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픽션』 여주인공 공효진과의 호흡? 『범죄와의 전쟁』 촬영 중 에피소드? 그런 이야기는 인터넷에 ‘하정우’라고 검색 하면 3초 안에 찾을 수 있다. 영화배우라는 직함 아래 가려져 사람 자체에 대해 들어 볼 기회가 적었던 하정우. ‘무릎팍도사’에서도 못 들어본 그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하정우는 모범생었다?!

  그는 국민 추격자가 됐다가도 어느새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본 찌질남으로 변하고 또 금세 부산의 건달로 변한다. 그는 출연하는 모든 작품마다 각양각색으로 완벽히 탈바꿈했다. 타고난 배우라고 찬사가 쏟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정우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로서 끼와 재능을 고루 갖춘 특별한 아이였을까.

이에 대해 그는 단호히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모범생에 가까웠다. 중학교 때는 반5등 안에 든 적도 있다. 고등학교 때는 모범생의 대명사인 선도부장과 신문반 편집국장을 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때는 그 신분에 맞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친구들하고 우르르 몰려다니고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고 학생의 본분에 맞게 행동했죠.”

그의 몸속에 흐르는 배우의 피

하정우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배우 김용건씨)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배우의 일상을 보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보며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꿈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그렇듯 하정우에게도 그 당시에는 막연한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인생 지점지점마다 배우가 돼야겠다는 청사진을 갖게 해준 영화들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본 『모던타임즈』는 처음으로 저에게 ‘이런 것이 배우고 영화라는 거구나’라는 느낌을 줬죠. 고2때 본 『리빙 라스베가스』는 ‘연기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줬고요.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과 열정이 저에게 점점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게 해줬어요”

영화고시가 있었다면 하정우는 최상위권 득점자

그의 자서전 『하정우, 느낌 있다』에는 읽기 연습을 한 그의 대본이 실려 있다. 첨부된 사진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대본은 딱 시험을 코앞에 둔 우리들의 교과서 같으니 말이다. 형형색색의 형광펜, 수많은 동그라미, 별표와 밑줄 그리고 몇 번 읽었는지 표시하는 바를 정(正)자까지. 그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연기를 한다. “보통 맡은 배역에 ‘감정이입’을 해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제게 연기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철저히 계산된 분석으로 배역에 임하다 보니 배역에 동화된 자신의 모습에 불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황해』의 구남을 연기할 때 내 작은 행동들부터 말투, 화내는 방식까지 구남의 것으로 하고 있었다”며 “내가 구남을 연기할 때 구남이 내 안에 어느 순간 확 들어온다든가 그런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오히려 “물 스며들 듯 어느새 싹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구남은 그래도 다행이다. “『추격자』때는 연쇄살인범 지영민의 눈빛이 나도 모르게 나오곤 했다”며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이는 배우라기보다는 교과서 내용을 달달 암기하고 있어 툭 찌르면 수학 공식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수험생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였다. 과연 영화고시가 있다면 한 번에 붙을 만한 그였다.

상상은 더 철저하고 더 치열하게 

하정우는 어떻게 연기를 잘 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캐릭터 창조 과정에 대해서 들려줬다. 우선 시나리오를 받고 작품이 재미있으면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시나리오 전체가 파악될 때까지 읽고 이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파악한다. 이렇게 작품 분석이 끝나면 캐릭터 창조 작업에 들어간다. 그 캐릭터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기능별로 단락을 나눈다. 그리고 단락의 장면들에 ‘나는 이 장면에서 무엇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초목표’를 정한다. 그 다음에는 내 캐릭터가 시나리오 안에서 움직이는 동선대로 상상하며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더 치열하게 상상한다. 여기까지가 시나리오 안에서의 작업이다.

이제부터는 더 철저히 상상을 해야 한다. 마음 속으로 캐릭터에 대한 프로파일을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인물이 초·중·고등학교는 어떻게 다녔고, 20대는 어떻게 지냈고, 혈액형은 무슨 형이고, 띠는 무슨 띠인지, 몸무게는 몇 킬로그램인지, 별자리는 무엇인지 다 상상하는거죠.” 좋아하는 색과 어울리는 색을 정해 의상을 정하고, 헤어스타일도 정하고, 심지어 수염자국의 유무까지 정한다. 이제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된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여기까지가 기초 작업이란 것이다.
<본격적인 영화 작업의 시작과 함께 화가 하정우, 그만의 엉뚱한 철학관, 영화를 만드는 과정 등 취재 비하인드 스토리는 연두(www.yondo.net)에서 계속>

배우 하정우 보다는 인간 김성훈   

그의 꿈은 세계적인 배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표현법을 찾는 데 꾸준히 노력을 해야한다. 이런 노력과 배우 하정우를 연결해 주는 존재가 있다. 하정우는 “그 연결 고리에는 인간 김성훈이 있다”고 말한다. 김성훈은 하정우의 본명이다. 실제의  ‘나’가 내 나이에 맞게 고민하고 성찰하고 그 또래처럼 살아나가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이를 잘 알아야 자양분 이 생겨 연기를 하는 데도 쓸 수 있다. 그래서 하정우는 “인간 김성훈으로도 이 세상을 잘 알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고 전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 중 『멋진 하루』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남자주인공 ‘조병훈’을 좋아해서다. “그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너무나 좋아요. 그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한 거지만, 기분이 좋아지죠. 그를 닮고 싶어요”

『멋진 하루』를 안 봤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맘마미아!”(이탈리아어- 어머나)를 외치며 ‘그런 명작을 안보다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하정우가 닮고 싶다는 ‘조병훈’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다. 

한 시간동안 하정우를 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박 2일동안 그와 붙어 다니며 밀착취재를 한 베테랑 기자도 ‘정우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 시간의 대화는 조금 부족했다. 영화배우라는 생각에 더 특별하고 극적인 것을 기대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나가는 순간에도 지금 자신은 “봄을 만끽하고 있는 35세의 그냥 남자”일뿐이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글 이예진 기자  alphagirl@yonsei.ac.kr
자료사진 판타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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