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The Y
[커버스토리] 당신은 오늘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을 줄 알면서도 살잖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을 희망차게도, 한없이 허탈하게도 만들 수 있다. 당신은 저 말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만약 허탈함을 느꼈다면 당신은 오늘의 사소함에 몸서리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이가 그토록 살기를 희망했던 내일’이라지만 어제 세상을 떠난 이와 당신의 세계는 염연히 다른 탓에 당신의 오늘은 여전히 가볍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어제 세상을 떠난 이의 세상으로 가게 된다면? 그 삶이 계속 가볍기만 할 수 있을까.


끝의 시작에서 본 나의 진짜 얼굴

눈을 감는 순간에만 죽음과 직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종 힐다잉체험이 있기 때문에 의외로 죽음의 세계로 잠시 떠나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힐다잉체험이란 힐링(healing)과 죽음(dying)의 합성어인 힐다잉을 경험해봄으로써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기자는 우리대학교 신촌캠에서 멀지 않은 힐다잉체험장을 찾아가봤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체험장에 들어섰다. 체험자들의 대부분은 4~50대 부부였다. 20대 체험자가 있어 참가동기를 묻자 “대학교 과제”라고 우물쭈물 답했다. 기자는 ‘역시 죽음은 아직 젊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안도했다. 그러나 체험의 첫 단계인 영정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앉았을 때부터 죽음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셀카를 찍을 때 신경 쓰던 갸름한 얼굴, 조금 더 큰 눈은 잠시 잊었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담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보러온 사람들에게 ‘제 인생은 이만큼이나 행복했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싶었다. 사진을 찍을 때, 있는 힘껏 웃었다. 그러나 영정사진 속의 나는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저 애써 웃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죽음 앞에 선 나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
“엄마도 헤어지기 싫어.”

힐다잉체험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저승사자가 인사를 건넸다. 어두컴컴함에서 비롯된 몽롱함은 현실과 체험장을 완전히 분리시켰다. 체험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자신들이 들어가게 될 관 바로 옆이었다. 준비된 테이블에 영정사진을 올렸다. 조명에 비친 사진 속의 사람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 얼굴에 익숙해질 때쯤 영상 하나가 재생됐다. 평소에는 별로 관심 있게 보지 않던 휴먼다큐멘터리였다. 영상의 주인공은 암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등지고 세상을 떠난 엄마였다. 서로를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체험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눈을 감은 부인을 안고 오열하는 남편의 모습은 죽음을 ‘체험’하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마저 들게 했다. 체험장에 있는 사람들은 남편의 모습을 보고 남을 사람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죽음이란, 누군가가 떠남을 의미함과 동시에 누군가의 남겨짐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단순했던 마지막 언어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생각을 갖게 될 즈음, 살아생전에는 입을 일 없는 수의를 입었다. 수의는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또 생각만큼 까슬까슬했다. 내 몸보다 훨씬 큰 옷을 입고 어쩔 줄을 몰랐다. 새 옷을 입었을 때의 설렘은 없었다. 삶과 가장 거리가 먼 옷을 입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여러분은 이제 세상에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게 됩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유언장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무슨 말을 써야할지 막막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여태까지 하지 못했던 말들이 동시에 솟구쳤다. 그래서인지 정작 밖으로 나오는 말은 없었다.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유언장을 쓸 시간은 길지 않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보낸다”며 “어떤 말을 쓸지 미리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하던 진행자의 말이 그제야 이해됐다. 잠시 생각하다 펜을 들었다. 막상 쓰기 시작하니 A4 용지 한 장이 금방 꽉 찼다. 원망하는 마음 같은 건 생각나지도 않았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다른 체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가족에 대한 사과와 감사의 말이었다. ‘어머니, 제가 더 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리 보물1호 딸은 잘 할 거라고 믿어’, ‘아빠, 제가 힘든 것만 생각해서 죄송합니다’, ‘여보, 사랑해’ 하고 싶은 말을 간신히 꾹꾹 눌러 담은 결과물들. 결국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단어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체험자들은 식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낭독을 들으며 울고 있던 기자에게 진행자가 다가왔다. 젊은 사람 대표로 유언장을 낭독해달라고 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낭독을 간신히 끝마쳤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서

힐다잉 체험의 마지막 순서인 입관 순서가 왔다. 관 뚜껑을 열었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관 속에 들어가 누웠다. 양 어깨가 관에 닿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비좁은 공간이 마지막 가는 길에 허락된 전부였다. 조명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상여가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딱!” 소리와 함께 관 뚜껑이 닫혔다. 내가 어둠의 일부가 된 듯이 주변이 모두 어둠으로 변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눈을 감기 싫었다. 조금만 있으면 눈이 어둠에 적응해 주변이 보일 것 같았다. 몇 분간 눈을 깜빡거렸지만 결국 어둠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 순간 가장 미안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가장 속상해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훌쩍이는 소리는커녕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어두운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갑자기 눈이 떠졌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내가 누워있는 공간이 보였다. 관 천장은 엄청나게 높았고, 천장 표면에 잊고 있던 얼굴들이 나타났다. 그 얼굴은 화를 내는 듯 보였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읽어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 얼굴들이 하는 이야기를 알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같은 사람, 다른 삶

10분의 시간이 지나고 불이 켜졌다. 그때서야 관 안의 공간이 환해졌다. 높게 느껴졌던 천장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버리고 싶은 기억은 관 속에 놓고 나오십시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떠올랐던 과거의 모습들을 버리기로 했다. 사라지지 않을 죄책감을 미련 없이 버렸다. “여러분은 이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노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흘러나왔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속을 채웠다. 그리고 내 손으로 관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수의를 던져 넣고 관 뚜껑을 닫았다.
“다시 탄생하신 걸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한날한시에 태어나셨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세요”. 마음속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인사를 나눴다. ‘안녕’이라는 말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나의 주변이 모두 안녕함에 감사했다. 체험자들의 표정도 한층 밝아보였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 경험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삶의 과정 중에서도 잠시 죽음에 다가설 수 있다. 당신은 그 순간에 그 여느 때보다 더 깨끗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엔 만족도, 그리움도, 미움도 아닌 ‘후회’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을 어떻게 살겠는가.


*힐다잉체험: 힐다잉체험 프로그램은 ▲힐다잉체험 안내 ▲힐다잉체험 ▲새로운비전 강의 ▲후원사 안내로 이뤄져 있으며, 매주 신청을 통해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효원힐링센터(1644-3350, http://www.hwhealing.com/)로 문의하면 된다.


글 최지은 기자
choichoi@yonsei.ac.kr
자료사진 효원힐링센터

최지은 기자  choichoi@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4
전체보기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삼애캠 주택단지 개발 계획 둘러싸고 잡음 일어
[신촌·국제보도]
삼애캠 주택단지 개발 계획 둘러싸고 잡음 일어
[신촌·국제보도]
매번 바뀌는 총장선출 제도
[신촌·국제보도]
학내 민주주의의 꽃, 총장직선제?
[신촌·국제보도]
134주년에 다시 만난 연세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