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PD, 이름 석 자만 들어서는 꽤나 생소한 느낌이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손에 촛불을 쥐게 한 『PD수첩』의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의 연출자라는 소개를 덧붙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하고 무릎을 친다. 『PD수첩』, 『불만제로』, 『7일간의 기적』, 『W』(World-Wide-Weekly)등 다양한 시사 및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2009년에는 『PD수첩』으로 올해의 PD상도 수상한 자타공인 최고의 PD 이춘근. ‘PD수첩’의 광우병 왜곡보도 논란으로 온국민의 주목을 받으며 40개월 간의 법정공방에서 당당히 무죄판결을 받은 이PD. 그의 깨알같은 인생수첩을 「연세춘추」에서 살며시 엿보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될 수 없다면, 드라마를 만들어야지

 1975년생, 올해로 38살인 이춘근 PD는 우리대학교 신문방송학과(現 언론홍보영상학부) 94학번 동문이다. 그가 PD의 꿈을 품고 우리대학교로 진학한 배경에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동의보감』이란 한의학 드라마에 심취했었던 그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한의사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한의사의 꿈을 품으며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에 매진했다. 심지어 경희대에 무작정 찾아가 지나가던 한의대생 3명을 붙잡고 진학상담을 부탁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진학 상담 후,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은 자신이 있지만 혼자만의 지식을 축적해야 하는 한의학에 대해서는 적성과 맞지 않다고 판단하게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드라마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한의사도 멋있지만 그렇게 멋있는 인물을 표현해낸 연출가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우연의 일치였을까? 1994년도에는 기존 본고사 입시제도에서 수능시험제도로 바뀌어 교차지원이 가능해졌다. 고등학교시절 이과 반이었던 그는 주저 하지 않고 우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로 교차지원을 했고, 당당히 합격해 꿈을 향해 한 발 내딛을 수 있었다.

꿈을 향한 남다른 원칙

취업이 어려운 요즘, PD 같이 선호도가 높은 직업을 갖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PD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냐는 질문에 그는 “군대를 가기전 제 성적은 4.0만점 기준에 1.95점이에요”라며 당당하게 성적부터 밝혔다. 학점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그가 PD로 선발됐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입학했을 때부터 PD에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공 공부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람을 만나는 부분에 있어서 최대한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도 해보고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소모임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바탕이 돼 남들보다 앞선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 중에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있다. “태호와는 동갑내기 친구인데, 학과 교류를 통해 만났어요. 저도 대학시절 청바지에 직접 그림을 그려 입는 등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태호도 대학시절부터 패션 감각이 남달랐어요.” 이 둘은 1년에 2~3번정도 교류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술자리에서 살아남는 멤버 중 하나였다고 한다. “서로 학교 잔디밭에서 소주에 새우깡안주를 먹으며 짖꿎은 장난을 치기도 했죠.” 요즘은 서로 바빠 만나진 못하지만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이라며 김 PD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하는 것 외에도 PD가 되기 위해서는 선견지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의대를 준비하면서 한문공부를 했었던 그는 교차지원을 하며 쓸모없어진 한문이 아까워 중국어를 공부했다. MBC에 입사할 당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에 가입하고 몇 년 후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엄청난 성장을 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중국의 급부상이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그를 합격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이어 PD가 되기 위해선 항상 트렌드를 읽을 줄 알고 남들보다 앞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PD는 더 많은 대중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한 발짝 씩 앞서나가기보단 남들보다 딱 반 발짝만큼만 앞서야 합니다. 앞서감과 소통의 조화가 이뤄져야만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죠”라고 덧붙였다.

 

PD는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개김성’이 있어야 한다.

남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그 속에서도 소신껏 말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있어야 한다. 속된 말로 ‘개김성’이랄까?
이춘근 PD는 스스로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개김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담임선생님이 평화의 댐 건설 성금으로 학생들에게 천 원씩 가져오라고 하신 적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주신 천원 중 500원은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500원만 가져갔습니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께서 천원 미만으로 가져온 학생들을 혼내시는 거에요”라고 말한 그는 이어서 “저는 이게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담임선생님께 말했죠. ‘선생님 성금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500원 만큼의 마음을 보태겠습니다.’라고 했다가 엄청 혼났던 기억이 나네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당돌한 성격은 이 PD에게 언론인의 필수 소양인 ‘중립성’을 지켜나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PD수첩’의 광우병편과 현재 MBC 노조 파업 등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부분에서 항상 앞서 있는 그를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대중들이 좌편향 된 PD로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 “이것은 좌익, 우익 혹은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거예요. 광우병 사태나 현재 MBC 파업의 시발점이 된 김재철 사장의 낙하산 인사 및 비리 모두 비상식적인 것이죠” 진실을 진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받는 상황이 계속돼 이번 MBC 파업이 촉발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그는 ‘개김성’이라는 자신의 소신에 맞게 살아가는 중이다.

후배들이여 겸손해져라

PD라는 직업에서 ‘개김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그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PD가 한 번 프로그램 제작을 맡게 되면 저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만든 프로그램엔 제 생각이 담길 수밖에 없거든요. 시청률이 10%만 나와도 500만명이 제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라며 자신의 생각을 남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점이 PD로서 가장 큰 장점이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즉 인애(人愛)가 바탕에 있어야 공영방송의 PD로서 책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그는 우리대학교 졸업생으로서 후배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해 주기를 당부했다. “연세대학교 학생 정도면 사회에서 기득권층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내가 잘나서 내가 똑똑해서 그 자리에 있다는 건방진 마음을 가져선 안 됩니다. 단지 남을 대신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지 더 잘나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며 연대인들이 부디 성숙한 마음가짐으로 자신보다 낮은 곳을 바라봐 주기를 촉구했다.

MBC 파업이 끝나면 어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싶다고 대답한 그.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MBC 시사 교양국의 PD로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언론인 이춘근, 지금보다 앞날이 더 기대되는 그를 춘추가 응원한다.

강종민, 최은성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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