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로 꼽힌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랑만큼 개개인의 방식이 다른 것도 없다. 보편적이면서도 천차만별적인 ‘사랑’. 여기 역사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 있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도 사랑을 한 것일까?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쇼팽, 뮈세,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마르크스, 하이네, 플로베르, 발자크, 보들레르, 위고, 뒤마.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이 역사적 유명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들 사이에 조르주 상드(George Sand)라는 여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앞의 예술가들에 비해 다소 생소한 그녀는 여류소설가이자 여성해방운동투사, 그리고 자유연애주의자였으며 동시에 위에 나열된 모든 예술가들의 연인이기도 했다.


만인의 연인이었던 그녀지만 그 중 가장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꼽자면 바로 음악가 쇼팽과의 사랑이야기이다. 비교적 짧았던 다른 연애와 달리 쇼팽과 상드는 무려 9년간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그 기간동안 쇼팽과 상드는 서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24개의 전주곡집」,「야상곡」,「즉흥환상곡」등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자유연애를 즐기는 상드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에 평소 병약했던 쇼팽의 폐결핵까지 겹쳐지면서 그들은 요양하던 섬에서까지 쫓겨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러나 이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상드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긴 세월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고난은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특이한 연애철학 때문에 빗발치는 수많은 비난을 감수해야했던 조르주 상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생을 마감할 때 남긴 말이 있다.


내가 원하는 꽃을 꺾기 위해서 덤불 속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얻기 위해 내 영혼의 상처를 감내한다. 덤불 속 모든 꽃이 아름답진 않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꽃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기에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받는 것이므로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조르주 상드


물론 그녀의 연애철학이 정답이라고만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할 때는 한 사람에게 모든 정신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그녀의 숭고한 마음만큼은 우리들도 본받아볼만하지 않은가.

 

사랑에 방향을 논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유혹하듯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몇 번 거절했지만 마침내 그는 허락했다. 처음에는 너무 부끄러워 식사가 끝나자마자 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던 알키비아데스(Alcibiades)를 이야기를 담은 플라톤의 저서『향연(Symposium)』 의 한 부분이다. 여기서 ‘그’는 아내와 자식도 있지만 평생동안 한 남자만을 사랑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다. 그다지 놀랄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당시, 동성애는 매우 보편적인 연애의 한 방식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오히려 동성애가 숭고한 사랑의 형태로 여겨졌다. 미셸 푸코(1926∼1984)의 저서 『성의 역사』에 의하면 당시의 지성인들은 동성애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차적인 형태의 사랑으로 생각했다.


사랑에는 정도(正道)가 없다. 이 세상 사람들이 70억이라면 70억가지의 사랑방식이 있을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겁쟁이는 사랑을 드러낼 능력이 없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특권이다”라고 했다. 간디가 말한 ‘사랑’이 연애와 같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간디의 사랑은 인류애와 동의어다.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간디는 자신을 희생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랑 앞에, 모두가 강요하는 사랑 방식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던 당신에겐 그 사랑을 할 자유가 있다.


최지은 기자 hotgirlj@
자료사진 구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