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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의학, 두 길이 만나는 곳김철중 의학전문기자가 20대에게 전하는 차오름의 메시지
  • 김은지 기자
  • 승인 2012.09.24 00:35
  • 호수 1692
  • 댓글 0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한, 그대는 영원히 젊으리라’, 사무엘 엘먼의 「젊음」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용기와 힘이 있는 한 새로운 결단 앞에는 나이는 결코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결단에 대한 망설임을 갖는다. 하지만 망설임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 여기 사무엘 엘먼의 시처럼 본인이 가진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조선일보의 의학전문기자 김철중씨가 있다.

언론과 의학이 만나다

김씨의 직업은 ‘의학전문기자’이다. 현재 조선일보에서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여년 가까이 의료계에 몸담고 있었던 전문의였다. 지난 1999년도에 입사 한 뒤 2007년까지 그는 건강정보를 다루는 건강섹션에 기사를 쓰고 큰 이슈가 생기면 사회면이나 종합면에 기사를 써왔다. 현재는 건강정보보다는 사회적으로 크게 다뤄지거나 학문적인 가치를 갖는 의료 관련 이슈에 대해 기사를 쓴다. 이에 대해 그는 “의사 출신이기 때문에 좀더 의료 쪽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정보와 관련한 기사는 취재원을 의사로 둔다면 기존의 일반 기자들도 충분히 쓸 수 있다. 하지만 의료와 사회가 연결이 되는 고리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단순한 건강 정보 이상의 콘텐츠를 기사에 싣는다. 그는 한 자루의 펜을 통해 의료에 관한 논의를 우리가 사는 세상 앞에 끌어다 놓는다.

의학전문기자, 서른일곱살에 선택한 새로운 길

김씨의 프로필은 조금 특별하다. 지난 1997년부터 고려대병원에서 약 2년간 전임의로 재직했다. 그리고 그는 99년도에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전혀 색이 다른 두 개의 직업을 가진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신문에 관심이 많았다. 의과대에 입학한 뒤, 의과대의 교과과정상 학과 공부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에도 매일 도서관에서 책과 신문을 읽었다.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인턴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증을 딴 뒤 군의관으로 입대를 했다. 군의관 시절은 언론에 대한 그의 관심을 구체화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시중에 나온 의료전문기사를 보면 평소 신문을 좋아했던 만큼 저것보다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그는 말했다. 김씨는 제대 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며 본격적인 언론 공부를 시작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를 보며 언론대학원 면접 담당자는 대학원 입학을 재고해보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6개월 뒤 언론대학원의 문을 다시 두드린 그는 결국 수석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 후 김씨는 언론 공부와 함께 임상강사로 대학병원에서 2년 간 근무했다. “당시 IMF 금융위기로 정식 교수 발령이 늦춰졌고 병원 측에선 1년만 더 강사직을 부탁했어요. 그 순간 열여덟 해를 걸어온 길에 대해 의문이 들었죠”라고 그는 말했다. 김씨는 비로소 고지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이제까지 추구했던 가치에 대해 생각을 했고 스스로 전환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의학전문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조선일보와 계약 한 뒤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오는 데 갑자기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공포가 들면서도 동시에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서른일곱살에 의학전문기자가 됐다.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다

의학전문기자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 질문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는 15명정도의 의학전문기자가 활동하고 있다. 그 중 8명은 의사를 직업으로 갖던 중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고, 나머지는 일반기자로서 의료 관련 기사를 계속해서 쓰다 보니 전문 분야로 갖게 된 경우다. 의사 출신이기 때문에 일반기자에 비해 의료계 쪽에 깊고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는다. 그는 기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관심을 갖는 분야의 전문가들과 친해질 것을 권한다. 전문가들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것은 콘텐츠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기자는 자신이 맡은 분야의 정보의 축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축으로 이야기가 흘러 미디어로 나가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라며 말을 이었다. 또한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려면 그 분야의 용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법조, 정치, 환경, 군사 등 다양한 분야의 기자들은 용어에 있어 크게 어려움이 없지만 의료부분은 용어에서 오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김씨는 “용어 측면에서 의사 출신의 기자는 의학용어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큰 이점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의 길을 선택한 후 의사로서 일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사로서 배웠던 모든 경험은 지금의 그를 만드는 최고의 자산이 됐다.

기자는 여전히 힘이 세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신문은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에 대해 그는 “신문의 위기가 콘텐츠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담론은 콘텐츠를 통해 계속 확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기자는 더욱 특화된 콘텐츠를 수용자에게 전달함으로써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에게 정보가 전달되는 통로가 바뀌어도 콘텐츠를 만드는 누군가는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심폐소생술에 대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쓴 경험을 들었다. 그 기사를 통해 실제로 개인을 넘어서 단체들의 변화까지 촉구할 수 있었다. “두 손으로 직접 환자를 살릴 수는 없지만 의사로서 평생 구할 수 있는 환자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사회가 한 분야로만 활동할 수 있는 단순 구조가 아니며 그 변화가 빠른 만큼 모든 분야가 서로 맞물려 있다. 김씨는 “앞으로 분야 별 교집합은 넓어질 것이기 때문에 여집합이 아닌 교집합으로 뛰어 들어가야 할 것”을 말했다. 또한 그는 전문기자와 일반기자를 구분하기에 앞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기자는 상당히 무례하고 날이 선 사람이지만 주변상황에 대해 당당히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며 말했다. 그런 면에서 김씨는 “기자 생활이 즐겁고 기자의 DNA가 몸 속에 있는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한 손에는 펜을 한 손에는 청진기를, 나는 융합형 인간

“학생을 이과와 문과로 나누는 건 억지라고 생각해요”라는 말로 김씨는 입을 열었다. 김씨는 실제로 고등학교 재학 당시 적성검사를 했을 때 ‘소설가’가 추천 직업으로 나올 만큼 문과적 성향이 짙었다. 하지만 수학에도 소질을 보였기에 주변의 권유로 이과에 진학하게 됐다. 이과와 문과를 나누는 교육 시스템 때문에 직업이 결정되는 현 상태에 대해 그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의과대 내 학생들 사이에서도 정치외교, 미술, 어문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나타내요. 이과와 문과라는 울타리로 개인의 특성을 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현재 학문의 학제는 공급자의 편의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그는 “100년간 지속 됐던 학제 시스템의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에 한계가 있어요. 이제는 정말로 융합이 필요한 시대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융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언론과 의료가 만나는 접점에 서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20대에게

그는 어찌보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서른일곱살에 그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었다. 수많은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그는 “결단을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불안해하지 말 것을 말했다. 김씨가 불안을 떨치고 언론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그의 안에 차오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펙이 필수가 돼가는 시대에 그는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가능성에 담을 쌓지 말 것을 말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분야를 찾고자 할 땐, 열린 마음을 갖고 분야 간 담을 만들지 마세요. 개인이 찾아낸 그 부분에 대한 차오름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그는 이어 말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의사생활을 할 때까지 자신 안에서 차올랐던 그 무언가를 선택한 것이다. 열정에 대한 아쉬움이 턱 밑까지 차올랐을 때 비로소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김씨는 의사라는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갖고 있었음에도 자신에게 차오름으로 다가왔던 ‘기자’를 선택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결정을 따르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는 그의 눈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글, 사진 김은지 기자
kei_824@yonsei.ac.kr

김은지 기자  kei_82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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