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은 ‘대학에서의 자유와 낭만은 관계의 건설공간’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이 맺는 인간관계의 넓이가 곧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의 크기라는 것이다. 한편 얼마전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는  “대학생 2명 중 1명이 ‘아웃사이더’”라고 응답했다. 대학생이 ‘스펙’을 가진 인적자원으로 이해되는 시대에,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효과적인 인적자원이 되기 위해 ‘아싸’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콜린 윌슨이 말한 개념과 같이 ‘지루하고 불만족스러운 일상의 세계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현 대학생 아웃사이더의 모습과 연결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지난 1680호 「연세춘추」 8~9면에 걸쳐 실린 아웃사이더 기획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자유에 대한 갈망과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이야기와, 효과적인 인적 자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사회와 기업의 요구에 속박시키는 오늘날의 대학생 아웃사이더 이야기를 양쪽에 배치한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을까?

한편 지난 주 「연두」에는 <열정樂서>를 스케치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지난 해부터 이러한 성격의 강연콘서트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역시 대학 사회의 붕괴와 멘토 붐이 맞물려 돌아가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대학언론은 독자들에게 이 시대의 대학 사회를 예리하게 비춰줘야 한다. 지금의 대학사회는 어떠한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판을 친다. 남아있는 공동체는 강압적인 음주 문화와 마초이즘이 지배하는 모습으로 잔재하거나 취업을 위한 스터디 모임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무모하게 ‘회피’하는 베짱이들과 삭막하게 ‘준비’하는 개미들만이 남았다고들 한다. 건전한 생활공동체와 학문공동체가 공존하는 대학사회의 모습은 이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연세춘추」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고 싶다. ‘아웃사이더가 되어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니라, 대학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시대에 바람직한 대학의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담긴 기사를.

이수현(국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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