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초크를 이용한 24시간 파!격! 분홍머리 체험기

 “가발을 써, 아님 너 안 봐’”
분홍색으로 염색을 한다는 말에 1분 만에 온 친구의 답장은 단호했다. 애초에 ‘헤어초크’를 사용한 일회성 염색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 반응이 궁금해서였는데 참으로 메마른 반응이었다. 신촌 거리를 걷거나, 사람 가득한 지하철을 타면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둘은 꼭 있다. 그런 사람들을 주로 바라보는 입장이었던 기자에게 분홍색으로 머리를 염색한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게 헤어초크야?

 염색을 도와주기로 한 기자들의 손이 분주하다. 다들 헤어초크를 처음 다뤄보기 때문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비장하게 초크를 집었다. 헤어초크는 그 모양이 파스텔과 흡사하다. 머리에 물을 뿌리고 원하는 색을 머리에 칠한 뒤 스프레이로 고정을 시키면 된다. 간단해 보이지만 머리 전체를 염색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발색을 위해 처음에는 흰색을 칠한 뒤 분홍색 초크를 사용했다. 염색을 반쯤 했을까, “눈에 안 띌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며 탄성을 지르는 기자들 덕분에 ‘될 대로 되라’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졌다.
 영화「이터널 선샤인」의 여주인공 머리와 비슷하다는 말에 용기를 갖고 거울을 봤다. 3초의 침묵 뒤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아닌 채로 살아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들으러 연희관으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느끼는 어색함이었다. 바뀐 것은 머리색뿐인데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창문에 비친,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물든 머리를 가진 너는 도대체 누구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덕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무언의 시선들이 쏟아졌다. “너 설마 은지야?”라는 친구의 물음에 멋쩍은 웃음만 나왔다. 바뀐 것은 머리색뿐인데 시선의 농도가 달라졌다. 친구가 하필 앞자리를 맡아둬서 걸어가는데 괜히 뒤통수가 후끈거렸다.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알아보지 못했다’며 눈을 떼지 못하는 친구를 뒤로 하고 거울을 보러 강의실 밖을 나왔다. 저번 학기 조모임을 함께 했던 조장님과 우연히 마주쳤다. 순간 포착한 조장님의 얼굴에선 당혹감과 어색한 눈웃음이 묻어났다. 이날따라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마주쳤다. “헐!” 짧고 굵은 감탄사를 내뱉는 지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니 “그냥 하고 싶어서 해봤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백양로, 학관, 중앙도서관을 쏘다니다가 신촌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가니 스스로의 모습뿐만 아니라 날 바라보는 시선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옆을 스치는 사람들 중 몇몇은 멀리서부터 보이는 머리에 시선을 고정한 뒤 내가 그들을 응시하기 전까지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시선들이 나를 어떻게 해석하려 들까 불쾌했다. 시선의 중심에는 ‘평균을 벗어났다’라는 생각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에 외적으로 튀는 사람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나 자신을 불쾌히 여기는 것과도 같았다. 막상 시선을 받는 당사자가 되니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나중에 가서는 나를 얼마나 쳐다보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한 아저씨는 먹던 커피를 그대로 든 채 입을 벌리고 고개를 따라 돌렸다. 내 나이 또래의 딸이 생각났던 걸까.    



 페이스북에 머리 사진과 함께 글을 썼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색이 예쁘다, 무슨 일 있냐, 못 알아봤다 등 다양한 댓글이 있었다. 한 친구는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요즘 심경에 큰 변화가 있었냐며 안부를 물어왔다. 평소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행동을 하나 했을 뿐인데 걱정까지 해주는 친구들이 귀여우면서도 고마웠다. 저녁 약속을 위해 신촌 한복판을 걷을 때는 미끄러지듯 박히는 눈길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내 삶을 살아가기도 아까운 시간들

 이날따라 지하철에는 각자의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에서 의외로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실 대부분이 각자의 핸드폰을 붙잡고 있느라 다른 곳을 볼 여유가 없어 보였다. 어쩌면 다시는 해보지 못할 모습을 하고 돌아다닌 하루의 끝에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바뀐 것은 머리색뿐인데 나 자체를 다르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실제로 조금은 내가 아닌 것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원래의 머리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시던 기숙사 경비 아저씨께 가볍게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면서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정말 마법 같은 하루가 끝났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비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자우림 「일탈」중

 ‘파격적인 색으로 염색해보기’는 ‘자우림’의「일탈」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결같지 않음’이 끌 주목 때문에 우리는 변화를 망설이곤 한다. 하루 동안의 경험에 빗대어 보면 하나의 변화로 인해 당신에게 잠시 머무를 주변의 시선은 생각 외로 짧고 또 가볍다. 나에겐 무척이나 떨리고 고민했던 변화였는데도 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일상이 조금은 지겨운 당신이라면 하루쯤 늘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 자체로도 당신의 버킷리스트에 의미 있는 일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니까!
 

글  김은지 기자
kej824@yonsei.ac.kr

사진 김신예 기자
shinyek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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