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난무하는 무책임한 긍정들, 왜 이러는 걸까?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는 ‘자기긍정’이라는 개념을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자기긍정은 ‘꿈꾸는 대로 된다’는 슬로건을 필두로 자기 자신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어떤 일이든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시크릿』이나 『꿈꾸는 다락방』 같은 책들은 낯선 자기긍정이라는 개념을 일반 대중들 사이에 보급하는데 기여했다.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긍정이 회자되는 것은 물론 그를 다룬 책들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꿈꾸는 다락방』에서 나온 문구인 ‘R=VD(Realization=Vivid Dream)’은 고시생과 수험생들의 책상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자기긍정의 열풍은 현재도 유효하다. 『시크릿』과 『꿈꾸는 다락방』은 이전에 비해 조명을 덜 받고 있지만 스테디 셀러로 자리매김했고, 최근에는 이 두 도서를 대신해 다른 컨텐츠들이 자기긍정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이 주최하는 ‘열정락서’를 필두로 한 청춘콘서트나 각종 기관에서 주최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열정락서는 김난도 교수, 김주하 앵커, 제일기획 김낙회 대표 등 소위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연사들이 나와 자신에게 내재된 열정이란 어떤 것인지 얘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우리대학교의 경우 각 단과대에서 해당 단과대 출신 동문과 학부생들을 ‘멘토-멘티’로 이어주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개인 내면에 존재하는 열정과 긍정을 이끌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삶에 대해 동기부여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자기긍정’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아직도 성장통으로 힘들어하는 20대들의 지지가 특히 두드러졌다.

누군가의 위로가 마음을 한없이 공허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너 자신을 믿어”
우리가 어떤 일로 고민을 하거나 심적으로 힘들어할 때 사람들은 위로로 쉽게 이런 말들을 건넨다. 그러나 그들이 건넨 위로는 실질적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을 뿐 상황이 나아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이미 기득권에 속한 이들이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조언을 건넨다면 오히려 배신감과 사회적 격차만 더 느낄 뿐이다. 이런 이유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비판을 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앙대 장한샘(신방·08)씨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춘들의 문제를 ‘젊어서 할 수 있는 고생’으로 치부한다”며 “이는 더욱 고령화된 사회를 살며 이전보다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없는 청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자기긍정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자기긍정은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꿈꾸는 대로 된다’는 얘기, 우리가 흔히 듣고 있는 슬로건과 다르지 않다. 이런 긍정적인 슬로건은 7, 80년대 고도 성장 시기를 겪은 지금의 장년층들이 습관처럼 내뱉는 말인 “하면 된다”를 연상시킨다.

이런 긍정적인 사고의 이면에는 주변 상황마저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고,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 시스템을 간과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러 사람들의 힘과 의견이 합쳐져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개인에게로 그 중요도가 분산돼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게 된다. 일례로 양극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들 수 있다. 즉, 양극화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사정을 개선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노동을 하면 해결된다는 논리와 똑같다. 이는 마치 가난한 사람에게 “가난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본인이 돈 벌 노력을 안 하니 가난한거야”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우리대학교 인예대 교양교직 엄기호 교수의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었어」에서도 ‘자기긍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엄 교수는 자꾸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춰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면 어렵고 두려운 일을 헤쳐 나가려는 데 있어서 필요한 ‘동료’가 주변에 남게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 상황은 평소 만성적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고독을 더 심화시킨다고도 말한다. 한편 엄 교수는 “자기긍정이 처세나 심리학과 결부돼 개인적 대처방안의 한 가지는 될 수 있지만 본질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자기긍정? 끔찍한 ‘러시안룰렛’이 될 수도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긍정으로 더 좋은 결과를 목적으로 하는 자기긍정은 때론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늘 ‘장밋빛미래’만 꿈꾸다보니 어떤 기회에 대한 확률을 객관적으로 사고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이 수반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살벌한 ‘러시안룰렛’이 벌어지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러시안룰렛은 권총에 단 하나의 총알을 넣고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탄창을 돌린 후, 참가자들이 각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으로 종종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결과는 선택 아니면 죽음이어서 산술적으로는 50:50의 확률. 그러나 자기긍정을 바탕으로 상황을 고려하면 죽음의 경우는 생각하지 않아 실현 가능한 위험에 대비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긍정이 우려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 있다. 

긍정의 페르소나, ‘통제자 없는 억압’

이런 우려와 ‘긍정의 과잉 시대’에 반기를 들 듯 최근 「피로사회」라는 책이 서점가는 물론 인문학계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피로사회」는 근대 이후 개인을 성과주의와 긍정이라는 이름으로 옭아맸다고 지적한다. “너라면 할 수 있어”라는 부드러운 억압은 개인들이 스스로 자유를 선택해 어떤 성과를 달성했다는 착각을 하게 하지만, 실은 자기착취의 늪에 빠지고야 만다고도 말한다. 이에 빠져 허우적대다보면 어느새 자아는 사라지고 이로 인한 공허감에 우울증, 자학, 자살이 유발된 것이라고도 저자는 지적한다. 다시 말해 고갈된 자아를 기반으로 한 우울증이 21세기에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대두된 데는 긍정의 가면을 쓰고 개인이 자기 자신을 착취하도록 만든 후기산업사회의 성과주의가 그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과주의는 한계점이 정해져있지 않아 비교대상이 없고 그 결과 온전히 개인 내부에서 경쟁이 일어난다. ‘자신의 자신에 대한 싸움’ 상태가 지속되다보니 외부로 표출될 에너지는 고갈되고 그 끝에 우울증과 직면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 결과다. 

‘나는야 긍정왕’과 같은 멘트들이 언젠가부터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당신에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이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인 사람은 아닐까라고 우려를 해본 경험이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분명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들은 대인관계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만 불가피하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비판적 판단마저 억압해가며 갖는 긍정성은 좋은 게 아니다. ‘믿는 대로, 꿈꾸는 대로 된다’는 신념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시점이다.

곽기연 기자 clariecie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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