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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디지털이 되나요?당신이 사랑을 확인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 김신예 기자
  • 승인 2012.12.04 14:25
  • 호수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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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휴대폰이라도 있었나. 쌍화차 한 잔 시켜놓고 하릴없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1980년대 어느 겨울. 한 여자가 자신을 기다리는 남자를 만나러 다방으로 간다. 남자는 여자가 일을 보고 돌아올 몇 시간동안 차만 홀짝댔다. 이제나 저제나 문을 열고 들어서려나. 저녁쯤 오겠다 했는데 오늘은 좀 더 늦나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실시간 위치보고는 꿈도 못 꿀 그 때, 남자는 그렇게 인고(忍苦)의 구애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고는 결혼에 골인했다.

“1이 지워졌잖아!”

이런 기억 하나쯤, 밑도 끝도 없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던 남자 하나쯤 가지고 있던 부모님세대의 눈에서 보면 요즘 아이들의 연애는 참 요상하다. 내 편지를 그가 읽었을까, 우체부 아저씨가 실수로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던 때가 불과 십 수 년 전인데, ‘카카오톡’이라는 것으로는 내 메시지를 읽었는지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단다. ‘틱톡’에서는 읽은 시각이 초단위로 나오고 심지어는 이 채팅방에 온라인 상태인지도 알 수 있단다. 그래서 관심 있는 그/그녀와의 채팅방을 수시로 훔쳐보다가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1’때문에 마음을 들키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들 첫날밤엔 컴퓨터를 켜놓겠어요

경향신문은 17년 전 오늘인 1995년 12월 3일에 결혼하는 커플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양원봉씨와 민정희씨는 인터넷에서 만나 PC통신,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교포인 민정희씨가 캐나다로 돌아가야 했을 때, 그들은 시내통화료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터넷 덕을 톡톡히 봤다. 그들은 청혼도 인터넷으로 했으며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캐나다에 있는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불과 17년 전, 이렇게 한국 제 1호 ‘인터넷 부부’가 탄생했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네트워크화와 디지털화는 이처럼 끊길 법했던 인연을 이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아마 지금은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했던 남녀가 엇갈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남자가 하루 종일 눈을 맞으며 그녀를 기다렸으나, 알고 보니 그녀의 동네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는 슬픈 이야기들. 요즘처럼 한 시간에 한 번씩 동네날씨를 알려주는 수십 개의 애플리케이션과 유치원 친구도 찾을 수 있는 ‘페이스북’을 뻔히 두고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편리해진 것만큼, 예전의 그 감성은 잃은 게 분명하다. 통신기술의 발전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첫눈에 대한 반가움을, 그 기다림을 앗아가 버렸다. 첫눈 오는 날의 약속에 두근대는 것도 어쩌면 첫눈 자체가 갖고 있는 느낌보다, 알 수 없는 기다림에서 오는 설렘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비밀번호 486

아날로그는 본래 ‘어떤 수치를 길이라든가 각도 또는 전류라고 하는 연속된 물리량으로 나타내는 일’(네이버 국어사전)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이라 하면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교감,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데 쓰인다. 즉, 이 아날로그 감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디지털기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불편하지만 그만큼 ‘마음 썼던’ 것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하루에 4번 사랑을 말하고, 8번 웃고, 6번의 키스를 하’는 우리 세대가 삐삐의 진동과 함께 뜬 ‘486’이라는 숫자에 설레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쉬지 않고 울려대는 ‘카톡왔숑’보다 우연히 발견한 우체통에 꽂혀있는 손편지에 설레는 것은 왜일까.

글 김신예 기자
shinyekk@yonsei.ac.kr
자료사진 경향신문, 네이버 블로그

김신예 기자  shinyek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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