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맨’에 대한 환상을 깨는 금융계 인턴의 하루

한손에는 따뜻한 테이크아웃 커피와 신문, 그리고 종이봉투를 들고 찬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고자 코트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한 남자, 혹은 여자. 시계를 들여다보니 아침 7시 45분.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들의 발걸음은 꼭대기 층을 쳐다보려면 허리를 한참 뒤로 젖혀야만 할 정도로 으리으리한 빌딩에 멈춰 선다. 프론트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에 곧바로 올라타 잠깐 숨을 고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층에 당도한다. 책상을 보니 국내외 경제 신문과 저널이 가지런히 정리돼 올려져있다. 커피와 함께 사온 베이글을 씹으며 간밤에 있었던 경제 이슈들과 맞이한다. 개장까지 불과 1시간여밖에 남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금융권’이라면 갖는 환상이다. 다시 말해 가장 분주한 현대인의 모습이 세련된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정말 금융권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럴까? 금융권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B씨와 C씨의 경험을 통해 진위여부를 파악해보자.

금융권 인턴으로 가는 길

지난 2011년 1월부터 3월까지 골드만삭스 샌프란시스코 지사에서 일한 B씨는 지인의 도움으로 1차 서류전형을 면제받고 면접을 본 후에 채용됐다. 골드만삭스는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과 함께 미국의 유명 금융지주회사로 꼽힌다. 하지만 서류전형을 면제 받았다 해서 합격으로 가는 길이 쉬웠을 리 만무하다. 애초에 골드만삭스라는 그룹은 인턴조차 선발과정과 그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B씨는 면제받은 1차 서류전형은 출신 학교, 전공 등 이력서는 물론 왜 골드만삭스에서 인턴을 하고 싶고, 또 선발된다면 어떤 포부를 갖고 일할지 등에 대한 에세이를 함께 받는다. 그렇다면 B씨가 겪었던 2차 면접은 어땠을까. B씨는 “면접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고 그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방문 면접 전 걸려온 전화상으로도 면접이 진행됐다. B씨는 그 전화가 안내 전화인줄 알고 대충 대답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B씨가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간단한 테스트를 한 것이란 얘기를 듣고 ‘멘붕’하기도 했다고. 방문 면접에서는 부‧차장급 애널리스트가 최근 읽은 경제 기사, 리서치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은 물론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C씨는 군 제대 후 자신의 진로를 인턴 경험을 통해 알아보고 싶어 ING생명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C씨는 인턴 채용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들이 수시 채용에 의해 정규직을 소수로 선발하기 때문에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며 “커버레터나 영문 이력서를 헤드헌팅 사이트에 등록해놓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귀띔했다. C씨는 ‘맨 파워 코리아’라는 사이트를 이용했다고. 한편 인턴 선발 과정에 대해서는 “외국계 회사다보니 영어 성적이 영향력을 갖긴 하겠지만, 회사에 대한 관심도나 열정, 인성이 가장 우선시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C씨의 생각대로 영어가 자주 쓰이는 곳은 회사 내부의 한국인 비율이 높아 중요 임원과 의사소통이 잦거나 외국 지사와 비즈니스가 있는 부서로 그 경우가 매우 한정적이다.

“당신은 그저 인턴일 뿐”

“우리 회사에 대단한 것을 바라고 왔겠지만, 당신은 그저 인턴이고 따라서 하는 일이 매우 일차적일텐데 괜찮습니까?” 면접에서부터 B씨의 환상은 와장창 깨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골드만삭스는 면접 때 B씨에게 했던 질문 내용을 그대로 이행했다. 학업과 병행했기 때문에 수업을 모두 낮 3시 이후로 미뤄두고 아침 9시부터 낮 2시까지 일했다고 한다. 업무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청소부터 시작해 복사, 우편물 정리 등 인턴 업무보다는 잡일에 시간을 쓰곤 했다.

이에 비하면 C씨의 사정은 훨씬 낫다. C씨는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ING생명고객관리부(Orphan Customer* Management, OCM)에서 고객 상품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C씨는 기본적인 사무보조 역할은 물론이고 보험상품과 판매상품 데이터화, 결과 기록 등의 업무로 하루 일과를 가득 채웠다.

눈병과 안구건조증, 그리고 서운함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달 인턴생활을 했던 두 사람에게 힘든 순간은 없었을까. C씨는 “8시부터 6시까지 한 시간을 제외하고 9시간을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해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전했다. 건조했던 사무실에서 계속 모니터를 보고 앉아있으니 눈병과 안구건조증을 동반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한 흔히 생각하는 인턴의 업무와 달라 아쉬움이 큰 점도 빼놓을 수 없다. B씨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회사 기밀로 인해 업무에 대해 세세히 가르쳐 줄 순 없겠지만 소일거리 정도는 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라며 인턴에 대한 업무 지시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인턴에 대한 기업의 소극적 태도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했다. 오히려 B씨는 “한국 기업만 그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미국이 더 심했다”고 덧붙였다.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환상

3시가 되면 장이 마감된다. 밥 먹을 새도 없이, 물 한 모금 삼킬 새도 없이 장세를 주시하고 있던 ‘진짜 증권맨’들에게도 잠시 휴식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들이 제대로 하루를 마칠 때까지 이들을 어시스트하는 인턴들은 쉴 수 없다. 냉혹한 금융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을 벌이는 증권맨이 될 그 날을 손꼽으며 이들은 자신의 하루를 묵묵히 보낼 뿐이다. 이쯤 되면 ‘차도남’의 선두주자일 것만 같은 증권가에 대한 환상은 아스라이 지워져가고 그들의 현실이 그려진다.

*고아 고객(Orphan Customer) : 보험 계약자와 수급자가 다른 경우 통칭하는 단어

글 곽기연 기자 clarieciel@yonsei.ac.kr
사진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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