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면 키 크고
젊은 애는 다 호준이로 보여...
졸업할 때 우등상도 받은
귀한 아들이었는데...”

지난 2012년 10월 14일 우리대학교 ROTC 50기 고(故) 기호준 동문(정경경영ㆍ08)이 연천 모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한타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했다. 기 동문은 2012년 3월 1일 소위로 임관 후 기계화학교에서 4개월 간 교육을 받고 6월부터 연천군 한탄강 유역에 위치한 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기 동문은 9월 21~22일 이틀 간 산악 행군 훈련을 한 직후인 23일부터 발열, 근육통, 오한, 두통 증세가 있어 대대 의무과에서 감기약을 처방 받고 수액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호전이 없어 9월 25일~28일 사단 의무대와 부대 인근 민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경구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차도를 보이지 않아 국군 양주병원으로 후송돼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혈소판 감소 및 신장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을 보여 신증후군출혈열로 확진돼 의정부 성모병원을 경유, 9월 30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됐다.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 치료를 받았으나 10월 14일 20시 40분경 한타 바이러스 심폐 증후군으로 사망했다. 
 

한탄강 유역에서 발견된
한타 바이러스

김효열 교수(원주의대ㆍ감염내과)의 논문에 따르면 기 동문을 사망에 이르게 한 한타 바이러스는 신증후군출혈열의 일종이다. 신증후군출혈열은 농촌지역의 설치류(등줄쥐, 집쥐 등)의 분비물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퍼져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거나 매개체를 통해 감염된다. 감염 위험 시기는 건조한 10~12월과 5~7월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10~12월에만 유행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농촌에서 빈번히 발생하나 도시의 집쥐나 실험실 쥐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감염 고위험군은 야외활동이 많은 남자, 군인, 농부, 동물 실험실 요원 등으로 중증형의 경우 1.5~12%가 사망에 이른다. 한타바이러스는 이호왕 박사가 한탄강 유역에서 잡은 등줄쥐에서 발견됐는데 기 동문이 군복무를 한 지역이 바로 한탄강 유역이었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1월 29일 발표한 ‘2012년도 법정감염병 감시 잠정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발생한 신증후군출혈열 환자는 총 365명으로 발병률은 10만 명당 0.72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연천지역에서는 지난해 군인 5명, 민간인 4명이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이중 민간인 4명은 모두 치료를 받아 건강을 회복했다고 연천군 보건소 관계자는 답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기 동문의 치료를 담당한 한상훈 교수는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지만 통상 콩팥만 손상시키는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하면서 증세가 급격히 악화됐다”며 “바이러스 자체를 박멸하는 약이 없기 때문에 백신 접종을 통해 감염을 예방하고 등줄쥐가 서식하는 야외에서 활동을 삼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남들보다 건강했던 아들이 왜

기 동문은 대한민국 남자 평균 이상으로 건장한 체격에 여타 질환을 앓은 적이 한 번도 없이 건강했다. 그런 기 동문이 왜 사망하게 된 것일까. 기 동문은 소속부대의 신증후군출혈열 예방 접종 이후에 전입돼 예방접종에서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기 동문의 어머니 이관수(51)씨는 “한탄강 유역에서 오래 근무한 부대 지휘관이 정기적으로 예방접종 누락 대상자를 확인해 백신을 맞게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아들의 죽음을 억울해 했다. 또한 이씨는 “가을에 신증후군출혈열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빈번히 발생하는 한탄강 유역에서 야외 훈련을 한 이후에 발열과 근육통 증세를 보였다면 당연히 한타바이러스 감염을 의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주일간 대대 의무과와 사단 의무대에서 방치했다고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일반인들도 두통이 있으면 두통약을 먹는 등의 자가 치료를 먼저 한다”며 “이후 차도가 없을 때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는 것처럼 군에서도 경과를 지켜본 후에 치료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방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도 아닌 한타바이러스 감염 고위험군에 속한 지역에서 훈련 중 증세가 발생한 정황상 즉각적으로 신증후군출혈열을 의심해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가유공자는 됐지만
일계급 추서 진급은

지난 4월 9일 서울지방보훈청은 기 동문과 유족에 대한 국가유공자 심의 통과 결정을 내렸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5호에 의하면 순직 군경 요건은 ‘군인 또는 경찰ㆍ소방공무원으로서 국가의 수호ㆍ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ㆍ재산보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이라고 규정돼 있다. 법률에 의거 국가유공자 심의는 통과가 됐지만 유족이 요구하는 ‘일계급 추서 진급’은 심의 결과 부적격 판정을 통보 받았다. 이에 이씨는 “아들이 부대에서 축구를 하다가 걸린 질병도 아니고 훈련 중에 발병해 사망에 이르렀는데 복무기간이 부족하다고 추서 진급을 해주지 않을 거면 조금 더 있다가 진급할 수 있는 기간 다 채우고 죽이지 왜 이렇게 빨리 죽였나”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해당 부대 관계자는 “추서 진급은 보직 기간, 사망 사유, 포상 등 여러 요건이 충족돼야 심의 위원회에서 가결이 되는데 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결된 것으로 보인다”며 “부적격 판정 이후에 다시 한 번 추천서를 작성하기 위해 공적을 추적했지만 추가적인 공적을 발견할 수 없어 육군본부에 재심의를 요청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부대에서 전 장병의 뜻을 모아 유족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전달하기로 한 1천 5백만 원이 해당부대와 유족 간 해석차이로 인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부대에서는 고인이 사망한 지난해 11월 한 달치 봉급을 행정 착오로 잘못 넣었다며 되돌려달라고 전해 유족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이씨는 “아들을 죽인 것도 실수, 봉급을 잘못 넣은 것도 실수라는 군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유가족의 마음을 두 번 세 번 아프게 하는 행위를 멈춰 달라며 계속 돌려달라고 하면 그깟 80만원 10원짜리로 바꿔서 주겠다”고 말했다. 해당 부대 관계자는 “행정 착오로 인해 봉급이 입금돼 유족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죄송하지만 설사 실수로 입금됐다 하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고로 반납돼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식 잃은 부모님께 봉급을 돌려달라고 말씀드리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고 원칙적으로는 이런 행정착오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다시는 이렇게 아플 일이
없기를 바라며

고 기호준 동문은 재학 중 네 차례 성적우수상을 수상했고 졸업생 중 성적이 상위 1%에 해당돼야 받을 수 있는 우등졸업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그의 친구들은 좋은 성적 뿐 아니라 학과와 학군단 내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했었다고 밝혔다. 그의 친한 학과 동기인 박수규(정경경영ㆍ08)씨는 “처음에는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여서 쉽게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자기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많은 친구들과 후배들이 따랐다”고 말했다. 기 동문의 어머니는 마음껏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그러면서 다시는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아들들이 막을 수 있는 질병으로 인해 아파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며 예방조치를 철저히 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 기호준 동문은 현재 국립현충원에 위치한 ‘소위 기호준’이라 새겨진 석비 아래 묻혀 있다. 이씨는 “학군단 동기들은 모두 중위 혹은 더 높은 계급으로 전역을 할 텐데 아들만 영원히 소위 계급으로 남는 것이 안타깝다”며 “아들의 명예를 위해서 일계급 추서 진급을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타 바이러스:  미생물학자 이호왕 박사가 1976년 한탄강 유역에서 사는 등줄쥐의 폐에서 처음 발견한 바이러스. 등줄쥐의 분비물에 의해 감염된다. 현재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약이 없기 때문에 감염시 증상에 따라 보존적인 치료를 한다.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야외 활동을 삼가거나 예방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손성배 기자
89sungbae@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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