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10월 8일, 미국의 금주법에 대하여

삼겹살에 소주.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 소개팅 한 그녀와 분위기 있게 칵테일 한잔. 이 모든 것을 ‘법적으로’ 금지한다면? 말도 안 된다. 이제 술 없이 어떻게 어색한 만남을 풀어나갈 것이고 삼겹살에 사이다만을 들이키고선 어찌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 일은, 1919년 오늘 미국에서 실제로 가결됐던 ‘금주법’이다.

#1-1. 1919년 10월 8일, 미국. <술을 금지합니다>
1919년 미국 의회는 알코올 중독이나 범죄를 줄이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술의 제조, 판매, 운반, 수출입을 전면 금지한다는 ‘금주법’을 가결하고 1920년 1월 이를 시행함에 이른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이 청교도 정신에서 세워진 나라라는 점에서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이를 주장했고, 독일 이민이 양조업을 함으로써 부를 쌓는 일을 견제하려는 이유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풀이된다.

#1-2. 1933년 미국. <금주법 폐지>
그렇다면 당시 미국인들은 정말로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게 됐을까? 금주법은 조직폭력배의 주류 밀거래와 불법제조 술로 인한 알코올중독 및 사망 등의 부작용을 낳았으며, 오히려 평소 거래량의 2배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의 밀매가 이뤄졌다고 한다. 결국 금지실험의 참담한 결과를 확인한 후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1933년 폐지됐다.

*참고 : 위키백과 「금주법」 (http://ko.wikipedia.org/wiki/%EA%B8%88%EC%A3%BC%EB%B2%95)

#2. 2012년 한국. <성경은 정말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나요?>
“신학도는 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지, 신이 아닙니다.”
신학과 학생이 왜 술을 마시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우리는 종종 신앙심을 이유로 술을 거부하거나 마신 후에도 음주에 대해 회개하는 친구들을 봐오면서 기독교에서는 술을 금지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사실 성경에서는 술을 ‘절대’ 마시지 말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취하지 말라’고 할 뿐. 평소 음주를 하지 않는 기독교 신자 김한나(철학·10)씨는 “교회에서 술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취해서 바른 정신으로 깨있지 못하는 것을 경계한다”며 “스스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성경말씀 때문인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술 취할 시간과 정신에 다른 할 일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즉, 성경이 취함을 경계하는 것은 사실이나 현실적으로 음주는 개인 선택의 문제라고.

#3. 2012년 논산, 신촌. <취하는 게 왜?>
1. 일석삼주 - 한 번 앉으면 세 잔은 먹고 일어나야 한다.
2. 청탁불문 - 맑고 탁하고를 가리지 말라. 소주나 막걸리나 주는 대로 다 마셔라.
3. 주야불문 - 낮과 밤을 가리지 말고 마셔라.

정다운(언홍영·11)씨는 농민학생연대활동에 다녀와서 ‘음주의 3도덕’에 대해 배워왔다고 한다. 정씨는 “농촌에서는 일의 고됨을 잊고 즐거운 기분으로 일하기 위해 낮에도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신다”며 “근처에서 공수한 쌀로 만든 막걸리라 맛도 좋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을 수월하게 하도록 돕는 역할도 하는 ‘술 취함’을 꼭 나쁘다고 할 수만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내기 시절 어색한 분위기를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윤활제로 작용하던 술의 역할을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실제로 적절한 알코올은 전두엽을 살짝 마비시켜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게 해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언제나 네 앞에 서면 준비했었던 말도 반대로 말해놓고 돌아서 후회”하던 김동률은 술의 힘을 빌려 고백했다. 애주가였던 칸트 역시 “술은 입을 경쾌하게 한다. 그리고 마음을 털어놓게 한다.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지선(언홍영·12)씨는 “항상 제정신으로 살 필요는 없지 않나. 대학생활에 그런 추억 하나쯤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가끔 잡념으로 가득 찬 정신을 놓아버리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4. 2012년 집. <신촌은 폭음중>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것은 자신의 존재가 어떤 의미이고 지금 위치가 어디인지를 고뇌하는 심각한 말이 아니다. 술을 진창 마신 다음날,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다. 손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우산이 들려져있고 무릎에는 피딱지가 앉아있지만 끊겨버린 필름은 쉽사리 복구가 되질 않는다. 새내기시절 술 좀 마셨다하는 사람이라면 동의할 만한 이 이야기를 웃으면서 넘기지 말라. 성인 남자 기준으로 소주 8잔, 성인 여자의 경우에는 소주 5잔 이상의 폭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주목! 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이 한계에 도달할 정도의 과음은 인체의 조직손상을 야기하며 탈수현상을 유발하기도 하고, 심할 경우 뇌에도 영향을 미쳐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관련기사-1678호 ‘빨간 불이 켜지면 술잔을 내려놓을 때’>
9월 18일자 「스포츠서울」 ‘알코올성 치매 ‘젊은 환자’급증... 블랙아웃 반복시 의심해야‘ 기사에서도 “블랙아웃 현상이 반복되면 장기적으로 뇌에 손상을 가져온다”며 단기기억장애가 자주 발생할 경우 알코올성 치매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또 술을 마시면 폭력성을 보이는 사람들도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손상돼 발생한 알코올성 치매의 증상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5. 어찌합니까.
그래. 몸을 생각해서 적당히 마셔야 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금주법의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시지 말라고 하면 더 마시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임을 어찌하랴. 술이 몸에 안 좋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오고 또 취해서 지우고 싶은 에피소드도 몇 개 남겼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 술잔을 뺏는다면 숨어 있던 반항심이 다시 꿈틀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되도록 술의 긍정적인 효과만을 누리는 방법을 모색해보자. 사실 술은 없던 긍정이나 부정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그저 부추길 뿐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또 누군가를 욕했는가. 분명 그 술은 그만큼 씁쓸할 것이다. 기분 탓이냐고? 놀랍지만 그 술의 맛은 실제로 달라졌다.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에서는 소주 두 잔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한 잔에는 ‘사랑해’라고 말하고 다른 잔에는 ‘미워해’라고 말한 뒤 소주의 맛을 테스트했더니 사랑해 술에서는 부드러운 맛이 났고 미워해 술에서는 매우 쓴 맛이 났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시는 술은 맛있고 기분 좋게 취하게 하지만,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탓하고 욕하며 마시는 술은 씁쓸하기만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힘들 때 기대는 술에 중독되지 말고 기쁠 때 그 기쁨을 더해주는 술을 즐기자.

글 김신예 기자 shinyekk@yonsei.ac.kr
사진 구글이미지, 캡쳐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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