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독’이란 여러 사람이 같은 글이나 책을 돌려 가며 읽는 것을 말한다. 2000년대 들어서 중·고등학교에는 새로운 ‘윤독문화’가 형성됐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는 선생님과 책상 위 반듯이 세워진 교과서,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놓은 손때가 잔뜩 묻은 책 한권. 선생님 눈치를 보며 슬며시 넘기던 책장에는 10대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설렘이 묻어난다. 혹시 당신도 드라마틱한 인터넷소설 속 세상에서 수업이 끝나는지도 모른 채 교과서 틈 사이 10대의 감성을 세워 두던 경험을 갖고 있는가? 

인터넷소설에 대한 오만과 편견

‘인터넷소설’하면 몇몇 사람들은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보인다. 그들에게 인터넷소설은 하나의 문학 장르가 아닌, 다소 진지하지 못한 10대들의 치기어린 로맨스, 작품성이 결여되는 아류 작품 등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안소연(22)씨는 “인터넷소설은 학교문화를 지나치게 왜곡하거나 미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분명히 이런 측면 또한 존재하지만 이는 인터넷소설을 지극히 지엽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며, 작품성을 배제한 인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소설에 대한 정의는 개인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중앙대 대학원 최정은 석사의 「인터넷소설의 구술문학적 특성 연구(A study on the oral literary characteristics of internet novel)」에 따르면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소설을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지만, 대개 그 특징 일부에 주목하여 범주를 협소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소설의 특성을 결정짓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인터넷'이라는, 다양한 플랫폼들을 잉태할 수 있는 매체의 등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시적인 매체의 등장을 뒤로한 채, 특정한 내러티브 구조에 주목해 인터넷 소설을 자의적으로 정의하고 평가절하 하는 것은 오만한 판단이며 편견 형성에 밑바탕이 된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전지현, 차태현 주연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2001년 개봉 당시, 약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로맨스 영화에 한 획을 그었다. 혹시 이 영화의 시작이 PC통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인터넷소설’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하이텔 등의 PC통신을 통해 연재 형식의 소설이 이미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또 다른 인터넷 연재소설인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같은 경우는 전국적으로 1천만부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이후에 독자들뿐만 아니라 각종 출판업계는 PC통신을 통한 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개인의 취미로 시작되었던 연재식의 이야기 작성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PC통신 가입자 수가 급증하고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이런 온라인 소설 커뮤니티는 ‘인터넷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는 시발점이 됐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인터넷소설’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참여문화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 있다. 인문학자 헨리 젠킨스는 융합을 뜻하는 ‘컨버전스’의 개념을 통해 과거와 달리 콘텐츠가 다수의 매체를 넘나들며 미디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힘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상황을 설명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전달되며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se Multi-Use)’의 형태를 띤다. 매체간의 높은 호환성 덕분에 하나의 콘텐츠가 돌고 도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인터넷 소설은 이런 콘텐츠 부족 현상에 대해, 상호작용이 중심이 되는 ‘컨버전스 컬처’를 만들며 다양한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예로 독자들이 직접 연재를 하는 ‘럽실소’(러브 실화 소설), 온라인 카페를 통한 아마추어 소설 작성 등을 들 수 있다. 더 이상 글을 쓰는 것이 전문 작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매체가 다양화 되고 스마트폰의 사용이 급격히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소설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은 틀렸다. 그것을 대변하는 하나의 문학 하위 장르가 바로 ‘인터넷소설’이다. 인터넷소설에 대한 비판은 어쩌면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이해가 부른 편견은 아닐까.

 


글 김은지 기자 kej_824@yonsei.ac.kr
사진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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