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수중에 20만원만을 들고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말한다면? 아마 대다수가 무모하다 못해 황당한 목표일뿐이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20대 젊음을 무기로 이 무모하고 황당해 보이는 목표를 이뤄낸 이가 있다. 최근 20만원으로 시작한 자신의 세계일주 이야기를 담은 『어쩌면 가능한 만남들』이란 책을 펴낸 홍선기(국제관계·06)씨를 만나봤다.

Q: 20만원만을 들고 여행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고생을 좀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갑작스레 시작한 여행이었어요. 대학에 입학한 후 학교에 정을 못 붙여 수업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클럽에서 노는 날들이 반복됐어요. 나중에는 클럽에 들어갈 돈이 없어서 클럽 바텐더로 일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군대를 다녀온 후엔 다시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그것도 며칠 못가 다시 방탕한 생활로 돌아가 버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을 하러 나가시는 어머니께 누운 채 “엄마, 나 오늘 친구 생일이니까 5만원만 두고 가”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한숨을 품 쉬시더니 “돈 좀 제발 아껴써라”라며 제 머리맡에 돈을 두고 나가셨어요. 그때 번뜩 ‘내가 도대체 뭐하고 있는건가, 이렇게 살면 정말 아무것도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 스스로를 고생시키는 벌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수중에 비상금 20만원과 비행기티켓만을 들고 런던으로 떠났죠. 그때 당시에는 세계일주라는 목표는 없었고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아요.

Q: 런던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A: 우선 지낼 곳을 찾는 것부터가 막막했어요. 수중에 들고 왔던 20만원은 다 떨어져가지, 낯선 외국인을 고용하려는 가게는 없지, 정말 암담하더라구요. 그러다가 우연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시급 1천300원을 받으면서 하루에 20시간씩 일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머슴처럼 일하던 어느 날 새벽 1시쯤에 20살짜리 남자애가 발로 저를 툭툭 차 깨워서 한다는 말이 ‘자기는 영어도 모르고 길도 모르니 나가서 콘돔 좀 사와라’는 것이었어요. 거기서 싫다고 말하면 제가 쫓겨나는 건 시간문제잖아요. 그렇게 되면 당장 갈 곳이 아무데도 없다보니 꾹 참고 심부름을 해왔죠. 사온 물건과 잔돈 40펜스(한화 750원 정도)를 주자 잔돈은 ‘팁이니까 가져요’ 이러는 거에요. 당시에 제가 24살이었는데 나보다도 어린 애한테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싶고 정말 힘들고 괴로웠어요. 그때 처음으로 한국 집에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는 제가 힘든 상황에 있다는 걸 바로 눈치 채시더라구요. 하지만 어머니는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거 다 안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일이든 절대로 영원한 일은 없으니까 니가 조금만 이 시간을 견뎌내면 더 멋진 날들이 찾아올 것이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고등학생 때 부모님을 갑작스레 여의고 어린 두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시기도 했던,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난을 이겨낸 분이시거든요. 그런 분의 말씀이니까 정말 큰 힘이 됐죠. 이때를 계기로 세계일주라는 목표를 세우게 됐어요.

Q: 세계일주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나요?
A: 한달 반 정도 뒤에 다른 민박집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됐는데, 이전과는 달리 업무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인식당, 환경미화원, 이삿짐 아르바이트, 관광가이드 등 민박집 외의 일도 했었죠. 여기저기서 일을 하다가 Old Justice라는 영국의 펍에서 자리를 잡게 됐죠. 6개월 동안 그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1천300만원이 모였어요. 세계일주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죠.

Q: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A: 파나마 감옥에서 13명을 죽이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가르시아씨를 만났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파나마는 유럽부터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순으로 세계를 여행하다 우연히 들린 경유지였어요.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라고 아시나요? 거기 배경이 파나마 감옥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이라고 알려진 곳이에요. 저는 파나마 감옥을 춘천 남이섬 같은 곳으로 생각했어요. 겨울연가가 흥행에 성공하고 나서 남이섬이 관광지로 탈바꿈됐잖아요. 파나마 감옥도 그러리라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감옥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20m가 넘는 벽에 군인들이 장총을 들고 서있고, 민간인이라곤 저와 제가 타고 갔던 택시 아저씨 정도? 잘못 온 것 같다는 20m도 넘는 벽에 군인들이 장총을 들고 서 있더라구요. 민간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저랑 제가 타고 갔던 택시의 기사아저씨 밖에 없었어요. 생각에 다시 돌아가고 싶었는데, 치안이 불안한 곳이다보니 그냥 돌아가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택시아저씨가 그러셨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면회증에 생각나는 스페인 이름을 적고 잘못 적었다고 변명하려던 차에, 아무렇게나 적었던 가르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죄수가 그 감옥에 두 명이나 있었던 거죠. 한 명은 35살, 다른 한 명은 65살, 이렇게 두 명이요.

Q: 정말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A: 65살 죄수를 만나겠다고 했죠.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 덜 무서울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 순간 교도관이 ‘13명이나 죽인 그놈을 만나러 왔다고?’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 무서웠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면회를 신청했으니 만나는 수밖에. 면회소에 들어가 조금 기다리니 가르시아씨가 들어와서 눈이 마주쳤는데, 그 분도 참 황당하죠. 파나마는 한국대사관도 없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들도 살지 않을 정도로 동양인이 드문 곳인데, 웬 낯선 동양인이 면회를 왔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처음에는 무서워서 긴 침묵이 이어졌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수갑을 차고 있는 상대가 절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하다가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20대일 때 조직 간의 분쟁이 있었고 살기 위해 상대를 죽였다고 대답하며 그 사람들이 늘 내옆에 있다고 말하는데, 너무 안쓰러웠어요. 13명을 죽인 살인자라고 하기엔 너무도 평범하게 생긴 노인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거 같기도 해요. 그 와중에 더 호기심이 생겨서 또 질문을 했죠. 물론 파나마 감옥에는 가석방이 없지만, 혹시나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옥에서 나가서 살고 싶냐고 말이죠. 그 노인분은 이미 자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고, 나간다 한들 다시 피해를 주지 않을 자신도 없다고 하며 그저 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어요. 제 여행 이야기를 해주다보니 1시간 30분의 면회시간이 벌써 끝나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는 가르시아씨의 눈을 바라봤는데, 말을 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는 말, 믿으시겠어요?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 할아버지를 안아드렸어요.

Q: 여행 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담은 『어쩌면 가능한 만남들』이라는 책을 내셨어요. 국문학과 학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작가지망생도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책까지 출판하시게 된 건가요?
A: 어릴 때부터 제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 쓴 원고를 들고 출판사들을 찾아다녔죠. '무명의 책은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2년 반 동안 총 216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어요. 그 때 어머니가 또 한 번 저를 위로해 주셨는데, 문자를 잘 못 쓰시는 어머니가 어느 날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셨어요. 격려의 문자를 받고 그 동안 써놨던 글을 다 삭제했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거죠. 내 이야기가 왜 책으로 나와야 하는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그렇게 새로 쓴 원고를 들고 계약을 맺은 곳이 웅진출판사에요.

Q: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20대 때는 꼭 여행을 해야 된다는 게 절대 아니에요. 여행이란 20대 청춘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 중 하나일 뿐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여행뿐만 아니라 다른 일과 관련해서도 ‘이걸 안하면 청춘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편협하고 못난 생각이라고 봐요. 다만 자신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하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또 자신이 찾은 그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말도 안 되는 시급을 받으면서도 세계일주를 꿈꿨고, 글솜씨가 전혀 없는데도 책을 출간하겠다는 꿈을 꿨었잖아요? 처음에는 거대한 벽처럼 보이던 것들도 계속 두드리다보면 결국엔 열리게 되어있는 것 같아요. 요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고 있는데,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청춘이란 자신의 꿈을 마음껏 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권리를 지녔는데, 어떻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청춘의 키워드는 아픔이 아니라 '벅찬 젊음'이라고 생각해요.

글 박일훈 기자 ilhoonlove57@yonsei.ac.kr
사진 홍근혜 기자 gnelis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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