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소설 『역마』의 배경 화개장터에 가다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 운도 결국은 할머니가 장본이라··· - 소설 『역마』 중

김동리의 소설 『역마』는 1940년대의 화개장터가 배경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위치한 화개장터. 지리산의 맑은 물이 흘러내려와 섬진강 자락과 만나는 곳이자,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서 오순도순 왁자지껄 장을 펼친 곳이다. 김동리 작가는 왜 하필 이곳을 『역마』의 배경으로 삼았을까? 문학 속 배경 화개장터를 찾아 버스로 네 시간여의 길을 따라 내려갔다.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화개장터

경상남도 하동행 버스를 타고 ‘화개 정류소’에서 내린 후 다리 하나를 건너니 작고 오래된 포장마차 천막들이 즐비했다. ‘설마 이게 화개장터?’라는 생각에 당혹감에 휩싸이던 찰나, 천막 뒤쪽에 위치한 작은 길을 따라 쭉 들어선 시장들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커다란 본연의 장터 모습이 나타났다. ‘어서오이소’라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쓰인 대문으로 객들을 맞이하는 화개장터는 나물 가게부터 농산물, 차(茶), 국밥, 장난감 가게까지 그야말로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곳이었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롓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 조기, 자반 고등어들이 올라오곤 하여, 산협 치고는 꽤 흥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으나···

 

구경 한 번 와보세요

장터를 둘러보고 있는데 한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께서 차(茶)를 마셔 보라며 건네주신다. 차를 받아 마시며 화개장터의 역사를 묻자, 그는 화개장터에서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분의 가게로 안내했다. 젊은 새댁일 때부터 화개장터의 역사를 함께 해 온 배미순 씨(68)는 “지리산 등 산지에서 바로 구해 온 녹차, 매실, 감, 밤, 고사리, 두릅 등을 팔기 때문에 장터 곳곳에서 자연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닷새장으로 열리던 화개장터는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현재 매일장으로 열리고 있다. 화개장터는 관광객들의 즐거운 북적거림으로 가득했다. 서울에서 온 정영숙 씨는 “말로만 듣다가 직접 와서 보니 정감이 가고, 직접 캐 온 나물 장사 등 서울에서 보지 못하는 신기한 부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단체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온 정상윤 씨(22)는 “장터 분위기가 어르신들로 하여금 옛날 생각을 많이 나게 한다고 좋아하셔서 나도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경상도 하동, 전라도 구례 사람들이 모여들던 화개장터는 문학 작품과 노래 등으로 유명해지면서 전국민이 알고 있는 ‘국민 장터’가 됐다.

 

운명을 결정한 세 갈래 길

“체 장수 딸이다. 구례 산다더라. 이번에 어쩌면 하동으로 해서 진주 쪽으로 나가볼 참이라는데 어제 저녁에 화갯골로 들어갔다.”···

그의 발 앞에는, 물과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 있었으나, 화갯골 쪽에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 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옥화의 주막에 맡겨진 체 장수의 딸 ‘계연’과 사랑에 빠지는 성기. 구례와 하동 사이에 위치한 화개장터의 주막은 체 장수와 계연이 거쳐 가기에 알맞은 장소였을 것이다. 성기의 사랑은 체 장수가 서른여섯 해 전 주막을 들러 하룻밤을 보낸 옥화의 아버지이고 계연이 옥화의 이복동생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끝이 난다. 『역마』 속에 그려진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지리산의 절경과 민속적인 화개장터의 투박함이 어우러져 성기와 계연의 사랑은 더욱 어수룩하고 애달프다.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땅 구례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져,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 본류였다.
 

『역마』의 옥화와 그의 아들 성기의 주막이 있던 화개장터는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성기의 아버지는 떠돌이 중이고, 옥화의 아버지는 떠돌이 남사당패다. 성기의 역마살은 떠돌이를 서방으로 맞이한 집안 내력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듯하다.

화개장터는 세 갈래 냇물이 한데 합쳐진 장소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중간에 위치해있지만 지역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화개장터는 온갖 떠돌이 장사꾼들의 집결지인 한편 세 갈래 길의 분기점이다. 성기는 계연이 떠나간 구례의 길과 그가 살아오던 화개의 길을 등지고 결국 하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세 갈래의 길이 모이고 다시 세 갈래로 흩어지는 화개장터. 이곳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게 되는 삶은 운명이 된다.

 

섬진강 줄기 따라 쌍계사로

배씨를 따라 장터의 구석으로 가자 화개장터의 역사와 이를 배경으로 한 『역마』가 잘 드러나는 기념물들이 여럿 있었다. ‘추억의 화개’라고 제목이 쓰여 있는 커다란 팻말에는 나룻배로 오고 가던 구 화개장터부터 현재 장터까지의 역사가 사진으로 고스란히 녹아 있다. 큰 물난리를 겪어 물에 잠긴 화개장터의 모습이 담긴 사진에 배씨의 젊은 시절도 담겨 있었다. 물난리가 나기 전의 구 화개장터는 지금의 자리가 아닌, 다리를 건너기 전의 위치였다. 그 시절에는 장터 주변 섬진강을 따라 나룻배를 타고 이동했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던 떠돌이 장사꾼들은 화개장터의 주막에서 하루를 쉬었다 가곤 했다. 옥화의 주막도 그 중 하나였을 것이다.
 


화개장터에서 ‘십오 리’ 떨어진 곳에는 쌍계사가 있다. 성기가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수양했다는 쌍계사를 향해 화개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을 달렸다. 길게 나 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쌍계사 입구 문들이 일자로 서서 객들을 맞이한다. 첩첩이 늘어선 문들을 지나 쌍계사에 도착하자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풍긴다.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구조와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절 쌍계사 한 켠에는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보물 500호), 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 47호), 쌍계사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등 지정문화재를 비롯해 많은 비지정 문화재가 소개돼있다. 쌍계사에서 흐르는 한적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성기의 역마살을 풀기 위한 할머니의 염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화개장터로 돌아오는 길의 섬진강 줄기는 과거 나룻배를 탄 장사꾼들을 연상케 했다.

쌍계사에서 화개 장터까지는 시오 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 돌과 산협의 장려한 풍경이 언제 보나 그에게 길 멀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

 

사람의 장터, 민족의 화개장터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잠시 발만 붙였다 가는 것을 반복하는 화개장터에서 태어난 성기. 그에게 역마살은 거스르지 못할 운명이었다. 화개장터는 이런 성기의 운명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장소가 아닐까. 역마살의 운명을 결국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 성기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화개장터 객들의 모습을 함축한 인물일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석지은 기자
doljieun@yonsei.ac.kr

사진 김은지 기자
kej_82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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