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시간,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PMP가 돌고 돌았다. 겉보기에는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팬픽’을 읽고 있었다. 혹시 고전시가, 현대소설을 읽어도 모자를 시간에 팬픽을 읽고 있던 여고생이 당신은 아니었는가?

팬픽? 난 처음 듣는데?

팬픽은 팬(fan)과 픽션(fiction)의 합성어인 ‘팬픽션’의 줄임말로, 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영화 혹은 문학작품 등의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을 일컫는다. 팬픽은 본래 미국 드라마 『스타트랙』의 팬 활동으로 시작됐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수가 등장하는 소설이 주류를 이룬다. HOT 팬픽을 시작으로 god, 신화,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등 인기가수의 팬픽이 팬들에 의해 쓰이고 읽히고 있다. 또한 웹사이트에서뿐만이 아니라 책으로 출판돼 소장되기도 하고, 소설의 내용과 유사한 영상과 사진들을 엮어 만들어진 팬픽 영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팬픽은 인기가수의 팬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그거 이상한 거 아니에요?

흔히 팬픽이라고 하면 인기가수들 간의 동성애와 음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을 떠올린다. 실제로 많은 팬픽이 인기그룹 멤버들 간의 동성애를 주로 다루며,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하는 경우도 많다. 박 아무개씨도 “성적인 수위가 지나치게 높아서 보기 거북하고 부담스럽다”고 말하며 팬픽의 지나친 성적 묘사를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팬픽은 청소년들의 성적 혼란을 야기하거나 성적 판타지를 만들어 낼 위험이 있다. 실제로 팬픽을 읽는 청소년 중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인식하는 ‘팬픽 이반’이 존재하며, 나아가 팬픽을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위로받기도 한다.

한편, 팬픽에 나타난 동성애를 보고 동성애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경우도 있는데, 동성애 자체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팬픽에 등장하는 연예인에 대한 동경인 경우가 많다. 팬픽을 보고 동성애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동성애자를 보면 거부감을 느끼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현상들로 인해 팬픽이 청소년들의 성정체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받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팬픽 독자들이 자기 방과 같은 개인적인 공간에서 팬픽을 읽음을 보여준 한 설문결과는 팬픽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팬픽도 팬 문화의 하나지만 성적인 내용이 과도한 점은 문제라고 본다”고 말한 하 아무개씨가 자신의 이름을 익명처리 해줄 것을 요청한 것도 팬픽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음을 보여준다.

팬픽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그렇다면 팬픽은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며, 팬픽작가들은 모두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일까. 지난 2007년에 발표된 한양대 교육대학원 김양재의 「팬픽의 쓰기 교육적 가치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청소년 집단 가운데 팬픽을 써본 경험이 있는 학생의 40%가 남들보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팬픽을 쓰게 됐으며, 25%는 친구들과 함께 릴레이로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청소년들이 성적판타지를 표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작욕구에 의해 팬픽을 쓴다는 점을 알려준다. 설문에 참여한 청소년 집단의 70% 이상이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팬픽이 글쓰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나아가 팬픽을 연재한 경험이 큰 도움이 돼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팬픽을 쓰고 읽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무조건 악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팬픽은 인기가수 팬들의 전유물?

팬픽의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픽은 비단 인기가수의 팬들만이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작품, 유명인, 방송프로그램 등 팬이 있는 대상이라면 팬픽 또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트와일라잇』 팬픽에서 시작된 소설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2012년 9월 현재까지 4개월 만에 2500만 권이 판매됐는데, 이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합산 판매량을 넘어선 것이라고 하니 실로 엄청난 인기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런던올림픽 당시 중국의 쑨원 선수가 박태환 선수를 동경해왔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두 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쑨환 팬픽’이 쏟아지기도 했다. 또한, 인기리에 방영된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가수들을 주인공으로 한 ‘나가수 팬픽’이 등장해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은 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선덕여왕』, 『꽃보다 남자』 등의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팬픽을 공유하는 카페들도 많이 개설돼 있다.

팬픽은 팬픽일 뿐 오해하지 말자

팬픽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팬픽도 팬덤 문화 중의 하나일 뿐이다. 연예인이든, 문학작품이든, 영화이든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다면 팬이 생기기 마련이고, 팬들이 있다면 팬픽도 생겨나는 것이다. 팬덤 문화의 일부인 팬픽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글 최지은 기자 choichoi@yonsei.ac.kr
사진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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