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의 중앙도서관 열람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이다. 열람실 내에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마치 경적소리와도 같이 들려 학생들의 공부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준다. 둘러보니 학생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국가고시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푸른 잎사귀와 붉은 꽃이 만개한 3월임에도 불구하고 열람실 내에선 봄의 향취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1년 전부터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학생은 대학생의 표정이라기 보단 군인의 그것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총으로 무장하는 대신 스펙으로 자신을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연세인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별로 특별하지 않다. 지난 1월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학년이 되기 전에 스펙을 준비하는 학생의 비율은 61%에 육박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혹은 입학 전부터 스펙을 준비하기 시작한 학생의 비율도 35%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1년째 약학대학 입문자격시험(Pharmacy Education Eligibility Test, PEET)을 준비하고 있다는 ㄱ아무개씨는 “현재 대학생들은 경쟁적인 구도의 사회 속을 살고 있다”며 “많은 학생들이 미래의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현재를 즐기는 것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과연 근심 띤 얼굴로 미래를 궁구하며 고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과는 다른 옛날


대학생들이 처음부터 스펙을 쫓았던 것은 아니다.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스무 살 청춘들이 근심 띤 얼굴로 사회를 걱정하고 미래를 궁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1991년 5월 6일 「연세춘추」 1169호에서 정현기 교수(문과대·현대문학)는 “젊은이들을 보면 자신이 기성세대임이 부끄러워진다”고 말한 바 있다.

 

출처: 연세춘추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은 이와 사뭇 다르다. 수십 년간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해온 교수들이 보기엔 요즘 학생들의 모습은 과거 학생들의 모습과는 딴 판이다. 우리대학교에서 수년간 재직한 정명교 교수(문과대·현대문학)는 “과거에 비해 성적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었다”며 이러한 변화의 이유로 ‘제도 교육이 경쟁사회의 중요한 자료로 기능하기 시작한 점’을 꼽았다. 대학의 성적이 취업경쟁에서의 승패를 결정짓는 기준 중 하나로 변한 것이다.

 

 

변화는 학점에 대한 태도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학생들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과거가 낭만의 시대였다면 현재는 손익의 시대”라고 비유했다. 과거의 젊은이들은 손해와 이익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를 갈구하는 낭만적인 사고를 지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학생의 모습은 다르다. 취업과 진로, 학점은 물론이고 연애에서도 조건을 따지며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친한 친구에게도 필기노트를 보여주기 싫어하는 일부학생들의 모습은 이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상을 만드는 사람

분명 세상은 변했다. 과거에 비해 대학생의 수는 늘었고 성장이 진행되던 사회에서 이미 성장이 이뤄진 사회로 진입하면서 일자리는 바늘구멍 마냥 좁아졌다. 경쟁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그러나 경쟁과 스펙만이 능사는 아니다. 스펙을 쫓는 지금의 청춘들은 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 과거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던 모습은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모습이 돼버렸다. 학점과 스펙에 치이며 사회의 기성품으로 성장해가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정 교수의 한마디를 전한다.

“나를 세상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 나가라”

 

글 이상욱 기자 estanci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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