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술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연돌이. 그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 “여자 친구는 있냐?” 연돌이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없어.” 세순이도 친구들을 만났다. 커피숍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연애이야기로 넘어갔다.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물었다. “소개팅이나 미팅 해봤어?” 세순이도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없는 게’ 죄이기라도 한 양 이구동성으로 합창한다. “왜?”


이처럼 적어도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대화에서 ‘연애’에 관한 화제를 피해가기 힘들다. 개강과 동시에 신입생들은 학업과 미팅, 소개팅 등을 동시에 소화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빠진다. 친구를 만나도 대화의 종착역은 대부분 연애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다. 김아무개씨(경영학부·09)씨는 “입시가 끝난 만큼 대학생활의 꽃이라 불리는 이성교제를 반드시 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상대방과 대화 시 오고가는 소재가 됐다”고 말했다.


신촌 U-PLEX 앞에서 만난 신희정(25)씨 커플은 사귄지 100일이 지난 ‘풋풋한’ 초기단계 커플이다. 그도 남자 친구를 사귀기 전까지는 주변 친구들이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모태솔로’라 놀림당하는 주요대상이었다. 신씨는 당시를 ‘생각보다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친구들이 악의를 품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은 알지만 계속 듣다보면 뭔가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랬던 신씨도 남자친구를 사귀자 곧 친구들과 같은 ‘무한연애교’ 신자가 됐다. 연애에 대한 강압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경험을 가졌던 그도 무의식 중 ‘연애를 해야한다’는 지론을 펼치는 스스로에 놀랄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 연애에 관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도 황아무개(컴정공·09)씨는 “상대방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의 하나”라 말했다. 주변에 있는 친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연애나 소개팅, 미팅의 유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씨는 “상대방이 연애나 소개팅 등의 경험이 많다면 이성에 대한 물음을 던져보고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며 “연인이 있는 경우 친구의 연인을 통해 상대방에 대해 일정부분 알 수 있는 점도 작용한다”고 말했다.


한편 질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연애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연애의 유무는 단순한 ‘질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순수한 의미에서 ‘좋은 친구 같은데, 왜 연애를 하지 않냐?’정도라는 것. 홍익대 이현승(건축·07)씨는 “주변에 정말 괜찮은 친구가 홀로 지내는 것이 갑갑해서 물어볼 때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또한 대학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애 권하는 사회’임을 역설한다.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괜찮은 사람은 솔로가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일반화된 오류를 바탕으로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앞에서 만난 정아무개씨는 “연애를 하고, 하지 않고는 개인의 자유인데 ‘왜 연애를 안하냐’는 친구들의 핍박을 듣다보니 열등감마저 느낄 때도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대 박기율(산업공학·07)씨 또한 “개인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으며, 자신의 일이 연애보다 우선순위인 사람도 있다는데 요즘 대학가는 너무 연애를 강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강압적인 연애 권하는 대학가 분위기에 대해 조혜정 교수(사회대·문화인류학)는 “사회나 사회 분위기는 누가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소통’이 필요하다”며 “대학생들이 삶과 경험에 대한 시각을 스스로 바꿔갈 때 제대로 된 연애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커플 무죄, 솔로 유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각박해진 삶 속에서 개인의 개성을 무시한 채 ‘연애 권하는 사회’가 만연해 있는 현실을 풍자한 말이다. ‘술 권하는 사회’라는 오명을 벗기도 전에 우리 스스로가 또 다른 불명예를 자신에게 덮어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김광환 기자  radination@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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