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하고 우습지만 의미있는 이색 묘비명

  당신은 묘비명에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가? 여기 구구절절히 자신의 행적을 남기지 않고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인생의 강렬하게 표현한 묘비명들이 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말은 영국의 유명 극작가 겸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쇼의 묘비명이다. 현대에서 그는 성공한 소설가로 인정받지만 살아생전 그는 실패한 소설가였다. 하지만 실패에 굴하지 않은 그는 희곡을 통해 마침내 극작가로 성공하게 된다. 버나드 쇼는 그의 나이 94세까지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삶을 살고자 했는데 이러한 그의 성향은 묘비명에서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며 현실에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삶의 좌우명을 다소 자기 풍자적인 어투로 풀어냄으로써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재치를 잃지 않은 진정한 영국의 멋쟁이 신사였다.

“에이, 괜히 왔다”
  대중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이 묘비명은 첫인상에서부터 인생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느껴진다. 바로 걸레스님으로 유명한 중광의 묘비명이다. 중광스님의 타계 직전 열린 마지막 전시회의 제목 또한 ‘괜히 왔다 간다’였다. 자유기고가 박경남은 “걸레스님이란 자신을 닦고 세상을 닦는 걸레가 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며 “인간으로서 완벽한 삶을 꿈꿀수록 더욱 처절하게 내치는 것이 그만의 수행법이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를 추억했다. 그가 해탈했는지 아닌지는 죽은 이만 알게 되어 버렸지만 삶의 과정 내내 수행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점만 보더라도 그가 결코 괜히 왔다 가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 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모르니...”
  이 묘비명은 본다면 누구나 묘비명의 주인이 상당한 애주가였을 것이라 예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묘비명의 주인은 일본의 승려 모리야 센얀이다. 걸레스님으로 불리며 파격적인 필치로 독보적인 세계관을 가졌던 중광스님은 “죽어서까지 술을 마시기를 바란다는 것은 살아서도 술을 즐겼다는 의미일 것”이라며 “선승의 신분으로 술을 즐겼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종교적 형식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운이 좋으면 술이 샐지도 모른다는 승려의 기대는 죽어도 죽지 않는 윤회의 가치관에서 나온 독창적 발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개그맨 김미화는 개그프로그램에서 묘비명을 ‘김미화, 웃기고 자빠졌네’로 하고 싶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펜을 들어 김미화처럼 짧지만 강렬한 묘비명을 써 내려가 보는 건 어떨까. 버나드쇼처럼 한 문장의 위트로 죽어서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묘비명도, 센얀처럼 단순해 보이는 문장 속에 자신만의 고차원적인 생각을 담는 묘비명도 모두 좋다. 죽음 이후 묘비명으로써 기억될 먼 미래의 ‘나’를 위해.


남채경 기자
skacorud2478@yonsei.ac.kr
자료사진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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