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학부모, 대학생들까지 대강당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엇이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을까.
짧은 머리에 작은 체구, 미소가 크게 걸린 얼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그건, 사랑이었네』의 저자이자 UN 자문위원, 국내외 대학의 초빙교수, 많은 학생들의 롤 모델, 그에 앞서 만난 인간미 넘치는 이 사람은 바로 한비야였다. 약 두 시간에 걸쳐 ‘무엇이 당신을 가슴 뛰게 하는가’ 라는 주제로 학생들의 가슴까지 울린 그녀의 목소리를 택시 안에서 다시 접할 수 있었다. 

 

나의 발이 담긴 곳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이 안에서 나는 언제나 젊다.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학교를 찾았지만, 이곳에만 머무르기엔 그녀는 너무 바빴다. 바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이동하는 그녀. 인터뷰를 위해 기자들도 함께 택시에 올라야 했다. 꽃샘추위에 아직은 조금 쌀쌀한 저녁시간이지만 대강당을 출발하는 택시 안에서는 이야기 꽃이 만발했다. 차창 밖에 걸린 불빛들이 차 안을 비출 때 마다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여느 젊은 대학생의 모습과도 같았다.

 


“2012년은 저에게 의미 있는 해에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비야’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작가라는 직업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글쓰기는 그녀가 사랑하는 일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녀는 글쓰기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지금 그녀는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 이화여대 초빙교수, IDHA(국제인도지원 학위과정, International Diploma in Humanitarian Assistance) 전임강사로 일하고 있다. 특히 구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재교육을 받은 뒤 국제 자격증을 취득하는 IDHA에서의 일은 그녀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예전에는 배우는 입장이었던 곳에서 가르침을 전하게 됐어요.” 또한 전 세계의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에 그녀에게 또 다른 감동이며 설렘이다.   

 

하는 일을 다 나열하면 숨 가쁠 정도로 여러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녀는 많은 일을 한다 해서 어느 하나라도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화여대 초빙강사로서의 마음가짐은 진지하다. 아직 국내에서는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국제구호학’을 그녀는 어린 학문이라고 표현했다.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강의를 하는 데 있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초빙교수뿐만 아니라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녀다.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서 현장에 다녀온 뒤에는 교육과 자문을 한다.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정책에 반영해서 현장에 잘 녹여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음표가 가득한 오선지같다. 빽빽하게 들어선 음표들에 열 손가락은 쉴 틈이 없어 보이지만 그녀는 ‘한비야만의 인생곡’을 멋있게 연주하고 있다. 작사, 작곡, 연주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그 과정자체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하는 일에 우리도 참여할 방법은 없을까? 생각보다 우리에게는 많은 선택이 있었다. “요즘에는 대학생들을 위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많이 있어요.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세이브 더 칠드런 등의 단체에서는 대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해요. 그리고 유니세프나 유네스코 등 유엔기구에도 여러 가지 기회들이 많이 있고요. 그러니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서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그녀가 재차 강조한 단어는 ‘선택’이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끊임없이 찾고 원하는 일을 선택할 것. “뷔페에 갔다고 생각을 해봐요,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가장 맛있는 것을 선택해야지 처음부터 한 가지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구호활동을 하는 방법에서조차 모든 가능한 일들을 펼쳐보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한비야를 있게 한 힘이었던 것이다.
 

일생을 지탱해 주는 것은 생각의 뿌리, 깊고 또 넓게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도쿄 여름 하나니.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 많으니.)
ㅡ용비어천가 中

선인들이 용비어천가를 통해 말했듯,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굳건한 소신이 있는 사람은 다른 것들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법. 그러니 우리도 깊은 뿌리를 내릴 필요가 있다. 그녀가 ‘생각의 뿌리’를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다.
“‘20대에 해야 할 일’같은 리스트에 연연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대학시절에는 ‘생각의 뿌리’를 내리는 게 중요해요. 스스로를 지탱해 줄 깊은 뿌리를 내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들에 의해 쉽게 흔들리게 되거든요.”

 


 
한씨의 ‘생각의 뿌리’를 자라게 한 것은 바로 편식 없는 독서였다 “제 생각의 뿌리가 깊어진 것은 100퍼센트 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사람들의 깊은 생각을 알 수 있게 됐거든요.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저에요.”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한비야조차도 감명받은 책은 무엇일까? “『고독의 위로』와 『행복의 기술』이라는 책이에요. 혼자 있는 힘과, 행복을 이뤄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죠.”
그녀는 생각의 뿌리를 내리는 작업으로 ‘혼자 하는 여행’도 언급했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했어요. 그것을 매일 일기장에 기록했고요. 덕분에 스스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됐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동행도 생각의 뿌리가 깊어야 즐거워요. 여러분들도 ‘나’를 알게 해 줄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세요.”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그것, ‘그건 사랑이었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두려워한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날개가 돋을까?’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날개는 반드시 있다”고 말한다. 날개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절벽에서 떨어져봐야 한다. 이처럼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녀는 학생들이 뭐든지 다 해보길 권했다. 날개가 없을 거란 두려움은 ‘정글의 법칙’ 속의 사람들의 속임수일 뿐이니 일단 해보라고.

 


 
그리고 그녀는 대학생을 배에 비유했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면 배가 전복될 테니 항구에 있으라고 겁을 준다. 하지만 이처럼 항구에 머무는 것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오히려 배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에요.” 배이기 때문에 항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바다에 나간 배는 전복되지 않는다. 전복될 것 같은 순간, 오히려 스스로가 얼마나 노련한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바다에 나가야만 얻을 수 있는 성장이다. “바깥은 물론 위험하죠. 그렇지만 그곳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가 있잖아요.” 그녀는 대학생들이 세상 밖의 자유 속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응원한다. 택시가 목적지에 다다라갈 때 쯤 그녀가 재차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면 낭떠러지가 있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용기를 내서 한 발짝 씩 가면 그게 당신의 영역이 될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이 사실만은 잊지 마세요!”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한비야,『그건, 사랑이었네』 中

 

글/사진  김은지, 최지은 수습기자 yond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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