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유상호 동문(경영·78)을 만나다

지난 9일 아침, 유상호 동문(경영·78)을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만났다. 나른한 월요일 아침, 거기에 부쩍 더워진 초여름 날씨까지. 방금 보낸 주말에 과연 휴식이나 취했을까 할 정도로 여유 없고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 살아가는 그였지만 지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말 한마디마다 투철함과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와의 만남은 ‘월요병’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다.

  


선비의 고장에서 금융인을 꿈꾸다

유 동문은 지난 1960년 경북 안동에서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 선생의 15대손으로 태어났다. 유서 깊은 가문에서 자란 만큼 유교정신이 집안 문화 곳곳에 담겨 있었다. 그는 “집안 분위기가 굉장히 보수적이었다”며 “절제를 미덕으로 가정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습관이 몸에 뱄다”고 유년시절을 회상했다.


자기관리를 중요시하는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유독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친인척들이 많았다. “평생 은행업에 종사한 아버지, 증권사 CEO가 된 나, 이젠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딸까지 3대가 금융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내 외증조부 역시 은행장을 오래 지내셨기 때문에 가족들의 진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자신의 집안 내력을 소개했다.

유 동문은 지난 1978년 경영학과에 입학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같은 기업가를 꿈꾸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이때 연합동아리를 통해 당시 이화여대 79학번 재학생이었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신입사원에서 전설의 제임스로

그의 첫 사회생활은 지난 1985년 한일은행에서 시작됐다. 첫 직장을 은행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은행 업무가 금융시장에 기본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업계에 첫발을 내딛기 적절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2년을 채 넘기지 못한 채 그는 첫 직장을 떠났다. 그리고는 1988년 오하이오 주립대 최고경영자과정(MBA)에 입학했다. MBA를 마치고 다시 얻은 직장은 은행이 아니라 대우증권 국제부였다. 그는 “증권시장이 훨씬 역동적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후 지난 1992년부터 7년 동안 런던현지법인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그 시간 동안 유 동문은 특유의 탁월한 영업력을 보여줬다. 그는 스스로 이 시절을 자기 인생의 전성기로 꼽는다. 전설의 제임스(Legendary James)라는 별명도 이때 생겼다. “뛰어난 상품 하나를 판매하는 제품시장과 달리 금융시장에서의 영업은 한 회사의 실적과 미래성장가능성, 기업문화 등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고객과의 유대관계가 어느 직종보다 중요하다”며 “금융업은 신뢰를 판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라고 재차 강조했다. ‘내가 한 말은 곧 내 채권이다(My word is my bond)’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에게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꾸준한 계획수립은 전설의 어머니

유 동문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목표가 뚜렷했다. 그는 언제나 회사의 경영진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다. 그 결과 경영진으로의 승진을 18년 4개월 만에 성공했다. 최단 기간 초고속 승진사례를 넘어 증권업계 최연소 CEO 기록도 갱신한 그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생계획을 세운 뒤 끊임없이 수정과 시행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한 점을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꼽았다.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마음가짐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해준 것 같다”며 “이를 통해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면서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헌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생기지만 이를 참고 이겨낸다면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사회적 평판처럼 내게 유리한 것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신뢰를 중시하는 철학은 기업 경영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 한국투자증권은 기존의 위탁 중개 수익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투자은행과 자산관리 부문의 수수료 기반 구조로 개편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국내 금융투자회사 가운데 가장 다변화되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었고 금융투자회사 중에서 국내 최고의 역량을 보유하게 됐다. 부침이 심한 금융업에서 보여준 그의 리더십은 매경 증권인상 최초 2년 연속 대상, 2012 헤럴드경제 자본시장대상과 같은 수상 실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현재 유 동문이 이끄는 한국투자증권은 오는 2020년까지 아시아 증권업계 1위의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한국 금융시장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존재한다”며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금융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하면서 장차 아시아 지역 내에 특화된 네트워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차갑고 딱딱하다구요?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언뜻 직업 특성상 직접적인 금전적 이해관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차갑고 냉혹해 보일 수 있는 증권사 CEO. 하지만 그는 요리와 영화 감상을 취미 생활로 즐기는 남자다. “영국 런던에 있을 때에는 주말마다 가족들을 위해 간단하게라도 요리했지만 최근에는 주말은 커녕 가족들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그는 “개인적으로 국이나 찌개는 잘 만드는 편이며, 은퇴 후 정식적으로 요리를 배우고자 한다”며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파스타를 배우고 싶다”고 요리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요리만큼이나 독서와 영화 관람을 좋아하는 유 동문. 그는 책은 역사 관련 서적들을, 영화는 모든 장르를 즐겨본다. 물론 블록버스터나 액션 영화도 좋아하지만 잔잔한 감동이 있는 로맨틱코미디나 멜로 영화, 특히 고전 영화들을 좋아한다. 그는 “독서와 영화 관람을 통한 간접경험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며 “인간의 특성을 잘 알 수 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며 취미생활로 독서와 영화 감상을 가지길 추천했다.


사랑한다, 연세. 너의 비상을 온누리에!

 

 

그가 사장으로 취임하고 난 뒤 한국투자증권은 우리대학교 응원단 주최의 ‘아카라카를 온누리에’ 공식 서포터로 6년째 활동 중이다. 지원 이유에 대해 “20대 대학생들과의 소통으로 회사 이미지를 젊게 바꿔보려는 고민을 하던 중 대학축제를 통해 그 기회의 장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대학 축제 중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세대 축제를 공식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도 그는 1학년 때 잠시 몸담았던 응원단 활동을 떠올리며 매년 ‘아카라카를 온누리에’ 행사 일에 나설 때마다 당시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린다.


유 동문의 모교에 대한 사랑은 축제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합리적인 사고를 교육하는 강의들과 자유로운 학교의 분위기, 인류애를 지향하는 연세의 학풍은 사회 진출 이후 더욱 빛난다”는 그는 “재학생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길 바란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이처럼 늘 체계적이면서도 준비하며 살아온 인생을 유 동문. 그는 20대들에게 인생 계획을 세우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독서와 영화 감상 등 풍부한 간접경험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기회들을 통한 직접경험을 병행하길 권했다. 높은 신뢰를 통한 인간관계를 위해 ‘상대방이 내게 빚을 졌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라’고 덧붙여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과거의 전설의 제임스, 현재의 성공한 CEO, 그리고 행복한 미래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유승오 기자 steven103@yonsei.ac.kr
사진 정세영 기자 seyung10@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