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결과 17명 중 1명만이 현수막보고 지원…소요된 자원, 시간, 인력 비해 홍보효과 적어

프랑스의 실업자운동에서 유래된 현수막(plaque,플래카드) 문화. 현수막은 멀리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잘 띄어 시위 조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로써 사용됐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나라도 곳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현수막을 사용한다. 대학가에서는 홍보나 정보 제공의 목적 하에 현수막이 걸리곤 한다. 특히 우리대학교는 백양로가 길게 늘어져 있어 현수막을 걸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한 건물 지날 때 마다 현수막은 20개씩

매년 3월은 신입생이 들어와 동아리와 학회의 신입회원 모집이 가장 활발한 때다. 단체들이 주로 이용하는 홍보수단은 현수막과 포스터다. 지난 2일 낮3시부터 5시까지 교내 현수막 개수를 조사한 결과 261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중 백양로에 177개의 현수막이 게시돼 전체 현수막의 67%를 차지했다. 기자가 직접 백양로를 걸어보니 이는 하나의 강의동을 지날 때마다 좌우측으로 현수막 20개씩을 보게되는 수치였다.

 

게시한 주체로는 77%가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동아리 및 학회 홍보, 공연 안내, 졸업과 입학 축하 등 다양한 용도로 현수막을 걸었다. 외부 단체 및 기업이 13%를 차지해 그 뒤를 이었다. 학교 역시 공지 안내, 국가시험 합격자 알림 등으로 대략 12개의 현수막을 게시했다. 

 

『연세대학교 규정집』의 「홍보물 게시에 관한 규정」(규정)에는 △게시범위 △검인 △게시물의 제한 등이 명시돼 있다. 규정에는 외부 단체의 경우 ‘본교 당국의 허가를 받은 외부 단체의 게시물’만 게시가 가능토록 돼있다. 또한 ‘모든 홍보물은 검인을 받은 후 게시하여야 한다’고 언급돼 있다. 그러나 이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학생복지처(학생처) 관계자는 “최근 몇 년 간 사전에 검인을 받은 단체는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거는 사람, 소요 시간·비용 만만치 않아 우리도 힘들어요 
떼는 사람, 학생들 뒤처리는 우리가 다 해
보는 사람, 내가 보러 온 백양로는 어디에?

현수막은 거는 사람, 제거하는 사람, 보는 사람까지 모두의 속을 썩이고 있다. 현수막의 대부분을 게시하는 학생들 역시 현수막을 설치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 외솔관 앞에 현수막을 달고 있던 한정(지템·07)씨는 “2만 5천원짜리 현수막을 3개나 제작해 지원이 많지 않은 학회입장에서 부담스럽다”며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부담 요소 중 하나”라고 전했다. 그러나 “홍보 효과가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제거하는 사람의 입장은 더 난처하다. 학생들이 게시하는 현수막을 함부로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현수막 철거에 대해 학생활동 규제로 보일 수 있어 조심스럽게 대처하고 있다. 외부 단체의 게시물도 마찬가지다. 학생처 관계자는 “외부 단체 게시물도 학생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어 제거에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현수막 게시는 사전적으로 학생처가 사후적으로는 총무처가 담당한다. 총무처는 매주 금요일 저녁 쯤 게시된 현수막을 제거하고 있다. 총무처 관계자는 “3월은 학생들이 홍보활동을 해 철거를 한 달 동안 유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무가 많은 것은 여전하다. 실질적으로 현수막 관리를 담당하는 경비노동자 최동수씨는 “현수막 중에 모집기간이 지난 것은 철거를 해야 된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회수하지 않아 손이 많이 간다”고 말했다. 또 찢어지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현수막은 보행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평소에도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최씨는 “현수막의 가장자리에 각목이 붙어 있어 줄이 풀리면 그 각목이 보행자를 칠 수 있다”며 현수막 관리가 중요하지만, 관리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우리대학교를 방문하는 외부인의 눈에도 현수막은 반갑지 않은 존재다. 미국 러커스대 약학과 박정진씨는 “한국 대학의 현수막 문화는 생소하다”며 “특히 연세대는 정문에서도 백양로 양옆으로 펼쳐진 현수막 때문에 지저분해 보인다”고 전했다.“기대했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어서 약간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현수막, 효과는 있는거야?

교내와 외부 단체가 현수막을 게시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홍보’를 위해서다. 혹은 적어도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현수막의 홍보 효과는 얼마나 있을까.

연세영상제작센터(YVAC, 와이벡)와 공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현수막의 효과가 미비함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와이벡의 필기시험을 치른 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어떠한 경로를 통해 와이벡을 알게 됐냐는 질문에 현수막을 답한 사람은 단 1명이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는 응시자가 10명으로 과반수를 훌쩍 넘었다. 현수막의 본래 목적은 해당 단체의 존재를 알게 하는 데 있었으나 대부분의 학생은 그런 목적에 부응하지 못 한 것이다. 오히려 지인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고가의 현수막을 통해 접하는 정보보다 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앙마술동아리 'NTIZ'는 이번 신입부원 모집에 현수막과 포스터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동아리 박람회 기간 동안 데스크에 서는 것을 주된 홍보 수단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으며 신입부원으로 45명을 선발했다. 부원 황희진(국문·11)씨는 “이번 신입부원 중 30% 가량은 지인을 통해 들어왔고 70% 가량은 데스크 때 홍보를 보고 가입했다”며 “다른 동아리와는 다르게 마술이라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수막을 게시한다고 해도 별다른 효과는 못 봤을 것”이라 전했다. 
  
현수막이 홍보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학생들의 관심을 확보할 경우, 2차 정보를 얻기 위한 통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와이벡의 경우 4명의 학생은 지원서의 마감 날짜, 모집 방법 등을 현수막을 통해 알게 됐다고 답했다. 선발 관련 정보는 포스터 및 현수막을 통해 많이 획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효과를 노리고자 현수막과 포스터를 제작하는 것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자원낭비일 수 있다. 수거해 가지 않는 현수막은 애초에 한번 쓰고 버려질 용도로 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수막의 처리도 문제다. 쓰레기장으로 옮겨진 현수막은 소각처리 되거나 매립된다. 한 연구결과 폐현수막을 소각할 때 유독물질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립을 해도 자연분해 되는데 최소 50여년이 소요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해 폐현수막을 에코백으로 재활용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자원절약을 위한 최선의 길일 것이다.

 

효과적인 동아리 홍보를 위해

러커스대 박씨는 자신의 대학교 내 동아리 홍보에 대해 들려줬다. 러커스대에는 현수막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개강 전 하루 동안 축제를 벌이듯 동아리 박람회를 진행한다. “운동장에 모든 동아리가 나와 자신의 동아리 특색에 맞게 홍보를 한다”며 “초콜릿이나 연필에 동아리 이름을 새겨 나눠주는 등 참신한 방법을 이용한다”고 전했다. 또한 버스 정류장마다 게시판이 있어 그곳에 A4 홍보용지를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하루 동안 열리는 박람회가 가장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온 실비아 삐니에(30)씨도 교내에서 현수막을 사용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건물마다 게시판이 있어 그것을 많이 활용”하며 “동아리 가이드북이 발간돼 학생들에게 배부된다”고 전했다. 또 “요즘에는 인터넷을 이용해 학교 홈페이지에서 홍보를 하고 지원도 그곳에서 하는 편”이라 말했다.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홍보문화

각 나라마다 문화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외국 사례를 그대로 좇을 수는 없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에 대해 학생처 관계자는 “공식적인 학교 입장만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현황”이라며 “학교 홈페이지를 통한 동아리 홍보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총무처는 동아리 박람회에 대해서 이번부터 천막을 공급해주는 등 지원을 하고 있다.

학생복지처장 손봉수 교수(공과대·교통공학)는 “직원·교수사회가 개입하지 않고 학생사회가 자체적으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제안했다. 현수막 게시는 “어차피 버릴 쓰레기를 공을 들여 제작하는 꼴”이며 “모두의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또한 “비단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 역시 현수막 제작을 자제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지니고 책임감있는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할 때다.

이예진 기자 alphagirl@yonsei.ac.kr
 사진 김재경 기자 sulwondo2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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