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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특집] 만나고 싶었습니다
  • 김광연 수습기자
  • 승인 2012.04.07 18:25
  • 호수 166
  • 댓글 0


‘위대한 탄생’이 낳은 스타, 조형우씨와의 달콤한 만남

'Can't take my eyes off you~'.
감미로운 음색으로 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이를 기억하는가. 지난 2010년 11월 방송을 시작해 2011년 6월 막을 내린 ‘위대한 탄생, 시즌1(위탄)’. ‘위탄’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하고, 능력 있는 원석을 발굴해 여러 실력파 가수를 배출해냈다. ‘위탄’이 배출해낸 가수 중 한 사람이 우리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위탄’의 엄친아이자, ‘교회오빠’의 훈훈한 이미지로 이슈가 된 조형우 동문(주거환경·06)을 만나봤다.



Q. 스타가 돼 ‘스타 in 연세’ 인터뷰를 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요?
A. 이런 인터뷰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어느덧 고학번이 됐거든요. 후배들에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서 감사합니다. 동문으로서 제 위치에서 열심히 뛰고 싶은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큰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Q. 원래 가수가 꿈이었나요?
A.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항상 음악을 들으며 컸어요. 퀸, 롤링 스톤즈, 비틀즈, 엘튼 존 등의 팝송을 많이 들었죠. 그리고 대학 입학 전 4년간의 영국 유학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그곳에서 현지 친구들과 여러 밴드 활동을 했거든요. 또 우리대학교 생과대 밴드인 ‘생과대 윤리 위원회(생윤위)’의 회장도 맡았고, 지난 2007년에는 대학가요제에도 나갔죠. 전업가수든 아니든, 어떤 식으로든 평생 음악을 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어요. 전업으로 할지는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위탄’을 나가고, 멘토인 신승훈 선배를 만나고 난 후 많은 영향을 받게 됐습니다.

Q. ‘위탄’에 나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군대에서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을 땐 남의 일처럼,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제 1회 백양로 가요제’에 나갔다가 금상을 받게 됐습니다. 그게 인연이 돼 동문들과 함께 ‘목마회’라는 이름의 모임을 형성했고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그러던 중 예상외로 아버지께서 직접 ‘위탄’ 광고를 보고 추천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한번 도전해보게 된거죠. 나도 한번 해볼까, 그런 생각으로 ‘백양로 가요제’도, ‘위탄’도 나가게 됐고,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Q. ‘위탄’ 출연 후 본인이 스타임을 실감하지 않나요?
A. 제 외모가 평범한 편이라 별로 불편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가끔 알아보는 분들이 있죠. 트위터에서 응원해주는 분들도 많고, 선물을 보내준 분들도 있어요. 그럴 때 실감해요. 팬클럽 분들이 많은 힘이 되어주죠. 그런 관심 덕분에 힘을 얻어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Q. ‘위탄’을 찍으며 겪은 일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저에게는 합숙 생활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특히 다른 문화에서 살다 온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생기는 재밌는 일들이 기억에 남네요. 합숙할 때 해외 출신 친구들이 많아서 적응하는데 서로 애를 먹었어요. 남자들은 다같이 3층을 썼는데, 한국 남자들은 가끔 상의탈의를 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외국에서 지내다 온 셰인이나 데이빗 같은 친구들은 그런 문화를 처음 접하다보니 당황해했죠.(웃음)

Q. 대학생 조형우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A. 여러 가지로 해볼 것은 다 해봤어요. 놀기도, 동아리 활동도 모두 활발하게 했어요. 물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대학교의 축제 ‘아카라카를 온누리에’에 서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지난 2011년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하면서 제 자신도 즐길 수 있었고, 즐거웠습니다. 또한 저한테는 많은 배움의 기회가 됐던 행사였습니다. 저는 학교를 매우 좋아해요. 학교는 저에게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답을 알려줬거든요. 이제는 동문 활동이라든지, 제 커리어적인 면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수니까 노래를 통해 도움이 될 수 있겠죠. 학교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꾸준히 동문으로서 학교에 기여 하고 싶어요.

Q. 앞으로 어떤 ‘가수’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A. 먼저 가수로는, 90년대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신승훈 같이 음악도 쓰고, 공연도 기획하고, 앨범 자켓도 만들고 폭넓게 활동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버티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빵 터지고 사라지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진 않아요.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하게 준비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다려주는 분들이 있기에 정말 행복하고 감사드립니다. 좋은 음악으로 찾아뵙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인간적으로는, 부족하더라도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객관식에서 이게 답인 것 같으니까, 다 읽어보지도 않고 답을 찍고 넘어가듯 대학생활을 보내는 분들이 있어요. 그것 보다는 논술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대학을 회사로 가는 관문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생각하길 당부합니다. 열어두세요. 닫아두지 말고. 이 기회가 아니면 탐색할 기회가 많이 없으니까요. 다 해보세요. 그리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가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줄곧 겸손하고 친근했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다양한 것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대학교 모든 학생들이 그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글/사진 김광연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가슴이 뜨거운 사람, ‘한비야’를 만나다

지난 5일,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학부모, 대학생들까지 대강당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엇이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을까.
짧은 머리에 작은 체구, 미소가 크게 걸린 얼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그건, 사랑이었네』의 저자이자 UN 자문위원, 국내외 대학의 초빙교수, 많은 학생들의 롤 모델, 그에 앞서 만난 인간미 넘치는 이 사람은 바로 한비야였다. 약 두 시간에 걸쳐 ‘무엇이 당신을 가슴 뛰게 하는가’ 라는 주제로 학생들의 가슴까지 울린 그녀의 목소리를 택시 안에서 다시 접할 수 있었다.

나의 발이 담긴 곳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이 안에서 나는 언제나 젊다.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학교를 찾았지만, 이곳에만 머무르기엔 그녀는 너무 바빴다. 바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이동하는 그녀. 인터뷰를 위해 기자들도 함께 택시에 올라야 했다. 꽃샘추위에 아직은 조금 쌀쌀한 저녁시간이지만 대강당을 출발하는 택시 안에서는 이야기 꽃이 만발했다. 차창 밖에 걸린 불빛들이 차 안을 비출 때 마다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여느 젊은 대학생의 모습과도 같았다.


“2012년은 저에게 의미 있는 해에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비야’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작가라는 직업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글쓰기는 그녀가 사랑하는 일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녀는 글쓰기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지금 그녀는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 이화여대 초빙교수, IDHA(국제인도지원 학위과정, International Diploma in Humanitarian Assistance) 전임강사로 일하고 있다. 특히 구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재교육을 받은 뒤 국제 자격증을 취득하는 IDHA에서의 일은 그녀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예전에는 배우는 입장이었던 곳에서 가르침을 전하게 됐어요.” 또한 전 세계의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에 그녀에게 또 다른 감동이며 설렘이다.

하는 일을 다 나열하면 숨 가쁠 정도로 여러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녀는 많은 일을 한다 해서 어느 하나라도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화여대 초빙강사로서의 마음가짐은 진지하다. 아직 국내에서는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국제구호학’을 그녀는 어린 학문이라고 표현했다.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강의를 하는 데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초빙교수뿐만 아니라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녀다.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서 현장에 다녀온 뒤에는 교육과 자문을 한다.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정책에 반영해서 현장에 잘 녹여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음표가 가득한 오선지같다. 빽빽하게 들어선 음표들에 열 손가락은 쉴 틈이 없어 보이지만 그녀는 ‘한비야만의 인생곡’을 멋있게 연주하고 있다. 작사, 작곡, 연주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그 과정자체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하는 일에 우리도 참여할 방법은 없을까? 생각보다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이 있었다. “요즘에는 대학생들을 위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요.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세이브 더 칠드런 등의 단체에서는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해요. 그리고 유니세프나 유네스코 등 유엔기구에도 여러 가지 기회들이 많이 있고요. 그러니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서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그녀가 재차 강조한 단어는 ‘선택’이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끊임없이 찾고 원하는 일을 선택할 것. “뷔페에 갔다고 생각을 해봐요,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가장 맛있는 것을 선택해야지 처음부터 한 가지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구호활동을 하는 방법에서조차 모든 가능한 일들을 펼쳐보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한비야를 있게 한 힘이었던 것이다.

일생을 지탱해 주는 것은 생각의 뿌리, 깊고 또 넓게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도쿄 여름 하나니.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 많으니.)
ㅡ용비어천가 中

선인들이 용비어천가를 통해 말했듯,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굳건한 소신이 있는 사람은 다른 것들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법. 그러니 우리도 깊은 뿌리를 내릴 필요가 있다. 그녀가 ‘생각의 뿌리’를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다.
“‘20대에 해야 할 일’같은 리스트에 연연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대학시절에는 ‘생각의 뿌리’를 내리는 게 중요해요. 스스로를 지탱해 줄 깊은 뿌리를 내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들에 의해 쉽게 흔들리게 되거든요.”


한씨의 ‘생각의 뿌리’를 자라게 한 것은 바로 편식 없는 독서였다 “제 생각의 뿌리가 깊어진 것은 100퍼센트 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사람들의 깊은 생각을 알 수 있게 됐거든요.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저에요.”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한비야조차도 감명받은 책은 무엇일까? “『고독의 위로』와 『행복의 기술』이라는 책이에요. 혼자 있는 힘과, 행복을 이뤄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죠.”
그녀는 생각의 뿌리를 내리는 작업으로 ‘혼자 하는 여행’도 언급했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했어요. 그것을 매일 일기장에 기록했고요. 덕분에 스스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됐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동행도 생각의 뿌리가 깊어야 즐거워요. 여러분들도 ‘나’를 알게 해 줄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세요.”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그것, ‘그건 사랑이었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두려워한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날개가 돋을까?’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날개는 반드시 있다”고 말한다. 날개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절벽에서 떨어져봐야 한다. 이처럼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녀는 학생들이 뭐든지 다 해보길 권했다. 날개가 없을 거란 두려움은 ‘정글의 법칙’ 속의 사람들의 속임수일 뿐이니 일단 해보라고.


그리고 그녀는 대학생을 배에 비유했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면 배가 전복될 테니 항구에 있으라고 겁을 준다. 하지만 이처럼 항구에 머무는 것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오히려 배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에요.” 배이기 때문에 항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바다에 나간 배는 전복되지 않는다. 전복될 것 같은 순간, 오히려 스스로가 얼마나 노련한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바다에 나가야만 얻을 수 있는 성장이다. “바깥은 물론 위험하죠. 그렇지만 그곳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가 있잖아요.” 그녀는 대학생들이 세상 밖의 자유 속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응원한다. 택시가 목적지에 다다라갈 때 쯤 그녀가 재차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면 낭떠러지가 있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용기를 내서 한 발짝 씩 가면 그게 당신의 영역이 될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이 사실만은 잊지 마세요!”

글/사진 김은지, 최지은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BK 단장, 신행훈씨를 만나다!

합동응원전, 아카라카, 연고전 등 연세인의 대표 축제에 꼭 빠지지 않는 그들. 그들의 손짓에 따라 펄럭이는 파아란 깃발 물결은 연세인의 마음까지 절로 일렁이게 한다. 얼마 전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우승자 구자명씨의 무대에도 함께해 화제를 모았던 우리대학교 기수단, Blue Knights(BK). 얼마 남지 않은 공학 수학 1차 시험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급히 인터뷰 장소로 달려온 BK 단장 신행훈(화공․11)씨를 만났다.


Q. BK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A. BK는 응원 OT, 합동응원전, 아카라카, 연고전 등 우리대학교 최대의 행사들에서 학생들의 응원을 주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원래는 아카라카 산하에 있는 단체였지만 3년 전부터 독립해 따로 운영되고 있죠. BK 연중 활동 중 가장 큰 행사는 연고전 때 경기장에서 벌이는 ‘매스 게임’이에요. 응원곡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정비하며 우리대학교의 상징인 'Y'자를 만들어 보이기도 합니다. 대략 5분 정도 진행되는 이 공연을 위해 BK 단원들 모두가 여름 방학 내내 총 350여 시간에 이르는 훈련 과정을 버텨내죠.

Q. BK의 훈련 과정은 힘들다고 유명한데요, 실제로 어떤가요?
A. 소문 그대로 보면 좋습니다(웃음). 연고전을 앞두고 있는 여름 방학 때는 매일 학교에 나와 노천 극장에서 야외 훈련을 합니다. 여름에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아래서 몇 시간이고 서 있다보면 아무리 튼튼한 사람이라도 많이 힘들죠. 실제로 저희 기수에서도 10명 정도가 힘든 훈련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갔습니다. 특히 실전에서 큰 깃발을 한 손으로 들고 휘둘러야 해서 훈련 과정에서도 한 손에 들고 오랫동안 서 있곤 하는데요. 한 쪽 근육만 쓰다 보니 힘이 들고 폭염까지 기승을 부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죠. 이런 훈련들이 쌓여 연고전 매스 게임의 순간에 선보여지는데 지난 2011년 연고전 때 응원단 측과 사전 협의한 순서가 맞지 않아 실수가 있었던 것은 많이 아쉽습니다.

Q. 혹시 연고전 할 때 고려대 기수단 측과 신경전은 없나요?
A. 미묘한 신경전은 항상 존재합니다. 번갈아가며 응원을 할 때는 우리 BK가 고려대 기수단 YT보다 잘할 수 있도록 다짐하기도 하고요. 특히 연고전 응원전 때 BK와 YT가 자리를 바꾸는 순서가 있는데 서로 지나치는 그 순간에 신경전이 가장 치열합니다. 지난 연고전에는 표면적으로 불거진 경우는 딱히 없었지만 예전에는 실제로 깃발이 부러지는 등 신경전이 상당히 심했다고 합니다.

Q. 얼마 전에 위대한 탄생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는데요, 참여한 소감이 어떠한가요?
A. 처음에 MBC 위대한 탄생 작가 분이 제게 연락을 줬습니다. 구자명 씨의 마지막 무대가 웅장해보이기 위해서 기수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말이죠. 방송 출연은 저희끼리의 좋은 추억도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BK 홍보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아서 결정하게 됐습니다. 물론 좋은 경험도 됐고요. 저희 대기실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땐 많이 뿌듯했죠. 또한 이를 통해 생방송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해 볼 수 있었고 연예인도 봤어요(웃음). 그날 보조 MC로 활약한 가수 '사이먼 디'를 화장실에서 마주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Q. BK 활동 외의 학교 생활은 어떤가요?
A. 원래 성격이 활발한 편이라 BK 외에도 다른 활동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BK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타(guitar) 학회와 야구 학회를 들어 다른 취미 활동도 하고 있어요.

Q. BK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A. 저는 사실 학점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특히 올해는 BK 단장으로서 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아서 학업에 충실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여태까지의 학점이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학기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탄생 출연 이후로 BK 때문에 바쁜 일은 아직 없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죠. 당장 내일 모레가 공학수학 1차 시험이에요. 그런데 이번 시험은 준비가 잘 됐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로운 편입니다. ‘말이 쉽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정말 뭐든지 ‘하기 나름’입니다. BK 활동도 잘하면서 학점도 잘 받는 괴물 같은 친구들도 주변에 꽤 있거든요.

Q. 스타로서 연세인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저는 대학생 때는 대학생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연세인 여러분들께도 대학생 때 최대한 많은 것들을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대학생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거든요.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에 순수한 열정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해나가다 보면 막연하기만 한 꿈도 더욱 선명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정신없이 공과대 도서관으로 향하는 신씨. BK 단장부터 기타학회, 야구학회에 시험이 많기로 유명한 공과대 생활까지. 그러나 신씨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활짝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아마 신씨를 두고 하는 말인것 같다.

글 정기현 기자 prinkh@yonsei.ac.kr
사진 배형준 기자 elessar@yonsei.ac.kr

김광연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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