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의 함성 그 33번째 현장에서…

도주한 자, 또는 도주를 돕거나 목격했음에도 신고하지 않은 자는 즉시 총살형에 처한다. “북송된 가족이 처형당하는 걸 제 눈으로 봐야했어요”                                                                             

 - 『김정일리아』

 

생생하게 북한을 비판한 다큐 『김정일리아』. ‘김정일리아’는 김정일을 위한 꽃에서 따온 제목으로 사랑, 평화, 지혜, 정의의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 다큐에 나오는 탈북하기까지 탈북자들의 희생을 듣다보면, 꽃은 커녕 두만강에서의 요란한 총성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그러나 거짓말 같은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난다. 지난 2월 중국정부는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31명을 강제북송, 이에 대행해 지난 2월 14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탈북자 강제 송환 반대 운동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탈북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마라

“중국정부는 강제북송 중단하라!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라!”


지난 17일 낮 2시 종로구 주한중국대사관 앞. 40여명의 시민들이 'SAVE MY FRIEND'나 ‘북송반대’ 등의 피켓을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이윽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오성기를 향해 울려 퍼졌다. 강제북송이 중단되는 그날까지 하루 두 차례씩 계속되는 무기한 집회와 릴레이 단식이 33일차를 맞은 날이었다.


물 이외의 어떠한 음식도 일절 끊은 3기 단식팀 앞에서 행여 그들이 쓰러지지는 않을까, 목소리를 높이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다. 5일 동안 단식투쟁 중이던 북한민주화위원회 홍순경 위원장은 북한외교관 출신으로 남한에 정착한 뒤 탈북자 인권운동에 앞장섰다. 홍 위원장은 이날 단식투쟁으로 인해 체력이 떨어졌음에도 힘겹게 텐트에서 나와 인터뷰에 응했다.  “종교, 국가, 이데올로기를 떠난 순수한 생명을 위한 문제”라며 “책임감을 갖고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반도 동포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무시한 채 중국정부의 생명경시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며 “보다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날 낮 2시 집회는 참개인가치연대(대표 박경귀)에서 주관했다. 박 대표는 “전문직의 고학력 인사들이 구성원의 대다수”라며 “지식인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부끄러웠기에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참가 동기를 밝혔다. 또한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와다 신스케(50)씨를 포함한 일본인 5명 또한 참가해 국경을 초월한 인권과 평화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는 곧 일본의 평화와도 밀접해 더 많은 일본인들이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탈북자 강제북송은 ‘인권’, ‘양심’의 문제라 강조했다.
 


스위스 제네바, 그 뒷이야기

이날 집회에는 지난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유엔인권이사회에 파견농성을 다녀온 ‘북한정의연대’의 정베드로 대표가 참여해 더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우선 파견단은 유엔인권이사회 보고가 열리는 시간에 유엔정상회의 장소에서 북한의 기아문제와 함께 독재체제를 보여주는 그림 30여점을 전시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정 대표는 “또한 북한 정부 측과 충돌이 있었지만 그들의 인권침해 실태기록을 바탕으로 향후 통일과정에서 가능한 모든 형사적 조치에 대해 경고했다”고 그간의 일들을 정리했다. 이어 정 목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탈북난민네트워크’를 국제적 시민단체로 출범하기 위한 준비의 초석을 마련하고 왔다”며 “27일 저녁 8시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탈북난민문화제에서 진행될 모금운동은 시민들의 사회적 참여를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각계의 인사들이 입장을 표했다. 탈북자 강제송환 반대운동을 시작한 지 30일을 넘긴 지금, 중국대사관을 마주하는 그들의 결의는 앞으로도 무뎌지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 자격요건 지속적으로 갖춰야

저녁 어스름이 깔린 후에는 촛불들이 하나둘 켜졌다. 매일 저녁 7시부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마련된 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다.


처음 문화제가 시작했을 때 시민들은 주저하는 분위기였으나 월드와이드 문화교회에서 수준 높은 합주를 보였다. 이날 참가한 최현정(30)씨는 “종교와는 무관하게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며 “문화제 형식의 집회가 아직 덜 활성화됐지만 장차 소통의 자리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 대표는 “우리는 번역가, 컴퓨터 기술자 등 전문가들과 시민 자원봉사자도 필요하다”며 “앞으로 기획과 진행마저도 시민들의 힘으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적인 NGO로 거듭나기 위해 탈북자들의 정확한 증언 및 자료의 체계적인 정리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활성화돼야 국제적으로 표면화 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생들의 연대를 주장하며

이날 문화제에는 전역을 10일 앞둔 군인, 고등학생,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중에서도 9일에는 대학생 인터넷방송국 ‘리얼코리아’ 소속 대학생들이 삭발을 감행하고 13일에는 경인여대 학생 400여명이 참가하는 등, 대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행동양심’을 실현하기 위해 17일 촛불을 들고 중국대사관 앞을 지킨 대학생 원수민(25)씨는 “훗날 통일이 됐을 때, 남한 사람들이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북한 동포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홍 위원장은 “순수한 생명, 인권 문제에 젊은 청춘들이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며 “생명도 외면하는 사람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잊는 것이다”고 탈북자 문제에 무관심한 학생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훗날 누군가가 ‘자네는 그때 무얼 하고 있었냐’라고 물었을 때 들려줄 말이 없다면 얼마나 부끄럽겠느냐”고 다그치던 그는 여전히 순수하고 열정적인 청년과 다름없어 보였다.  다음은 홍 위원장이 대학생들에게 전하고자한 말이다.  


“탈북민들을 부모, 형제라고 여겨보라. 어떻게 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치 포퓰리즘에만 반응하지 말아라. 보다 숭고한 문제에 관여해라. 특히 올해는 총선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투쟁, 통일의 시발점이 될수 있도록, 지금 움직여라.”

임미지 기자 haksuri_mj@yonsei.ac.kr
사진 배형준 기자 elessa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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