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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 한국 1세대 여성 공학자 최순자 교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은근과 끈기를 지닌 공학계의 홍일점을 만나다.
  • 오도영 수습기자
  • 승인 2012.12.20 14:48
  • 호수 181
  • 댓글 0

육지에 사는 펭귄은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천적이 많은 바다는 펭귄에게 먹잇감을 구할 수 있는 곳이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공포의 장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펭귄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인다. 이때 한 마리가 먼저 바다에 몸을 던지면 다른 펭귄들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잇따라 뛰어든다. 바다에 먼저 뛰어든 펭귄의 모습이 무리를 이끄는 선구자와 유사해 ‘First Penguin’(첫 펭귄)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한국 공학계에 용감하게 도전한 우리나라 1세대 여성 공학자이자 한국공학한림원* 최초 여성정회원인 First Penguin, 인하대 생명화학공학부 최순자 교수를 소개한다.


도전했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나의 20대

최 교수가 입학한 지난 1971년, 그녀의 모교인 인하대 공과대의 신입생 690명 중 여학생은 2명, 그리고 전체 인하대 재학생 2000여명 중 여학생은 단 3명이었다.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그 시절, 그녀가 ‘남성만의 영역’이라 불리는 공학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석유화학산업이 국가경제를 주도하던 70년대 한국의 상황에서 화학공학이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고, 특히 여성이 이 분야를 전공한다면 희소성으로 인해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 기대했단다. 이런 기대감으로 자신이 원하던 공과대에 입학한 최 교수. 그러나 “장학금만으로 학비를 충당할 수 없어 중고생 과외, 학원 강사, 책 편집 등 학비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해야 한다”며 대학 생활 4년을 어렵고 암울했던 시절이라 회상했다.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은 비단 경제적 어려움뿐만이 아니었다. 마음 털어 놓을 동성친구 한 명 없이 지내는 외로움과 학교 전체에 한 군데 밖에 없는 여학생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던 불편함도 그녀의 대학생활을 녹록치 않게 만들었다.


“어디를 여자가, 그것도 공대 나온 여자가!”

공대에 지원할 때부터 여성이 공학계열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녀가 부딪친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당시 우리나라 기업체들은 여성 엔지니어를 채용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고, 이력서조차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오랜 준비 끝에 최 교수는 미국 미주리 주립대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당시 상황 역시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오빠의 병환에 유학은 유보됐고, 어렵게 모은 유학자금 역시 치료비로 전부 소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더욱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Tiger Soon’, 호랑이처럼 따지고 개처럼 일하다

가족 문제로 인해 접었던 해외 유학의 꿈은 메사추세츠 주립대 고분자 공학과** 합격소식으로 다시 펼쳐졌다. 그곳에서 최 교수는 ‘호랑이처럼 따지고 개처럼 일하다’라는 의미의 ‘Tiger Soon’라는 별명을 얻었다. ‘호랑이처럼 따지고’는 원칙에서 벗어난 사안에 대해 따진 모습을 보고 담당 교수가 붙여준 것이며, ‘개처럼 일한다’는 다른 연구원들이 그녀처럼 열심히 일하기를 격려하는 표현에서 나온 것이다. 그녀는 유학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학시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최 교수에게 그런 의문은 당연할 것이다. 연이은 실험과 밤샘에도 그녀는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어린 조카들을 위해 일주일에 25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고.


남성의 세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한국의 공과대에서 여성 최초로 화학공학과 교수가 된 지 19년 만인 지난 2006년, 최 교수는 한국의 석학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한국공학한림원 최초의 여성 정회원이 됐다. 현재 국내 공과대 교수 중 3%만이 여성 교수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최 교수의 성공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최근 양성평등이 많이 진전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국가의 제도를 토대로 지속적인 양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인식이 양성평등을 이룩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덧붙였다. 여성으로서 받을 수 있는 특별대우가 아닌,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나에겐 치열함이 청춘의 표출’

캠퍼스의 낭만으로 표상되는 20대의 청춘을 치열하게, 그저 앞만 보고 달렸던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최 교수는 그 시절을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며 피 흘리고 살았던 때’라고 미화하지 않은 채로 명명했다. 길고 긴 여정 동안 쓰러질 것 만 같은 힘든 일도 많았고, 되고자 하는 인간상에 대한 회의감도 든 적이 있었다는 말에서 그녀의 삶은 오뚝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교수는 “치열했던 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고, 20대가 힘들고 치열해야 중·장년기가 더 행복하다”며 “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목표는 반드시 달성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을 연마했던 시절에 대해서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현재 20대의 미흡한 점으로 열정과 협동적 조화를 꼽았다. 우선 최 교수는 20대들의 열정에 대해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약한 의지로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금해야한다”고 따끔한 일침을 놨다. “요즘 청년들은 매우 개인적이어서 협동과 조화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조화와 협동이 조직을 이루는 기본 단위이기 때문에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기자에게 개인적 상담과 조언을 해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20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하는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한국공학한림원: 공업 및 에너지기술 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한 학술 연구기관
**고분자공학과 : 첨단 재료과학 분야를 다루는 학과


오도영 수습기자
chu_ing1935@naver.com

오도영 수습기자  chu_i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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