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에서 대학은 민주주의의 보루였다. 4.19민주혁명과 6.10민주화운동 등 한국 민주주의의 시금석은 모두 대학의 자유로운 공기로부터 다듬어졌다. 한편 대학은 국가의 민주화와 더불어 스스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공동체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의 바람과 함께 대학의 민주주의는 경제성과 효율성의 명분하에 후퇴를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사립학교법이 대학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제도화한 대학평의회가 구성되지 않거나 구성되더라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명박 정부의 국공립대 총장직선제 폐지정책은, 대학의 지배구조를 정부가 강압적으로 획일화하였다는 점에서 심각한 대학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학 민주주의의 후퇴는 궁극적으로 대학 구성원들의 의지와 능력이 부족해서 초래된 것이다. 학생들은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체득하고 실천하기보다는 주어진 기능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능숙한 원자화된 개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교수들도 실적과 효율을 앞세운 대학행정의 관리대상이 되어 교육공동체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대학사회의 무기력과 구성원간의 소통불능은 대학행정의 일방통행식 정책결정과 집행을 방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청회나 심의회와 같은 학내 소통의 장은 명분축적용 형식절차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외부전문가까지 참여한 등록금심의위원회가 총장의 불참을 이유로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한 것은 대학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준다. 역사문화적 가치를 가진 용재관이 개발계획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철거돼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빈자리의 을씨년스러운 몰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약할 수 없다. 연세학부교육의 특징으로 선전되던 개방형 자유전공학부제는 학내구성원의 공론과정도 없이 폐지수순을 밟고 있다. 백양로 재창조 사업에 대해 뒤늦게 교평에서 공청회를 열지만 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구성원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할지 미지수다.

바로 이러한 대학구성원의 무기력과 일방통행식 행정의 일상화는 우리에게 다시 대학 민주주의를 숙고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연세의 주인들이 무관심, 무참여, 무정견의 타성을 벗고 진리의 전당이자 사회의 목탁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자율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다시 한번 분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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