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리서치기관에 의뢰한 ‘제19대 총선에 관한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가족·친구·이웃과의 대화’를 통해 정당 및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응답자가 28.9%로 가장 높았다. 이는 '언론매체의 보도'(23.6%), 'TV대담/토론회 및 방송연설'(19.2%)라고 답한 수치를 웃돌았으며 이러한 응답률은 8년만에 약 7.6배 이상 늘었다.
흥미로웠다. 19번째 선거판을 얼마나 깨끗했다고 여겼는지, 고질적인 회의감을 보여주는 수치는 둘째였다. 투표 당사자들이 ‘얼마나 주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투표를 하고 있는지’에 눈길이 갔다. 댓글에도 시민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소속보다도 타인과의 교류에서 최종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대해 혹자는 ‘정당의 언론플레이를 국민이 더 이상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사견에 기댈 수 밖에 없다’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이는 ‘우리나라 정치계에는 뽑을 만한 인재가 없기 때문에 국민의 책임의식, 시민의식이 미약한 것’이라고도 말했다.   

‘시민의식’. 이 단어를 들었을 때 필자에겐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담임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로, 필자의 또래들을 겨냥한 내용이었다. 당시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실시한 청소년의 반부패 의식수준에 대한 설문이 주 논의거리였는데, 당시엔 공감하지 못했던 필자였지만 몇 년 후가 지난 지금에서야 그 내용에 비로소 통감했다. 이를 찾아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한국투명성기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17%는 10억을 벌 수 있다면 감옥에 가도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
2.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설문항목에 대해서는 절반에 못미치는 45.8%만 ‘정직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고 22.6%는 ‘부자가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3. ‘뇌물을 써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쓸 것이다’라는 항목에는 20%가 동의했으며 이를 목격했을 때 신고할 것인지에 대한 설문에는 절반이 조금 넘는 53.2%만이 동의를 했다.
4. ‘나를 더 잘 살게 해줄 수 있다면 지도자들이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괜찮다’라는 항목에는 응답자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위 내용을 말하며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는지, 왜 ‘17%가 아니라 단 1.7%일지라도 우리는 통감해야한다’고 열변을 토해내셨는지, 그 당시에는 철저하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가정이나 직장을 가지지 않은 어쩌면 사회의 이해관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기의 아이들이 위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당시 설문에 응했던 청소년들은 어느새 어엿한 성년으로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부정부패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너그럽게 눈감아줄 용의가 있다고 답했던 이들.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을지, 이들이 만들어갈 대한민국의 모습이 궁금하다.
한편 이러한 시민들의 책임의식에 비해 19대 총선이 '깨끗한 선거였다'는 주관적인 응답은 절반에 못 미치는 49.8%를 기록했다고 한다. 허나 ‘국민은 그 수준에 걸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말을 떠올렸을 때,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는 정치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의 머리를 스친다.

임미지 부장 haksuri_mj@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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