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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손끝에 매달린 대학원생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사제지간 그 이상이다. 교수는 지도 학생의 논문 통과와 졸업 승인에 절대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에 밉보일 경우 학계에서 살아남기 힘든 현실은 대학원생이 교수에 부당함을 느껴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병폐를 낳았다.

상아탑의 불편한 진실은 지난 10월 10일 서울대 인권센터가 발표한 ‘서울대 대학원생 인권 실태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조사 결과 41.6%가 교수의 부실한 수업준비로 학습 연구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응답했다. 39.2%는 “논문대필, 접대, 연구비 유용, 교수 개인비서 노릇 등 불합리한 대접을 받았다”고 밝혔다.

우리대학교 대학원생의 현실은 과연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대학원생의 실제 생활을 취재해 이들의 학습·연구권리가 보장되고 있는지, 교수와의 관계에서 부조리한 상황은 없는지 살펴봤다.

대학원생 조교의 3중고

이공계 석사과정 2학기 A씨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연구실 청소 및 비품관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대학원생 조교의 주 업무는 흔히 조교 업무와 개인 공부라 생각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A씨는 “조교 업무, 개인 공부 외에도 기업 프로젝트 준비와 행정잡무가 하루 일과의 반 정도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이공계 연구실은 해당 연구주제 외에도 정부 및 기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대학원생의 경우 인건비 명목으로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고, 교수의 경우 연구 실적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체나 지도교수가 보낸 메일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 A씨는 행정잡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지도교수의 외부 출장으로 증빙서류를 학교에 제출해야 해서다. A씨는 “이외에도 연구비의 사용내역 증빙 등 행정잡무가 많다”고 말했다. 해외대학원의 경우 교수의 개인비서가 이를 처리하나 우리대학교를 비롯한 국내 대학원에서는 대학원생이 행정잡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행정업무절차가 간소화돼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A씨의 바람이다.

낮 3시, 수업을 듣고 와 한창 시뮬레이션 실험을 하던 A씨가 영어로 된 빽빽한 자료를 꺼내들었다. 연구 자료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교수의 기업 프로젝트 보고서를 대신 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팅 발표 자료 준비 역시 고스란히 A씨의 몫이다.

저녁이 되자 A씨는 전공 시험감독에 들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A씨의 조교 업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출결관리·질의응답·시험문제 작성 및 채점도 있다. A씨는 “조교는 수업 보조가 역할인데 시험과 채점을 담당하는 게 과연 옳은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시험감독이 끝난 후 A씨는 식사를 하고 다시 연구실로 향했다. 밤새시험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말에는 아침부터 기업 프로젝트 미팅과 연구실 미팅이 있다”며 개인시간이 거의 없음을 토로했다. A씨는 기업프로젝트·개인공부·교수 보조 등 대학원생 조교의 3중고를 밤이 늦도록 체감하는 중이다.

업무과중 돼도
일종의 가불관계라 참아

교수를 보조하는 각종 업무가 많은 것에 대해 A씨는 “이공계 대학원 한 학기 등록금이 700만원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교수가 기업 프로젝트를 따오지 않는다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보답의 차원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프로젝트 인건비로 등록금을 충당하기 때문이다. 음료수를 사다주는 것부터 시작해 개인노트북을 대신 사오는 것까지 교수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도 많다. A씨는 “힘들어도 나중에 보상받을 것을 생각하며 참는다”고 말했다. 빨리 졸업을 하기 위해, 대기업 취직 시 추천서를 받기 위해 교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 대학원생을 개인비서
부리듯…충격

하지만 다른 대학원생의 얘기와 비교하면 A씨의 경우는 매우 일반적인 편이다. 이공계 석·박사 통합과정 6학기 B씨는 몇 가지 충격적인 사례를 전했다.

B씨에 따르면 공과대 ㄱ교수는 대학원생에게 상식 이상의 심부름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정원의 잔디 깎기, 자녀의 기저귀 사오기, 이삿짐 나르기 등 대학원생을 이른바 ‘착취’한다는 것이다.

“공과대 ㄴ교수는 대리인을 세워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연구실 조교는 개인 학습·연구보다는 ㄴ교수 회사 일을 중점적으로 한다고 들었다”고 B씨는 말했다. 시간을 쪼개 연구에 매진해야 할 고급인력들이 일부 교수의 부당한 요구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B씨는 “보통 대학원생들은 1학기가 상대적으로 덜 바쁜데 ㄴ교수 조교들은 1학기에 ㄴ교수 베이비시터 노릇을 하게 된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공계 석·박사 통합과정 2학기 C씨는 “공과대의 어떤 교수는 거래명세서를 다르게 작성해 연구비를 유용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교수와의 상하관계에서 불합리한 일이 있어도 대학원생은 이에 정당하게 항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교수에 밉보일 경우 졸업이 늦어질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겁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C씨는 “주변에 실제로 교수에 밉보여 5학기 만에 석사 졸업한 사람이 있다”고 전했다. 통상 석사 학위는 4학기 만에 취득하게 된다. 그러나 교수가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고 대학원생에 통보했고, 해당 학생은 옷을 가지러 집에 들르는 것 외에는 한 학기 내내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며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문계 대학원생은 상대적으로 교수와의 교류 적어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사 발표에서 교수가 논문을 가로채거나 자신의 논문을 대필해달라고 한 사례는 ▲공과대 19건 ▲자연대 15건 ▲사회대 13건으로 교수와 대학원생 간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한 상황이 이공계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그러나 인문계 대학원생들은 계열 특성 상 교수와의 교류가 이공계만큼 많지 않아 문제될 소지가 적다. 인문계 대학원생들에 조교업무는 조교 장학금을 받고 싶은 사람에 해당되는 선택사항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문계는 기업·정부 프로젝트 수주량이 이공계보다 적다. 우리대학교 정보공시에 따르면 이공계 대학원생의 외부 프로젝트 수주량은 인문계의 6배이며 연구비 규모는 11.6배에 이른다. 따라서 인문계의 조교와 교수의 가불관계가 형성될 여지가 적다.

사회대 ㄷ교수는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뿐”이라며 “조교에 관련 업무를 시키지도 않고 교수는 단지 대학원생 조교의 논문연구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인문계 석사과정 4학기 D씨 또한 “교수와 같이 업무를 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며 “수업을 듣고 거의 본인 연구에 매진하는 편”이라 전했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공과대 ㄹ교수는 “카이스트나 외국대학은 대학원생에 외부 프로젝트나 잡무를 거의 맡기지 않는다”며 우리대학교의 대학원 환경이 열악함을 지적했다. ㄹ교수는 “유명대학의 경우 교수 세 명당 한 명의 비서가 배정돼있으며 행정요원이 따로 있다”고 전했다.

구조적 문제로 대학원생에게 업무가 과중되는 것 외에도 일부 교수의 몰상식한 행동은 대학원생들의 인격을 침해한다. 많은 교수들이 “조교시절에 나도 그랬다”고 말하지만 지성의 상아탑인 학계가 고질적인 폐습을 외면한다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날은 도래하기 어려울 것이다.


*위 기사의 A, B, C, D /ㄱ, ㄴ, ㄷ, ㄹ 등의 익명 처리는 실명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자료사진 구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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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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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싫다... 2014-05-01 09:26:18

    한국 대학원이 무서워서 해외에 나갔는데 하필 ㅇㅂ에 갔다가 더 크게 당한 1인 입니다. 교수가 연구 얘기 빼고 다한다는... 수업료내고 일해주고 밥 먹어주고 술자리에서 웃어주고,,,, 하나라도 안하면 이지메 때문에 박사논문도 못쓰고 돌아오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말을 진작 들었어야 했는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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