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대학생’의 동의어로는 지식인, 지성인, 꿈, 사랑, 낭만, 청춘 등이 있었다. 2012년, 대학생들의 동의어는 사뭇 다르다. 학점노예, 취업준비생, 스펙기계… 활기차고  생기발랄한 대학생의 모습보다는 ‘커서 뭐할까?’하는 우려의 시선이 담긴 말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대학은 취업의 관문, 대학생은 취업준비생과 동일시 됐다. 취업 준비생들은 취업을 준비하려 너도나도 ‘취업스펙 6종 세트’를 떠안는다. 스펙은 영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며, 6종 세트란 구직을 위해 필요한 학벌, 학점, 토익점수, 인턴, 자격증, 봉사활동을 일컫는다.

채워도 채워도 모자라

취업준비를 위한 사람들의 관심은 뜨겁다. 네이버 카페에만 ‘스펙’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536개, ‘취업’이라고 검색하면 29180개의 카페가 나온다. ‘스펙 상담’을 키워드로 단 고민상담은 100만건이 넘는다. 우리대학교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대학교 학생복지처 장학취업팀에서는 각 학년별로 갖춰야 할 경력개발시스템을 이메일로 보내주는가 하면, 실전모의면접이나 입사서류클리닉 등의 취업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것은 맞지만 스펙을 장려하는 것은 아니다”는 장학취업팀 김현우씨의 말처럼 취업과 스펙관리를 동일하게 간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펙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는 지원자의 역량을 보여줄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김씨의 말처럼 두 단어가 불가분의 관계임은 분명한 듯하다. ‘스펙이나 취업은 사람 나름이지’라고 치부하기엔 위기감이 엄습할 정도로 주변의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스펙은 취업에 있어 필수불가결?

그래도 가끔은 의아함이 들 법하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을 만큼 스펙이 취업에 절대적일까? 이에 대해 지난 1월 모 대기업에 입사한 고경진 동문(경영·05)은 “스펙은 서류 통과라는 제한적인 범위에서의 장점일 뿐이고, 당락을 결정하는 면접에서는 큰 역할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취업에 있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는가, 혹은 기본적인 생활 태도는 어떠한가 정도를 판단하는 대략적인 기준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어느 정도의 스펙을 갖춰야 지원자의 역량을 보여 줄 기회가 주어진다”는 김씨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펙을 취업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고 일단 남들이 하는 건 다 한다. 각각 ‘나만의 무기’를 갈고 닦는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다 비슷한 스펙, 비슷한 스토리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스토리는 무엇?

왜 우리는 경험자들이 ‘스펙 말고 너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라’라고 해도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까. 아마 20대에게 주입된 목표가 ‘취업’이라서가 아닐까. 이에 그루폰 본부장 정연범씨는 “스펙말고 노력에 의해 개발할 수 있는 무형자산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무형자산이란 한 사람의 이미지, 지식, 성격, 열정 등 내부적인 요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씨는 “무형자산에 창의성을 발휘하면 목표가 발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창조된 결과물은 사람은 감동시킨다”고 더했다. 그리고 시니어 면접관들은 바로 이 점에 집중한다. 정씨는 인위적으로 들이댄 잣대로부터의 탈출이 절실한 이 시점, 스펙 쌓기에 몰두해 정작 자신의 존재를 잃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부탁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좋은 대학을 가면 편해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학에 입학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인생이 편해진다는 소리를 또 듣는다. 하지만 중년에 이르면 'midlife crisis'를 겪으며 또 다른 얘기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랬는데 이제는 또 아프니까 중년*이란다. 오래 산 인생의 선배들은 길게 보라고 강조하지만 과연 10년 뒤, 20년 뒤, 우리는 아직도 대기업에 취업한 행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프니까 중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패러디 한 최기억 칼럼

글 송동림 기자 eastforest@yonsei.ac.kr
그림 김진목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