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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울타리 내 학과간 불편한 진실
  • 정기현 기자
  • 승인 2012.03.25 18:25
  • 호수 1680
  • 댓글 0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기초학문. 언제부터인가 기초학문을 하는데 많은 꼬릿말이 붙기 시작했다. 기초학문만 할 것이냐는 물음, 소신으로 내린 결정이냐는 물음,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계획인지에 대한 물음. 거듭되는 우려의 목소리에 걱정도 커져간다.

상경·경영계열을 향한 학생들의 열망

단과대 별 소속변경에 의한 유입인원

2009~2011학년도 출처 교무처

지난 2009학년도부터 2011학년도까지 소속변경을 승인받은 학생은 369명. 그런데 그 중 상경·경영계열로 소속변경이 결정된 학생들은 무려 40%에 이른다. 단과대 별로는 상경대가 30%로 그 뒤를 잇는 공과대 16%의 두 배에 달한다.

단과대 별 복수전공 현황

단과대
신청순위

문과대
(436명)

사회대
(156명)

상경·경영대
(201명)

이과대
(100명)

공과대
(116명)

1

경영학과
(29%)

경제학과
(29%)

경제학과
(30%)

경제학과
(19%)

경영학과
(28%)

2

경제학과(10%)

경영학과(17%)

응용통계학과(20%)

물리학과(18%)

경제학과(12%)

3

정치외교학과(8%)

정치외교학과(6%)

경영학과(10%)

응용통계학과(13%)

응용통계학과(9%)

2009~2011학년도 출처 교무처

이런 현상은 복수전공제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문과대의 경우 다른 단과대에 비해 복수전공 신청 승인자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인문학을 다루는 학과에서 특히 전공 외 분야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상경·경영계열의 학과는 문과대, 이과대, 공과대, 사회대 등 대부분의 단과대에서 복수전공 희망 학과 1, 2순위를 다툰다. 특히, 학과 공부의 특성상 상경·경영계열과 연관이 많은 수학과의 경우 무려 85%의 학생들이 상경·경영계열 복수전공을 원했다. 심지어 상경·경영계열 학과 내부에서도 희망하는 학과는 비슷하다.

자유전공 전공신청

2011~2012학년도 출처 학부대학

자유전공의 전공신청에서는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학생들이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자유전공제도 임에도 오히려 더 큰 쏠림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1, 2012학년도에 전공신청을 한 250명의 자유전공 학생들 중 무려 89%에 이르는 학생들이 상경·경영계열로의 진학을 희망했다. 이처럼 지나친 학과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이번 2012학년도부터는 한 학과당 배정 인원을 최대 33%까지만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어 전공 배정이 지금보다는 다양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쏠림현상, 학내적 이유?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상경·경영계열 학과는 모두 응용학문이다. 응용학문은 인간의 실제적 및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인간생활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연구되는 학문분야를 총칭한다. 즉, 응용학문을 다루고 있는 학과에 진학하면 사회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전문성을 띤 지식들을 습득하게 된다.

때문에 학과에서 배운 전문 지식을 갖고 관련 분야로 바로 진출할 수 있다. 이는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분야로의 진출이 이뤄지다 보니 학과내의 연대에도 크게 기여한다. 또한 상경·경영계열과 같이 응용학문을 다루는 많은 학과들은 동문들과의 교류가 탄탄하게 형성돼 있다.

실제로 상경·경영계열에는 ‘블루 버터플라이’라는 동문 장학금이 있다. 이는 상경·경영계열 신입생 중 선발된 학생들에게 4년간 학비 전액을 지급하고 교환학생비 1천만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지난 2008학년도에는 신입생 14명, 2009학년도에는 15명, 2010학년도에는 24명에게 지급했고 계속해서 인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학생들의 진로를 아카데미 트랙, 고시 트랙, 공기업 및 금융기관 트랙, 민간부문 트랙으로 나누어 수시로 해당초청 강연을 시행하는 등 동문들과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게다가 국가고시 지도교수도 따로 존재해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적극 지원해주고 있으며 매년 정기적으로 동문과 학부생들을 1대 5~6명 정도로 연결해주는 멘토링 행사도 개최된다. 이는 지난 24일에도 진행된 바 있다.

반면에 문과대의 경우 방대한 학문적 깊이만큼 진로의 폭이 다양해 일괄적으로 진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인문학과 같은 기초학문을 다루는 학과는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특성 때문에 일정한 진로 로드맵이 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인들이 많아 동문 지원 사업이 이뤄지기 쉬운 구조인 상경·경영계열과 달리 문과대의 경우 대학원 진학, 교직 이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때문에 동문들의 재정적인 지원이 상경·경영계열만큼 이뤄지기는 힘들다. 또한 대부분의 문과대 학과의 경우 동문들과의 교류나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이 적은 편이다. 국문과 학생회장 김동준(국문·09)씨는 “국어국문학과의 멘토링 강연은 학생회 차원에서 알음 알음으로 모셔오는 정도이다.”라며 “아직은 체계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사회라는 문턱 앞에 불안해하는 대학생들에게 ‘학교 차원에서의 로드맵 제공과 동문들의 탄탄한 지원’은 달콤한 꿀과 같은 것이다.

사회적 흐름과 함께하는 쏠림 현상

한편, 학생들이 응용학문 학과에 쏠리게 된 현상은 사회 풍조에도 크게 기인한다. 경영대학장 박상용 교수(경영대·재무관리)는 “현대 사회는 물질적인 것의 가치가 매우 크게 평가되고 있다”며 “이런 흐름 속에서 학문도 실용적인 쪽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IMF 경제 위기를 현재 학과 선호도 쏠림 현상을 심화시킨 원인 중 하나라고 봤다. 현재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딛었거나 혹은 사회로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요즘 대학생들의 경우 IMF를 보고 자란 세대기 때문에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생겼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IMF의 타격은 훨씬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며 “이를 요즘 세대 사이에서의 상경·경영계열 열풍을 설명할 수 있다”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이런 흐름에는 정부의 대학 지원 정책 또한 한몫을 한다.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학부교육의 질과 경쟁력 제고를 통해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우수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올해 2천411억원 규모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7개의 지표를 통해 지원 대학을 선정한다. 그런데 재학생 충원율, 교원 확보율 등으로 이뤄지는 7개의 지표에는 취업률 또한 포함된다. 임 연구원은 “이와 같은 정부 정책은 학생들이 취업에 열을 올리는 사회 풍조를 형성하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상경·경영계열에 대한 선호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기초학문, 대책은?

유석호 교수(문과대·프랑스소설)는 학생들의 학과 선호도 편중 현상을 완화시키는데 학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학 구조가 기초학문 학과와 응용학문 학과가 함께 운영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이런 구조상 보다 실용적인 응용학문 쪽의 선호도가 더 높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말했다. 대학도 점점 실용성을 요구하는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처럼 학부와 대학원으로 학제를 개편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한다. 경영대학장 박상용 교수(경영대·재무관리)도 “경영학과 같은 응용학문을 다루는 것은 학부생 차원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학부생 때는 기초학문 위주의 학습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학제 개편과 더불어 인문학 스스로도 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문학을 중시했다는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기업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지고 있다. 유 교수는 “인문학은 창의성, 적응 능력, 사고의 유연성 등을 길러줘 현대 사회에서도 분명한 역할이 있다”며 “인문학 자체적으로도 대중문화 등 실용적인 방향으로의 모색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인문학이 상업성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이런 경향에 대한 우려도 크다. 정명교 교수(문과대·국문학)는 기업이 인문학에 주목하는 이유를 자사의 기업 논리를 인간적으로 보이기 위함이거나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본다. 정 교수는 “기초학문의 목적성이 짙어지면 학문 자체적으로도, 사회 전체적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교수는 인문학의 도구화에 대해 이는 학생때부터 인문학을 ‘체득’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오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에 너무 익숙해져있다”며 “우리나라 교육 과정의 특징 상 에세이 등으로 학생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정 교수는 “이는 학창 시절때부터 학생들이 인문학을 진심으로 대할 기회를 앗아간다”고 우려를 표했다.

손광훈 교수(공과대·전기전자)는 “우리대학교는 종합대학인만큼 기초학문, 응용학문 모두를 아우르는 조화로운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은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가르치는 곳이기라기 보다는 몇 십년이고 효용있는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다. 특정 학과로의 선호도 쏠림 현상에도 불구하고 기초학문이 계속해서 모든 학문의 탄탄한 기반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정기현 prinkh@yonsei.ac.kr
그림 김진목

정기현 기자  prink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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