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임성택변호사를 만나다

변호사를 가리켜 흔히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고되고 쉽지 않은 직업이지만 그만큼 보람 또한 얻을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한 변호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보다 “타인의 말에 경청할 줄 아는 것”이라고 임성택 변호사는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분쟁 해결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인터뷰 내내 환한 미소와 친절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임씨가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와 과정은 특별하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는 법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의 모습이 근사해보였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가 막연히 꿈꿔왔던 변호사의 모습은 현실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제5공화국 시기로 경제가 혼란스러웠고 학내도 잦은 시위와 학생운동으로 불안정했다. 임씨는 이런 상황을 앞에 두고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잠시 변호사의 꿈을 내려놓은 그는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임씨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노동이었다. 그는 “당시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고민했다”며 “선반을 만드는 공장에 선반공으로 1년 이상 위장 취업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던 중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법에 눈길을 돌리게 됐다. 학교로 돌아간 그는 노동법을 공부하고 주변 인권 변호사들을 보면서 다시 변호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성공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지만 임씨는 법대 동기들보다 뒤늦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비교적 늦은 출발을 했다. 한참 길을 돌아왔지만 남들보다 늦거나 뒤쳐진다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며 “그 때의 경험들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파이는 나눌 수 없다? NO!

임씨는 사법연수원 과정을 마치고 법무법인 세종에 입사했다. 계속해서 변호사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 2000년 그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12명의 변호사들과 법무법인 지평을 설립했다. 2008년도에 법무법인 지성과 통합된 지평지성은 현재 10년 만에 변호사 수가 120명으로 늘어 성공적인 로펌으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로펌을 떠올릴 때 공익과는 거리가 먼,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임씨가 속해있는 지평지성은 우리나라 로펌의 공익문화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현재도 모범적으로 공익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평지성은 ‘일 년에 50시간 공익 활동 의무화’ 같은 규칙을 정해 소속 변호사들의 사회적 기여를 장려한다. 변호사들은 곤경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의 소송이나 법률 자문을 돕고 연탄배달, ‘아름다운 가게’를 통한 나눔 실천 등 여러 가지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임씨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익문화의 기반이 잘 갖춰지지 않아 아쉽다”며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공익문화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구나 자신의 시간과 노력의 일정 부분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줄 수 있다면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삶의 원동력과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공익활동의 가치를 강조했다.


통일 전문 변호사, 내일을 준비하다

‘통일 전문 변호사’는 공익 변호사에 이어 그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수식어다. 개성공단 설립당시 북한에는 주식회사가 전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정부를 도와 개성 공단 내에서만 적용되는 특수 법제 과정에 참여했다. 개성공단의 주식회사들이 원활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새로운 법제 마련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법제 마련의 과정은 어떠했냐는 질문에 임씨는 “문화는 다르지만 과거 동독과 서독의 경우를 참고하여 남한식으로 법을 정비했다”고 답했다.
임씨는 1세대 통일 전문 변호사이다. 그가 이 분야에 첫발을 내딛을 당시 통일 전문 변호사는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현재 약 200여명으로 그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이에 대해 임씨는 “변호사 수가 늘어 관심이 증가했지만 관련 법률에 대한 이들의 전문성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현재 남북한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한 소송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남북한의 법이 다르다보니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이슈화되기도 한다. 임씨는 대표적인 사례로 “중혼이 허용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얼마 전 법원은 전쟁 당시 월남한 의사에 대해 예외적으로 중혼을 인정해 주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남한과 북한에 각각 다른 가족을 둔 남자의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적문제였다. 법원은 중혼 여부를 인정하여 두 가족 모두에게 상속 권한을 주었다. 이에 대해 임씨는 “통일이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법률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선 이 분야에 대한 법률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라”

우리대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의 질문에 그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사회가 점점 획일화되어 가는 것이 학생들의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누군가 성공한 길을 만들면 너나 할 것 없이 보장된 길을 가기 위해 하나의 길에만 뛰어드는 것이 요즘 사회”라며 “나는 대학시절 독재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히려 지금보다 많은 기회와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임씨는 다른 꿈을 꾸는 것을 차단하는 사회와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히는 요즘 대학생들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임씨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만들어 나갈 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임씨는 “홀로 세계 곳곳을 배낭여행할 계획이다”라며 “정해진 일정 없이 명소가 아닌 시골마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임씨는 몇 년 전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에 대해 조금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임씨는 “현지 사람들이 먼저 자신에게 다가왔다”라며 “이색적인 사원에서 현지 사람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고 마을 아이들과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여행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을 제공한다”며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조언했다. 인터뷰를 끝맺으며 그는 ‘스펙’  쌓기와 ‘취업’이라는 틀 안에서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대학생들에게, 한 번쯤은 지도 밖을 나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행군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남채경, 문다은 수습기자
chu_in19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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