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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계의 음유시인, 작곡가 조영수를 만나다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와 함께 하는 대중음악 이야기
  • 김재경 기자
  • 승인 2012.06.03 23:43
  • 호수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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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SG워너비, 씨야 등이 불렀던 미디엄 템포*의 곡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국민적 사랑을 받은 SG워너비 「내 사람」은 그들의 뒤에서 작곡은 물론 감독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이가 있으니, 바로 작곡가 조영수 동문(식품공학·95)이다. 조 동문이 작곡한 곡은 셀 수 없이 많다. SG 워너비, 다비치, 이승철, 나윤권, 최근에는 아이돌인 티아라의 곡들까지. 최근에는 '2bic'(투빅)이라는 실력파 남성듀오의 제작을 맡았다.

조 동문은 2006년 SBS 가요대전 작곡가상을 시작으로 많은 작곡가상을 휩쓸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5년 연속 저작권료 수입 1위의 자리를 차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7년 1집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세 번째 『all star』(올스타) 앨범을 발표했으며 올스타 앨범에는 다비치, 김종국, SG워너비 등 영향력있는 가수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2011년에는 모 신문사의 기자와 함께 가수의 꿈을 키우는 이들을 위해 오디션에 관련된 『스타 오디션 30초의 승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공과대생이 작곡가가 되기까지

학창 시절, 조 동문은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에 빠지면 미치는 성격이었어요.” 초등학교 때에는 피아노에 빠졌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당구에 빠졌다. “고3 때는 흑인 음악에 빠져 머라이어 캐리, 보이즈투맨의 노래를 즐겨 들었어요.”

그는 원래 음악을 혼자 하는 타입이었지만 ‘활천’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여럿이 어울려 음악을 하게 됐다. “동아리 활동을 안했으면 대학가요제에 안 나가게 됐을 거에요.”

공과대 출신인 그가 작곡가가 되기까지 어떤 스토리가 있었을까? 그도 여느 대학생처럼 진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처음에 그는 작곡가가 꿈이 아니었고 직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그냥 음악이 좋아서 같은 과 동기와 대학가요제에 나갔는데 여기서 대상을 타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됐어요.” 대상을 타고나니 음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러면서 대중음악계 사람들을 하나 둘 알아가게 됐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반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작곡가 박근태씨를 알게 됐고 그의 도움을 받아 작곡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의 작곡 이야기

조 동문은 일상 속 상상력에서 노래의 영감을 얻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혼자 방에 있거나 길을 걸어가다가도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상상력을 발휘해 가수들이 완성된 곡을 받았을 때, 그 가수가 어떤 의상을 입고 어떤 안무를 할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예측하면서 곡을 쓴다.

쓰는 곡마다 족족 유명세를 타는 그에게도 곡을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평균적으로 한 곡을 녹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다. 많은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라 예민해질 법도 하지만 그는 녹음 작업을 할 때는 부드러운 제작자다. 음악은 공장에서 뽑아내는 것이 아니다. 작곡가와 가수가 잘 통할 때 비로소 좋은 곡이 나오는 것이다. “녹음하는 가수에게 칭찬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잘 한다고 격려를 하면 만족할 만한 노래가 나오더라구요.” 편안한 분위기 속 칭찬을 통해 가수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긴장감과 예민함을 줄이는 것이 그만의 방법이다.

그가 작곡했던 곡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이승철의 「그런 사람 없습니다」를 꼽았다. 그 곡이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식 대표 추모곡으로 쓰여서인지 의미가 깊었다고 한다.

트로트부터 아이돌 댄스음악까지…
폭넓은 대중성을 좇다

그가 수많은 곡을 쓰면서 고민했던 것들 중 한 가지는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의 갈등이었다. 대중성을 추구하다보면 예술성이 결여될 수도 있고 예술성을 추구하다보면 소수의 취향에 맞는 음악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음악의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많은 고민 끝에 그는 본인만의 해답을 얻게 됐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대중성 있는 곡을 만드는 것이 나의 의무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그의 가치관에 따라 트로트부터 아이돌 댄스음악까지, 홍진영의 「사랑의 밧데리」부터 티아라의 「Cry Cry」까지 대중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들을 써냈다.


평범한 공과대생에서 작곡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작곡가 일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고 힘든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주변 동문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 동문의 모교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방송 분야에서 두 명 중 한 명은 우리대학교 출신이더라구요” 같은 동문끼리 서로 이끌어 주는 모습을 보고 경험하며 학교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끝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갖고, 누구에게 끌려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멈추지 않는 도전을 계속한다면 자신의 음악적 삶이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도 작곡가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작곡한 곡들이 꾸준히 대중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기를 바란다. 마치 음유시인의 시가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듯이.

* 미디엄 템포: 미디엄 템포란 중간템포의 흥겨움을 주는 음악을 말한다.

글·사진 김재경 기자
sulwondo21@yonsei.ac.kr
자료사진 넥스타 엔터테인먼트

김재경 기자  sulwondo2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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