야 말로 가장 꾸밈없는 시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작가 피트 에케트는 “나는 여러분이 삶을 다르게 인지하게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사진은 시각 외의 다른 감각들을 통해 탄생하게 됨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회를 둘러보면 그의 말처럼 사진은 시각으로만 만들어지는 예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전시회장을 찾아가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제한된 시력: 이 사진전에서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시각장애인과 시력을 거의 상실한 법적 시각장애인의 사진을 다룬다. 한국에서는 한 쪽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인 경우 법적 시각장애인으로 규정한다.


글 서현재 조가은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자료사진 싸이트언씬 홈페이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