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부터 콩트를 너무 열심히 했나? (중략) 힘내라는 얘기 그만. 힘들게 있어야 힘들지.’                                                   - 가수 개리의 트위터中

『런닝맨』에서 커플 구도를 형성하며 ‘월요커플’이라는 별칭까지 생길 만큼 높은 인기를 끌었던 가수 개리와 배우 송지효 커플. 방송분량을 위한 설정이었음에도 송씨의 열애사실이 발표된 이후, 네티즌들은 둘의 로맨스구도가 이제 어찌되는 것이냐며 갑론을박 공방을 벌였다. 이 뿐 아니라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들 간의 러브라인이 단골 소재로 등장해왔다. 인위적으로 연출되는 로맨스는 비단  예능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드라마, 음악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 사랑을 속삭이기 바쁘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마이웨이』는 로맨스가 과잉 생산되고 있는 현 추세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평론가와 관객들은 전쟁 속에서 꽃피는 휴머니티를 기대했지만, 장동건과 판빙빙의 러브 스토리가 뜬금없이 등장해 비판을 받았다. 예능과 드라마의 경우엔 로맨스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욱 심각하다. 『우리 결혼했어요』와 『짝』과 같이 짜여진 사랑 각본에 의존하는 프로그램들이 범람하고 있고, 이른바‘막장’이라 불리는 멜로드라마들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로맨스가 각종 매체를 장악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신은주(정경경제·11)씨는 “로맨스가 있으면 논리적 근거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쉽고,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는 데 유리한 것 같다”며 “매체 대부분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한 만큼, 로맨스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했다. 로맨스에 대해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전유석(경영학부·11)씨는 “사랑과 로맨스는 삶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소재로 삼는 데에는 문제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재연(역사문화·11)씨는 “삶이 언제나 로맨스로 가득한 것도 아닌데, 각종 콘텐츠에서 사랑을 전부인양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이전부터 모든 콘텐츠에 로맨스가 필수적인 요소였던 것은 아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같이 젊은 청년들의 애환을 다룬 노래도 있었고, 싸이의 「챔피언」같이 모두 함께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노래 또한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말, 음원 차트에서 가장 크게 인기를 끌었던 ‘무한도전’의 발표 음원 역시 로맨스와는 무관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실미도』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지만, 작품 속에 로맨스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보듯 로맨스를 주소재로 삼지 않더라도,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로맨스 중심의 비슷비슷한 콘텐츠들이 스토리만 변형한 형태로 반복재생산 되고 있다보니 로맨스는 더욱 복잡하고 자극적인 형태로 진화했고, 이는 콘텐츠의 전체적인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최근 한국 OCN이 추리드라마인 ‘셜록’의 예고편을 동성애적인 내용으로 꾸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물론 이 예고편 자체는 국내외적으로 높은 관심을 이끌어내긴 했다. 하지만 추리물조차 로맨스물로 포장해야만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콘텐츠시장의 쓸쓸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로맨스 일변도를 바꾸기 위한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의 각성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박일훈 기자  ilhoonlove57@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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