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봄비가 땅을 적신다. 둔탁하고도 규칙적으로 빗물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는 막걸리와 따뜻한 전을 생각나게 한다. 전기장판을 켜놓고 이불을 푹 덮어쓰고 애벌레 마냥 영화를 보며 혼자만의 극장을 만끽할 법한 날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축제의 날로 아로새겨진다.


“언니들, 여기로 다 모여!”

지난 23일과 24일 동덕여대에서는 ‘여대생 페스티벌’이 열렸다. 여대생 페스티벌은 총 10명의 대학생 기획단과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총 6개 여대의 서포터즈를 중심으로 기획 및 진행됐다.

여대생 페스티벌은 여대생들만의 노력으로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들을 수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여대생을 상대로 프로모션을 진행한 기업들이나 프로그램은 꽤 있었다. 그러나 여대생들이 실제로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장은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여대생 페스티벌은 큰 의미를 지닌다.



여대생 페스티벌의 시작은 소위 ‘대외활동 종결자’라고 불리는 스포엔샤 소속 웨딩마케터 오지혜(25)씨의 강연이었다. 오씨는 대학생활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대외활동을 통한 ‘성장’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강연에 참가한 숙명여대 최희경(정치외교·11)씨는 “대외활동만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며 “끊임없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고 강연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

이 외에도 여성 CEO, 뷰티 블로거, 웹툰 작가 등의 강연이 개최됐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여성 인사들의 멘토링, 프리마켓을 필두로 한 문화 행사도 함께 진행됐다. 행사에 단순히 참여하는 입장에서는 그 수고로움을 잘 못 느낄 수 있지만 알찬 행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노력이 요구된다. 여대생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이들의 피나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여대에서 여대생으로 사는 것이란?

“평범하게 일하다가 결혼하고 애 낳아 키우고 살게 되는 게 그냥 싫었어요.” 기획을 총괄하고 있는 서울여대 이예지(경영·07) 씨의 말이다.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이씨의 열망에서 이 일은 시작됐다. 여기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인 성신여대 김선아(식품영양·10)씨에게도 공감을 얻어 점차 함께 하는 사람이 늘었단다. 이것이 여대생 페스티벌의 시초다.

여대에만 존재하는 특수성도 이들이 행사를 개최하는데 한몫했다. 여대생들은 공학 학생들에 비해 과/반 행사나 술자리가 적어 소속감을 덜 느끼고 수업이 끝나면 ‘안녕’이란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향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의 유무에 따라 생활 패턴이 확연히 달라진다.

졸업 후에는 여대라서 더 서러워진다. 공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은 남자선배들을 중심으로 “함께 잘해보자”며 소위 ‘으쌰으쌰’를 잘하는데 여대를 졸업한 선배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바쁘단 것이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많은 여대생들이 추상적으로 ‘멘토’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을 만한 선배는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여서 시너지 효과가 나야하는데 ‘본전치기’도 아니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도 여대생 페스티벌을 촉발시킨 이유 중 하나다. 김씨는 이에 대해 “하나하나 만나면 다 능력 있고 톡톡 튀는 사람들이 모이면 쭈뼛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속으로는 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처럼 어울리고 싶고 부러워했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각양각색의 여대생들을 한데 어울리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여자들에게는 ‘욕심’라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운영팀 담당자 숙명여대 정윤경(경영·10)씨는 여대의 특수성이나 여대생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욕심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물론 알파걸이나 수퍼맘이라는 단어도 여대생들의 이런 속성에서 파생됐다는 것이다.


“여대생 페스티벌? 니네 뭔데?”

물론 기획단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장소를 대여하는 것에서부터 강연자와 후원 업체를 섭외하는 것까지 수모를 겪어야 한다. 강연을 수락했다가도 그 결정이 번복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기업이나 업체에 후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여대생 페스티벌이 처음 열리는 행사다보니 홍보 효과 자체에 의심을 갖고 아예 ‘너네 뭔데’라는 식으로 무시를 하는 분들이 훨씬 많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연락을 시도해도 반응이 없는 곳에는 직접 찾아갔고, 네이버 인기 웹툰인 ‘역전! 야매요리’의 작가 정다정씨도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섭외할 수 있었다. 그런 노력 끝에 『유한킴벌리』, 『대학내일』, 『코카콜라』, 『뉴스컬쳐』 등 다양한 곳에서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들의 ‘무대뽀’스러움이 통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견디게 만든 것일까. 이들은 여대생들의 욕심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에 가능성을 걸었다. 기획총괄을 담당하는 이씨는 “유니브 엑스포 행사의 일환이었던 ‘여대생 로망 특강’과 지난 봄 열린 ‘나이키 우먼 레이스’를 보고 ‘판을 만들어주면 이렇게 잘 노는구나’라고 생각했고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더 큰 판을 꿈꾼다

오롯이 여대생들만의 힘으로 축제를 치루면서도 아직 이들은 만족을 모른다. 김씨는 “회가 거듭될수록 진정한 여대생들의 니즈(needs)를 반영한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며 “여대에 배포될 잡지 제작을 기획하는 등 다른 일들을 많이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 여대생 페스티벌부터는 서포터즈에 한해서는 전부 남자로 선발해 여대생들의 시각적 만족을 극대화하고 싶다는 조금은 발칙한 계획도 밝혔다.



많은 여대생들이 오늘도 카페에 앉아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 한 입 베어 문채 커피를 홀짝이며 스마트폰을 만질 것이다. “밥 먹자!” 혹은 “힘들지? 술 한 잔 사줄 테니 나가자”고 말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겉으론 혼자임에 그 누구보다 익숙해 보이지만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장을 가장 열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자이고는 싶지만 ‘여대의 여대생’으로만 머무르고 싶진 않을 그대에게, 솔직하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장을 원했던 그대에게 여대생 페스티벌을 권한다.

글 곽기연 기자 clarieciel@yonsei.ac.kr
사진 김지영 기자, 배형준 기자 elessar@yonsei.ac.kr
자료사진 여대생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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