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이름을 지어온 작명의 달인 박태현 작명가와 이미림 네이미스트를 만나다


.zip[쩜-집] 【명사】 :
① 데이터를 압축, 보관하기 위한 파일형식
② 연세춘추에서 매달 셋째 주 발행되는 재미를 압축한 매거진

“내 이름 왜 이렇게 이상해?”

 다 큰 자식에게 이런 원망을 듣지 않으려는 엄마의 심정으로, 연세춘추 매거진 창간을 앞둔 기자들은 제호를 정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흔하지 않고’, ‘불리기 쉽고’,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을 만족하는 단어를 찾기란 얼마나 어렵던지. 대충 지어버리고 싶다가도 이 이름을 대대손손(제.발.) 쓸 생각을 하니 책임감이 목을 조여 왔다. 십 년쯤 후에 “매거진 이름이 jpg였나 jyp였나”하는 사람이 없길. 발음이 재밌다며 한 번쯤, 아니 두 번쯤만 따라 읽어주길. 또 ‘.zip’이라는 단어를 한 번 듣고도 뇌리에 박혀 매거진을 단박에 떠올려내길 바라면서 제호를 확정했다. 매거진 이름 하나 짓기가 이러한데, 하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이 평생 불릴 이름을 지으려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약은 약사에게,
이름 짓기는 전문가에게?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의 이름에 영(靈)적인 움직임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좋은 기운을 주기 위해 역학을 공부한 전문가들에게 작명을 맡겼다. 43년 간 전문적으로 이름을 지어온 이대아작명원의 작명가 박태현(74)씨는 “운명을 좌우하는 70%가 사주라면, 나머지 30%는 이름에 있다”고 할 만큼 이름의 역할을 강조한다. “인간은 인생이라는 자연을 여행하는 관광객과 같다”며 가이드에 해당하는 ‘이름’을 잘 지어놓는 것이 헤매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식 이름 짓는 법

 한자로 가득한 오래돼 보이는 책들로 둘러싸인 철학관 안. 하얀 칸막이 발 뒤에 앉아 손님을 맞는 모습이 흡사 점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작명가는 손님 얼굴 보고 방울 한 번 흔들어 보고선 “‘김춘추’입니다”하는 걸까? 박씨의 말에 따르면 이름은 ‘커피 한 잔 하면서’ 뚝딱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흔히 알고 있듯이 음양오행만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시대흐름을 고려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사주, 음양*, 자원**, 수리***, 발음오행**** 등을 모두 분석하고 조합해야만 좋은 이름이 나온다. 예를 들면 획수로 좋은 이름도 오행 상으로 나무(木)에 해당하는 글자와 쇠(金)에 해당하는 글자가 만나면 도끼로 나무를 찍는 형상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무조건 좋은 이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에 맞는 이름을 고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실제로 장남에게 쓰기 좋은 한자를 막내에게 써버리면 그 사람은 잘되더라도 형들이 다 잘되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 이름에 쓰지 말아야 할 ‘불용문자’도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러 쓴다. 일반적으로 너무 강하거나 약한 한자를 쓰지 않는 것으로 돼있는데, 강한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일부러 이름에 약한 한자를 써서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이름은 ‘아름다울 미(美)’인데
넌 왜 안 예뻐?

 요즘은 신생아 작명을 위해 찾는 사람만큼이나 개명을 위해 작명소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촌스러운 이름이나 어려운 발음도 개명의 이유가 되지만, ‘불용문자’를 사용한 안 좋은 이름 때문에 뭔가 일이 안 풀려 이름을 바꾸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자에게 불용문자인 ‘맑을 숙(淑)’이나 ‘아들 자(子)’자를 쓴 땡숙이 땡자들이 작명소를 그렇게 많이 찾는단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자신의 이름도 한 번 점검해보자. 쓰지 말아야 할 다른 한자로는 무덤 묘(墓)자, 재앙 재(災)자, 빌 공(空)자, 약할 약(弱)자 등이 있다. 이름부터가 텅 비어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들이 ‘재앙아 재앙아’ 하는데 좋은 일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좋은 이름은 부를수록 좋고, 나쁜 이름은 부를수록 나쁘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개명을 원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알 만하다. 그런데 잠깐. 한자의 뜻만으로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어디 착할 선(善)에 아름다울 미(美) 자를 쓰는 선미들이 항상 착하고 예쁘기만 하던가. 물론 클 대(大), 가운데 중(中)자를 써서 대중의 중심이라는 ‘이름 값’을 톡톡히 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보통이다. 성명학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니란다. 그러니 섣부른 돌팔이 풀이는 위험할 수 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인간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선물’이라는 이름을 잘 지어주기 위해 부모들은 오늘도 작명소를 찾는다. 또 자연과 천문학, 역학을 공부한 작명가들은 아이에게 사주를 보완하고 좋은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예쁜 선물을 고른다. 사실 이름 때문에 잘 풀렸는지 못 풀렸는지 증명할 방법도, 근거도 없으니 성명학을 그저 미신이고 과신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의 앞길을 밝히려 기원하는 마음으로 한 번 맡겨볼 만하지 않을까.

브랜드 이름 짓는 법

 그러나 여기 그 선물을 받지 못했지만 일생동안 선물을 주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다. 집안사정상 아이 이름을 지어주지 못해 이름이 없던 그녀를 마을사람들은 한동안 ‘이름이’라고 불렀고, ‘이름이’는 커서 이름을 짓는 이미림(48) 네이미스트가 됐다. 지난 20년간 ‘해찬들’, ‘마이쮸’, ‘에버랜드’ 등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1세대 네이미스트. 그녀를 만나봤다.
 “이름을 짓지만 작명(作名)가는 아니다.” 이씨는 네이미스트 직업에 대해 사람 이름 짓는 것과 다르다고 못 박았다. 그렇다면 네이미스트는 작명가와 어떻게 다를까? 네이미스트란 제품 이름, 회사 이름, 서비스 이름 등 ‘브랜드’를 만드는 직업이며, 마케팅의 일종이다. 창의적인 생각 하나로 브랜드 이름을 붙여주고 돈을 받는 직업이라니. 사람들은 이런 네이미스트를 우아한 ‘백조’쯤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이름 하나를 짓는 프로젝트는 한 달도 빠듯한 일정으로, 끝나고 나면 2~3일은 앓아누울 정도로 힘든 작업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네이밍 제의가 들어오면 제품에 대한 소개와 스토리를 듣고 나서 경쟁브랜드 등 시장조사를 몇 주에 걸쳐 한다. 네이미스트들은 매번 다른 분야의 일을 맡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받으면 그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필수다. 충분히 많이 알고 있어야 아이디어가 ‘팝업’하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세련된 이름을 짓기 위해서는 상품시장 트렌드나 네이밍 트렌드도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때 ‘OO닷컴’이 유명했던 것처럼 요즘에는 긴 말을 줄여 또다른 단어로 나타내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



예쁜 이름이 좋은 이름?

 그렇다면 브랜드 이름에 있어서 좋은 이름이란 어떤 이름일까? 이씨는 “기억하기 쉽고, 발음하기 좋고 의미가 좋다기보다 ‘컨셉에 잘 맞는’ 창의적인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말한다. 즉, 아무나 들어서 좋은 이름이 아니라 회사에서 원하는 마케팅 전략에 맞는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처럼 IT기기에 어울리지 않는 낯선 이미지인 ‘카카오’를 차용해 신선한 느낌으로 ‘문자메시지’와 차별화를 시킬 수도 있지만 ‘sk telecom’이나 ‘삼성플라자’처럼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이렇게 네이미스트들은 업무를 맡으면 그에 맞는 브랜드 맵을 그리고 목표지점을 설정한다.
그리고 그 목표에 가장 잘 부합하는 몇백 개의 이름을 뽑아낸 다음, 그 중에 상표법에 걸리지 않는 수십 개를 추려내는 것이 일반적인 네이밍 작업이다.
 이제는 특허청에 웬만한 단어들은 다 상표로 등록이 돼있기 때문에, 상표법에 어긋나지 않는 새로운 이름을 찾는 것도 네이미스트들의 일이다.

브랜드가 문화가 된다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네이미스트라는 직업. 이 직업은 사실 생긴 지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생직업이라고 한다. 90년대 초반, 회사들 사이에서는 디자인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통합하는 CI(corporate identity), BI(brand identity) 바람이 불었다. 회사들은 앞다투어 회사와 제품의 ‘브랜드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좋은 이름은 다 상표로 등록돼 있어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적당한 이름을 고르는 작업이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뿐더러, 브랜드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지금 브랜드는 각각이 하나의 문화가 될 만큼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씨는 “현대사회에서 이름뿐만 아니라 여기에 이미지와 소리까지 결합된 ‘브랜드이미지’의 중요도는 8~90%”라고 말할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에 대해 강조했다.
 특히 요즘에는 사용되는 특정 소리, 색깔 등까지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브랜드를 오감으로 느끼고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BI는 ‘소비자 머릿속에 단어 하나를 입히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브랜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을 짓는 작업은 브랜드 마케팅의 시작이다.

‘해찬들 아줌마’가 된 이야기

 듣기만 해도 잘 익은 들녘과 빨간 고추장통이 생각나는 ‘해찬들’은 바로 이씨의 작품이다. 당시 네이밍을 의뢰한 회사에서는 떡볶이 가게들에서 유명했던 태양초 고추장을 발판으로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양초’ 는 제품의 성질을 표현하는 것이라 상표를 독점할 수가 없었다. 당시 시장트렌드는 청정원, 풀무원 등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던 때였고, 태양초 고추장의 이미지를 가져가면서 타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하기 위해 만든 게 바로 ‘해찬들’이다. 이씨는 “식품분야에 어울리는 풍성함을 생각하면서 태양을 합쳤더니 ‘해가 가득 찬 들판’이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외에도 매혹적이라는 뜻의 대구시 공동브랜드 ‘쉬메릭’, 일본의 하이츄에서 따온 ‘마이쮸’ 등도 이미림씨의 작품이다. 현대사회에서의 필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고와 마케팅전략, 그리고 검색능력. 네이미스트는 이 모든 능력들을 발휘하는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까?
 사람이든 브랜드든 처음 마주한 순간 우리는 “이름이 뭐냐”고부터 묻는다. 이렇게 만남부터, 그리고 일생토록 수천, 수만 번 혹은 그 이상을 불린 다음에 죽어서까지 남긴다는 그 이름 ‘이름’. 이름은 그저 다른 것과 구별하여 ‘이르기’ 위해서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존재가치를 담고 있으며 좋은 기운을 불러오는 모든 것의 시작이 아닐까.

*음양 : 음과 양의 상호대립, 의존, 전화 등을 분석하는 방법
**자원 : 글자가 가지고 있는 뜻이나 부수로 분석하는 방법
***수리 : 획수의 숫자가 가진 의미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방법
****발음 : 발음소리가 가진 오행으로 상생과 상극 등을 분석하는 방법

 

글,사진 김신예 기자
shinyek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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