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순결에 대한 대학생의 속마음

지난 2005년 개봉된 영화 『제니, 주노』는 15세 동갑내기 커플의 임신을 소재로 다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혼전 순결에 대한 인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으며 과거에 비해 성생활에 대한 분위기가 관대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혼전 순결주의자’는 암묵적으로 여성이 결혼 전에 혼전 순결을 지키고자하는 신념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에 대한 대학생의 생각은 어떠한 지 지난 9월 12일 우리대학교 사회과학 학회 ‘목하회’ 회장 이종한(경제·09)씨를 비롯한 회원 6명과 함께 좌담회를 가졌다.

 

혼전 순결은 남녀 모두에게 유전적 전략?

여성의 혼전 순결주의의 기원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혼전 순결을 ‘자손 번식을 위한 남녀의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A: 진화심리학에서는 혼전 순결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상대방의 순결을 중시하는 관념이 남성의 생식에서의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이다. 남성의 성생활 목적이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트리는 것이라고 할 때, 아이가 자신의 유전자가 아닐 경우 여기에 쏟은 자본과 노력은 무용지물로 돌아가게 된다.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라는 점을 확신하기 위해 혼전 순결의 개념이 등장했다고 한다.

D: 남성들이 자신의 전략 때문에 여성의 자궁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여성에게 혼전 순결을 강요하는 이유가 남성의 위험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은 지극히 남성주의적인 발상이다.

A: 혼전 순결이 남성만의 전략은 아니다. 여성의 혼전 순결주의는 여성에게도 자손번식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에게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신체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남성처럼 많은 유전자를 퍼트릴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은 우수한 하나의 유전자를 받고자 하며 아무 남자의 아이를 가지는 것은 본인의 유전전략상 손해다. 18~30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인터내셔널 소셜 서베이프로그램(ISSP)의 2008년도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약 60%가 혼전 성관계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것에 비해 여성의 응답률은 30%에 그쳤다. 이렇게 성생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러한 전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B: 혼전 순결을 지지한다고 ‘공표’하는 것 또한 여성의 전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이 ‘나는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했을 때 이는 이성의 마음을 끌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른 국가들에 비해 좁은 한국 공동체에서는 평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결혼에 임박하지 않은 20대들도 순결에 대한 평판을 관리한다.

A: 한편 혼전 순결이 종교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기본적으로 금욕적 특성을 지닌 종교의 경우에는 성관계 자체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원시 기독교 공동체 시절에는 성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흐름이 있었다.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왔던 초기에도 명목상으로만 결혼하고 남매처럼 지내는 경우가 있었다.

혼전 순결 논란은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것

성생활은 본능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결혼과 순결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문화적 산물이다. 사회적으로 성관계가 터부시된 시대가 있었던 반면, 성관계가 유전적 목적에서 개인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기도 했다. 이처럼 속한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성관계에 대한 인식이 변할 수 있다.

B: 상당수의 성관계는 자손 번식보다 개인적 쾌락을 목적으로 한다. 혼전 순결을 유전적으로 설명할 것이 아니라 사생활의 문제로 넘겨야 한다. 따라서 사회wjr 차원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들며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F: 혼전 순결이 점점 화두로 떠오른 데는 결혼 나이가 늦춰진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10대 초반이면 결혼했기 때문에 혼전 성관계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미혼 여성이 쾌락을 위해 혼전 성관계를 하는 수가 많아졌다.

B: 혼전 성관계를 즐기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결혼할 사람에게 순결을 ‘주고 싶다’ 등의 말 자체가 보여주듯 여성에게만 억압적인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문제다. ‘준다’는 단어에는 여성이 희생해 순결을 주고, 남성이 이를 취하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될 지 회의적이다.

E: 성관계에서 남성은 신체적으로 여성보다 자유로운 입장에 있다. 때문에 무책임한 성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사회에서는 여성의 성생활을 제한한다.

A: 사실 결혼은 제도에 불과하다. 한데 결혼을 전후로 ‘성관계를 해도 된다’, ‘안 된다’를 따지는 것은 결혼에 과도한 신성성을 부여한 것이다. 혼전 순결 자체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G: 혼전 순결 외에도 우리나라는 성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국가에 속한다. 이런 보수성은 사람들이 틀에 박힌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순결함, 이성애 등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반하는 사람들의 사생활에 인격적 모독을 가하곤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저급하게 취급한다. 이런 보수성 탓에 여성들이 청소년기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형성하거나 성에 주체성을 가지는 데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단지 개인만의 문제? “성교육을 바꿔야!”

혼전 성관계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토론자들은 개인의 취향에 달린 문제라는 의견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성관계는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개인이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때문에 청소년기의 성관계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다. 또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청소년기의 성교육이 바르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됐다.

B: 이전 시대에 비해 여성의 권리가 많이 향상됐다. 그런데 혼전 순결 논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똑같이 혼전 순결을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 이건 코미디 같은 일이다. 여성에게 순결을 강요한다는 점이 불평등이었지,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것이 불평등의 핵심이 아니었다. 따라서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고 개인적인 의사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C: 혼전 순결은 개인의 취향 문제이며, 자체에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다. 문제는 피임이다.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에게는 일생동안 안고 가야하는 짐이 될 수 있는데, 피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며 이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

F: 실제로 지난 2005년에 발표된 「전국 대학생의 성의식, 첫 경험 및 성행동에 대한 성차」에 따르면 조사 응답자의 17.6%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고, 29%가 낙태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실제로 콘돔을 착용하는 비율이 14.8%밖에 되지 않는다. 애인 이외의 사람과 2차적 성관계를 한 경험이 36%에 달하고, 3명 중 1명은 술에 취해 성관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혼전 성관계는 미혼모, 낙태 등의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B: 정상위의 영어 표현은 'missionary position'이라고 한다. 앞서 기독교에서 성관계를 거부하는 흐름이 있었다고 했는데, 중세 기독교에서 정상위를 유일하게 허용했기 때문이다. 사적인 침실에서의 체위까지 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혼전 순결의 개념도 다르지 않다. 외부인의 사생활의 영역에 개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D: 혼전 순결 자체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 나이 전에 순결을 지키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10대의 경우 정신적으로 덜 성숙해서 욕망통제가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임신이 됐을 경우에 책임지기도 어렵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혼전 순결이 개인의 의사에 따른 문제라지만, 사회적 문제를 막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청소년의 사생활에는 개입해도 되는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G: 청소년에게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보지 못하게 하고 술이나 담배를 사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무분별하게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 덧붙여 청소년들이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 국가가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처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점 등은 청소년은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청소년을 사각지대로 몰아넣는 것이다.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쉬쉬하고, 특히 청소년들의 성생활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성교육 문제의 탓이 크다. 한국의 성교육은 예방, 사후 처리법 등에만 집중돼 있고, 성적 자기결정권 형성 부분은 고려하지 않는다. 성생활에서 남성이 우위에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이에서 기인한다.

혼전 순결은 진화심리학에서도 다루고 있을 만큼 완전히 비상식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성생활은 사적인 영역이며, 혼인 전 성관계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므로 사회적으로 강요하는 분위기에는 문제가 있다. ‘순결’이라는 말 등으로 성생활에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 또한 혁파해야 할 한국사회의 보수성으로 지적된다.

토론자들은 이런 분위기 탓에 성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함으로써 여성들이 청소년기에 성에 대한 주체성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의 성교육이 예방, 피임법에만 집중될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성생활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확립시키는 데도 힘써야 할 것이다.


글 김광연, 김신예 기자 shinyekk@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서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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