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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의 모든 것
  • 김신예 수습기자
  • 승인 2012.06.02 10:42
  • 호수 171
  • 댓글 0

어느 누구도 거대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속에서 한국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이토록 흥행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감독의 작품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내 아내의 모든 것』에 기대를 걸었을지 모른다. 『키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김종욱 찾기』,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등을 히트시키고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요즘 최고의 주가를 구가하고 있는 민규동 감독을 영화제작사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개똥’만큼이라도 철학이 있다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

사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다. 20대에는 연극과 춤에 빠졌고 시나 소설을 좋아했다. 그러던 중 ‘희열’이 사라지고 ‘허전함’만이 남는 연극보다는 영상으로 기록돼 ‘희열’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하게 됐다는 그는 이후 영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단편 영화를 찍던 그는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를 찍은 후 4년간 프랑스로 떠났다. 학생신분으로 체류했지만 그는 영화를 공부했다기보다 더 큰 세상을 인정하고 낯선 공기를 마시고 싶어 ‘살러’ 갔다고 표현했다. “영화를 배우는 곳은 학교가 아니에요. 가장 좋은 가장 좋은 수업은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이죠. 누구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다섯 살짜리도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세상이에요.” 그런 점에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문적인 공부’가 아니라 철학이나 역사인식과 같은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이른바 ‘개똥철학’을 어떻게 쌓고 실천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철학적인 깊이가 감독의 궁극적인 무기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감독으로서 자기한계에 부딪칠 때가 가장 힘들단다. 세상을 향한 자신의 목소리가 희미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영화를 감상하는 데는 2시간이지만 만드는 사람은 2천 시간을 쏟는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작자, 투자자, 배우들이 모두 합의된 상황에서만 영화가 제작되는데, 그 중 수익을 남기는 작품은 10%밖에 안 되는 실정이라고 하니, 과연 영화감독의 삶은 ‘도박사’의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감독에게는 다음 작품, 월급, 연금, 퇴직금 등 어느 것 하나 정해진 것 없고 흥행의 여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저는 『Out of africa』와 같은 헐리웃 고전영화를 좋아해요. 지금은 취향과는 다르게 아기자기하고 밝은 얘기들을 다루고 있죠. 관객들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영화를 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시나리오를 써도 만들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10작품 기획해서 1작품 만들어지고 1천명의 감독 중에 100명만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다른 감독의 삶을 살게 됐다. 그 순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것이지, 절대적인 최선은 아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정해요. 인생이라는 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말이에요.” 감독으로서의 스트레스를 얘기하면서도 그는 어떤 직업이라도 마찬가지일 테고 단지 ‘취향의 문제’라고 말하며 웃었다. 대신 자신에게는 세상의 모든 현상들,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는 행복한 일상생활이 있다며 말이다.

“첫 남자경험을 앤티크에? 아 이건 너무 비밀인가?”

영화에 본인의 얘기를 녹여낸 적은 없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첫 남자경험을 앤티크에? 아 이건 너무 비밀인가?” 『앤티크』 외에도 많은 영화에 그의 경험이 조금씩 스며들어있다. 『여고괴담』에 등장하는 시은(이영진 분)이라는 캐릭터가 청각에 이상을 느끼는 것도 사실 민 감독의 실제 체험에서 나왔다.

당시 시나리오를 공부하던 민 감독은 너무 힘든 나머지 어느 날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귀가 들리지 않은 건 고작 하루였지만 극심한 두려움을 느낀 그는 그것을 캐릭터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의 두려움이 자기강박 때문에 극단에 몰려 귀신 소리를 듣는 시은(이영진 분)의 캐릭터를 완성시킨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섹시한 삼겹살집 간판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그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험들은 종종 영화 속 인물을 빌려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이런 그에게 어쩌면 삶 전체가 영화 제작이 아닐까. 그의 삶을 녹여낸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속 장성기(류승룡 분)가 여자를 유혹하는 방식도 경험담이냐고 묻자 그는 ‘늙어서’ 여자들이 바라는 심리적인 위안이나 배려를 할 줄 아는 것뿐이라 답했다. 늘 칭찬을 갈구하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여배우들을 대하면서 터득했던 스킬들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회생활이 어려워 항상 고독하고 민감한 여배우들과 많이 작업하다보니 어떻게 배려해야할지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즐거운 이유

그는 “인생이 유한하다는 명제가 인간이 처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철학적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이런 깨달음을 비열한 절박함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대신 짧은 인생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지를 고민하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이때 이를 방해하는 선입견이나 억압들을 극복해야 해요. 그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관객들이 이를 깨달을 수 있도록 영화가 즐겁게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절박함이 있어요.”

그는 동학농민운동을 예로 설명했다. 지금은 누구나 ‘과부의 재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백 년 전 우리나라의 사정은 달랐다. 하지만 동학농민운동은 ‘과부의 재가’를 허하지 않았던 당시의 비상식적인 억압을 깨고 그 시대에 존재했던 순응적 태도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이런 의문점을 던진 그는 철학적인 내용을 마냥 지루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이게,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게 세상을 꼬집는, 이것의 그의 영화철학이다.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20대

대학생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해줄 말은 없고 듣고 싶어요.”라고. 그는 힘들 때 20대 초반의 자신을 떠올리면 힘이 난다고 한다. 인생 최고의 시기, 열정이 넘치고 할 일이 너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가 부럽기 때문에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부럽다는 말밖에 없다고. 그걸 즐길 줄 안다면 더욱 부럽고 질투날 것 같단다. 동시에 그는 청춘과 인생이 영원하다고 믿고 ‘내일 하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청춘들에게 당부한다. “내일은 영원과 같은 말이에요. 내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인생이 영원하다는 오만한 믿음이죠.” 오늘 행복하고 오늘 가치 있게 사는 청춘, 그게 멋있는 청춘이라고 말하는 그. 영화 대박 나시라는 문자에 기자도 ‘청춘도 대박’이라는 답장을 받았다. 영화도 대박, 청춘도 대박!

글, 사진 김신예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김신예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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