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수학/불문·08)
서울시 협회장배 펜싱 플뢰레 준우승. 연세펜싱클럽 출신.


가면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 한 발 앞서 허공을 가르며 빛을 발하는 검의 손짓을 따라가다 보면 펜싱이 이렇게 멋있는 운동인가 싶다. 수학과이면서도 특이하게 검을 휘두르는 소녀, 우리대학교 체육대 소속 동아리 ‘연세펜싱클럽’의 따끈따끈한 신상 은메달리스트 유희열(수학/불문·08)씨를 만났다.  

Q. 서울시 협회장배 경기에서 준우승했어요. 경기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해요.
서울시 펜싱 협회에서 주관하는, 펜싱 동호인들의 경기에요. 약 300명 정도 모인 큰 경기였어요. 초등부부터 고등부, 그리고 일반부로 나눠 경기를 했기 때문에 규모가 꽤나 커서 이틀에 걸쳐서 치러졌습니다. 대학부가 없기 때문에 일반부에서 경기를 해야 했는데 이 대회에 참가한 대학은 서울대와 우리대학교뿐이었어요. 대학생 중에서는 제가 거둔 준우승이 최고의 성적이었죠.

 
Q. 경기 이야기를 해주세요. 어떻게 진행됐나요?
펜싱은 15포인트를 먼저 찌르면 이기는 게임인데 리그는 예선개념이라 5:5 경기를 합니다. 저희 동아리에서 여자 세 명이 나갔는데 경기에서 자꾸 붙게 됐어요. 그 중 한 명에게는 연습 때 져본 적이 없었는데 본 경기에서 5:0으로 졌습니다. 그 당시에 충격이 엄청났어요. 그 친구는 리그전부터 진지하게 임했던 터라 ‘대회나 한 번 나가보자’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임했던 저와는 대조적이었거든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친구와 결승전 토너먼트에서 다시 붙었을 때, 8:1로 지다가 중후반부터 몸이 풀려서 8:1이 8:8이 되고, 서로 한 점씩 주고받았습니다. 마침내 14:15가 되어서야 겨우 이길 수 있었죠. 참고로, 금메달은 5년 동안 펜싱을 연마했던 다른 펜싱 클럽의 여자 분이 차지했습니다.

Q. 언제부터 펜싱을 하게 되었죠?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올해 1월 중순부터 시작했어요. 원래도 운동을 좋아했죠. 운동 중에서도 물속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수영을 좋아했어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그 당시에 유난히 많이 쌓였고, 이 스트레스를 수영으로는 다 풀 수 없겠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과대에서 ‘연세펜싱클럽’ 홍보 포스터를 보고 고민하다가 용기내서 시작했죠. 제가 들어왔을 때 여자가 한명도 없었는데 지금은 4명이나 있습니다. 저를 선두로 400% 늘지 않았나요? (웃음) 칼을 규칙에 맞춰 휘두르는 것에서 수영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됐고, 이에 점차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Q. 대회에서 준우승 후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졸업 안해?” “다른 동아리도 하면서… 도대체 몸이 몇 개야?”라는 반응부터 “검을 잘 쓰는구나. 이제부터 (너에게) 잘할게”라는 반응까지 다양했습니다. 벌인 일이 많은데 펜싱까지 한다고 하니 많이들 놀라워했었죠. 상을 받았을 때가 지난 4월 1일이었어요. 상 탔다니까 거짓말이냐고 반문하더라고요. (웃음)

Q. 본인이 생각하는 펜싱의 매력을 말해주세요.
펜싱은 굉장히 절도 있는 운동입니다.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관객의 야유를 많이 받는, 즉 ‘명예’를 중요시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왼손공포증이 있어요. 왼손잡이 선수가 공격을 하면 제게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공격이 오기 때문에 당황스럽거든요. 한번은 왼손잡이 선수의 공격에 당황해 지켜야 될 룰을 안 지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관객들의 야유를 참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이런 페어플레이 정신이 펜싱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스크를 쓰면 표정이 안 보일 것 같죠?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면서 교감을 느끼는 그 순간이 짜릿합니다. 


 
Q. 본인만의 ‘비장의 기술’이 있나요?
‘콩트로 아타크(Contre attaque)’라는 기술이에요. 펜싱에서는 공격권이라는 게 있어요. 상대방이 칼을 휘두르고 나서 찔러야 점수를 받는데, 이 기술은 상대가 공격을 하기 전에 찔러 득점을 하는 기술이에요. 제가 상대방의 칼을 찰나에 피하면서 찌르는 것을 잘하거든요. 아, 사실 이 기술은 펜싱을 잘한다면 많이 쓰진 않는 기술이에요. 펜싱을 잘하는 선수는 상대의 칼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하며 찌르기’보다는 훨씬 안전한 방법으로 상대의 칼을 막는 것을 택하거든요.   

Q. 수학과 불문학을 동시에 전공하고 있는데, 무슨 계기라도 있나요?
휴학 중에 정말 우연찮게 불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배워왔습니다. 제가 무형의 것이든 유형의 것이든 어떤 것을 사랑하게 되면 푹 빠지는데 그 후에 이중전공까지 하게 된 것이죠. (유씨는 여기서 ‘어떤 행동의 리듬을 타게 되면 그 궤도에서 안 벗어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연세춘추의 외부 필진으로도 참여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문과공부와 이과공부를 오가며 다른 점을 많이 느꼈는데 그런 에피소드를 풀어내고 싶기도 하고요.

Q. 벌써 4학년이에요. 향후 계획이 있나요?
제가 펜싱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왜 또 4학년 때 해괴망측한 일을 벌였냐?’고 물으셨어요. 남들은 취업 준비하는데 동아리에 빠져 있는 제가 다소 한심하게 보이셨나 봐요. 그렇지만 전 펜싱으로 얻는 활력으로 인해 다른 과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생기 넘치잖아요? 7월에 어학연수를 위해 프랑스에 갑니다. 어학실력을 키우기 위해 가는 것이지만 펜싱의 본고장이니만큼 펜싱도 연마하고 싶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저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일을 택해야만 할 때, 비록 후회할 것임을 알아도 일단 저지르고 봅니다. 이 순간이 아니면 못할 것들이기 때문이에요.

매주 월요일, 수요일 저녁에 펜싱 연습이 있다는 그녀. 인터뷰를 마치고 연습을 하러 가야한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열정이 묻어났다. 유희를 찾아가고 그 유희 속에서 희열을 느낀다며 자신을 유희와 희열이 공존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소개하는 그녀의 모습이 제법 멋있다.

글 김정연 기자 chadonyeo_j@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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